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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레콩키스타 배경 영화-‘엘 시드’(El Ci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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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니스트 헤밍웨이 원작의 1943년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1937년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었다. 이왕 스페인 얘기가 나왔으니 이번에는 11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스페인의 민족 영웅인 로드리고 디아스의 생애를 그린 대서사극 '엘 시드(El Cid)'를 소개한다.

 

 감독은 앤서니 만(Anthony Mann, 1906~1967)으로 '로마제국의 멸망(1964)'과 더불어 2편의 역사 대서사극을 만들었다. 1961년 얼라이드 아티스츠사 배급. 출연 소피아 로렌, 찰턴 헤스턴, 라프 발로네, 헤르베르트 롬, 더글라스 윌머, 마이클 호던 등. 러닝타임 184분(중간 휴식시간 포함 195분)의 70mm 대작.

 

 그런데 이 작품은 필자에게는 상당히 추억에 남는 영화이다. 당시는 고교 입학시험 제도가 있을 때라 아버지와 함께 부산 명문 고등학교에 합격자 발표를 보러 갔다. 그 때는 가나다 순의 이름 또는 수험번호 순서가 아닌 성적 순으로 합격자 발표를 했는데 자기 이름(한자)을 찾으려면 꽤 인내심이 필요했다.

 

 한데 금방 앞쪽에서 내 이름을 찾았다. 그러니까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음을 알고 아버님은 아주 기분이 좋으셨나 보다. 기뻐하시면서 내가 좋아하는 '이나리즈시'를 곱빼기로 사주시고는 내친 김에 문화극장에 데리고 가서 막 개봉한 이 영화를 함께 관람 했었다. [註: 이나리즈시(?荷?司, いなりずし)는 유부초밥을 말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쌀밥 위에 생선을 얹어주는 스시(すし)는 니기리즈시(握りずし, 쥠초밥)라고 한다.]

 

 말하자면 '합격 축하 선물'이었던 셈이다. '빡빡머리' 중학생 신분으로…. 그런데 '엘 시드'는 실존 인물인 만큼 그 역사적 배경을 모르던 까까머리 적에 이 영화를 왜 그리도 재미있게 봤던지….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지만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여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고, 또한 어렸을 때부터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부친의 영향이 컸음을 밝힌다. 따라서 이 글은 작고하신 아버님께 바치는 글이기도 하다.

 

 그런데 종전의 35mm 스탠더드 화면에 익숙해 있던 당시, 솔직히 영화의 내용에 앞서 70mm 대형 화면과 그 음향효과에 압도되었던 기억이 있다.

 

 복합상영관이 일반화되어 버린 오늘날에는 구시대의 유물처럼 되어 버렸지만, 당시 TV의 등장 이후 관객을 안방에서 영화관으로 끌어내는 방법 중 하나가 이와 같은 70mm 와이드 스크린을 활용한 스펙터클이었고, 이런 와이드 스크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는 역시 대형 서사극이었다.

 

 그러나 당시 70mm 상영관이 준비되지 않아 제작일로부터 약 5년이 지난 66년에서야 이 영화가 한국에 수입, 개봉되었지 싶다.

 

 서론이 꽤 길어졌다. 아무튼 영화 '엘 시드'는 11세기 회교도의 침공으로 이베리아 반도 남부 지역에서 산악지역인 북부로 밀려난 그리스도 왕국인 레온―카스티야의 귀족기사, 장군 및 외교관으로 용맹을 떨친 로드리고 디아스 데 비바르(Rodrigo Diaz de Vivar, 1043~1099)의 생애를 그린 작품이다.

 

 1043년 스페인 부르고스 인근 비바르에서 태어나 1099년 7월10일, 그가 탈환했던 발렌시아에서 56세로 사망했다. 걸출한 야전 지휘관으로 회교도들인 무어인들을 상대로 스페인 영토를 재탈환하는 여러 차례의 전투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두며 'El Cid Campeador'라고도 불렸는데 캄페아도르는 '투사(鬪士)·승리자'라는 뜻이다. 그의 이름처럼 되어버린 '엘 시드'는 본래 아랍어로 'Al Sidi', 즉 '경(卿)·영주(領主)·주군(主君)'을 의미한다고 한다.

