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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I 배경 영화(XI)-'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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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도둑이나 할 짓이라고 반발하는 로렌스에게 드라이든 자문관은 이렇게 말한다. "나 같은 거짓말쟁이는 진실을 숨기지만 자네 같은 위선자는 진실 자체를 잊어버리지." 로렌스는 "내가 평범한 사람이라는 자체가 진실입니다! 내게 말해줬어야 했어요!"라며 저항한다.

 

 잠시 후 알렌비 장군은 다마스쿠스 점령과 더불어 아랍인들을 달래기 위해 로렌스를 다시 아랍으로 파견하려 한다. 다시 정상적인 인간성을 되찾고 싶다는 로렌스와 그를 파견·이용하려는 장군 사이에 갈등이 인다.

 

 이때 알렌비 사무실 밖에서 자기가 만든 영웅 로렌스 소령을 취재하기 위해 기다리던 벤틀리 기자가 드라이든 자문관이 나오자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묻는다. 드라이든이 질문을 회피하자 항상 그런 식으로 빠져나가 버린다고 비아냥거리는 기자에게 그는 말한다. "상이한 두 기질이 서로 부딪쳤지. 반미치광이 기질과 비양심적인 기질이 말이오!"


 한편 데라에서의 고문의 상처 때문에 등에서 피가 흐르는 로렌스에게 알렌비 장군이 말한다.

 "자네 이름은 유명해질 거야. 날 기억하는 사람은 하나 없어도 말야. 자넨 범상치 않아. 운명을 타고난 사람은 많지 않아. 닥친 운명을 회피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지."

 

 "경험에서 나온 말입니까? 추측이겠죠…. 네 하겠습니다. 장군이 원하시는 건 터키를 이기는 거겠지만 전 아랍인들에게 다마스쿠스를 넘겨줄 거고 다신 빼앗기지 않을 겁니다…. 그들은 돈 때문이 아니라 나를 위해 올 겁니다." 비록 알렌비 장군과 로렌스의 목적이 서로 다르지만 필요에 의해 같은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로렌스는 아랍독립이라는 동기보다는 현상금이 걸린 죄수 등 돈에 눈먼 사람들로 군대를 구성한다. 알리 족장, 아우다 족장 등도 합류한다. 벤틀리 기자도 참가하여 취재한다. [註: 아랍 항쟁군은 영국 군인·외교관인 마크 사이크스(Mark Sykes, 1879~1919)가 만들어준 적색, 백색, 흑색으로 된 삼색기를 들고 싸웠다. 이 깃발은 오늘날 이라크, 이집트, 요르단을 포함하여 아랍 9개국의 국기의 바탕이 되었다.]

 

 그런데 다마스쿠스로 가는 도중에 그들은 아녀자를 포함한 타파스 마을 사람들을 무차별 살육하고 퇴각하는 터키군인들을 목격한다. 로렌스가 잠시 망설인다. 망설이는 이유는 이 인류애에 반하는 행동과 여기서 멀지 않은 데라에서 터키군에게 당한 성적 모욕에 대한 반감 사이에서의 번민 때문이었으리라.

 

 알리는 힘을 아끼고 그냥 지나치자고 조언한다. 그때 로렌스의 부하 중 한 명이 "죄수는 없다!"고 부르짖으며 터키군으로 돌진하다 멍에를 홀로 지고 사살된다. 로렌스는 죽은 부하의 분루(憤漏)를 삼키며 이성을 잃고 모조리 학살해 버린다. '이(