 

 엘 시드는 적어도 일곱 번의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전쟁의 승리를 모두 국왕과 그리스도교도로서의 믿음의 공으로 돌린 품위있고 신의가 있는 충직한 기사였다. 그러나 그 승전(勝戰)은 그가 '엘 시드'였기 때문이 아니고, 훌륭한 기사요 능력있고 명석한 야전사령관이었기 때문이라고 보겠다.

 

 다시 말해 그는 왕 또는 종교적 믿음을 위해 싸운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을 위해 싸웠고, 그 결과 '인간 로드리고'는 '엘 시드'의 전설을 낳게 되고, 스페인의 첫 번째 국민적 영웅이 된 것으로 해석하고 싶다.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배경은 '레콩키스타(Reconquista)'라는 사건이다. 레콩키스타란 711년부터 1492년까지 무려 780여 년 동안 스페인의 전신(前身)인 이베리아 반도 북부의 카스티야와 아라곤 등 로마 가톨릭 왕국들이 반도 중남부의 이슬람 국가를 축출하고 국토를 회복하는 일련의 종교전쟁 과정을 말한다.

 

 그 중에서 11세기에 한정된 얘기이지만, 스페인의 정체성 ― 따라서 라틴 아메리카의 정체성을 이루게 될 미래의 사건들에도 영향을 주는 ― 을 이루는 결정적인 사건이다보니 영화는 3시간도 모자라 숨가쁘게 다음 시퀀스로 넘어가 버리고 만다.

 

 영화는 이렇게 시작한다. 북 아프리카 무라비트 왕조의 카디(이슬람교 최고재판관)인 벤 유수프(헤르베르트 롬)가 안달루시아 족장들을 모두 집결시켜놓고 연설을 한다. 이교도(그리스도교)를 서로 싸우게 만들어 피폐해질 때 우리가 처들어간다는 계책을 내놓고, 유일신 알라의 제국은 알라 외에 신은 없다며 모두 죽이고 불태워버리라며 먼저 스페인, 다음은 유럽 그리고 세계를 지배해야 한다고 스페인과의 일전을 독려하는 벤 유수프. [註: 무라비트(Murabit) 왕조는 스페인어로는 알모라비데(Almoravides) 왕조라고 불리며, 1040년 발흥하여 1147년 멸망한 북아프리카의 베르베르인 왕조로 모로코 마라케쉬(Marrakesh, Morocco)에 근거지를 두었다. 1061년부터 제5대 수장이었던 유수프 벤 타슈핀(Yusuf ibn Tashfin, ?~1106)이 지배하던 때가 최전성기였는데, 그는 1086년 이베리아 반도 알 안달루스(Al Andalus: 이베리아 반도 북부의 극소수 가톨릭왕국을 제외한 전 이슬람 왕국의 통칭)의 타이파들(taifas: 각 이슬람 왕국과 그 군주들을 지칭)이 북부 그리스도교 왕국인 레온(Leon)과 카스티야(Castilla)의 침탈로부터 방어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베리아 반도로 건너왔다. 벤 유수프는 1090년 그라나다에 이어, 차례로 세비야·알메리아(1091), 알리칸테(1092), 바다호스(1094) 등을 정복해 나갔다. 그러나 이 영화의 배경이 된 1094년 엘 시드가 발렌시아를 점령하면서 파죽지세는 한동안 주춤하게 되었다.]

 이때 주인공 로드리고 디아스(찰턴 헤스턴)는 그의 미래의 아내가 될 도냐 히메나(소피아 로렌)를 만나러 가는 도중에 소환되어 무어족 군대와의 일전에 참가하게 된다. (다음 호에 계속)

 


▲ '엘 시드(El Cid·1961)' 영화 포스터

 

▲ 무라비트 왕조의 수장 벤 유수프(헤르베르트 롬)는 안달루시아 족장들에게 스페인과의 일전을 독려한다.

 

▲ 로드리고 디아스(찰턴 헤스턴)의 아버지 돈 디에고(마이클 호던)는 무어족 포로의 처리를 아들에게 맡기는데…

 

▲ 사라고사 왕 알 무타미드(더글라스 윌머·오른쪽)와 발렌시아 왕 알 카디르(프랭크 트링) 등 포로 5명을 다시는 카스티야의 영토를 침범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받고 풀어주는 로드리고.

 

▲ 로드리고가 오기를 기다리는 히메나(소피아 로렌)는 "사랑은 시간을 초월한다"면서도 너무 행복해서 오히려 불안한 듯 안절부절 못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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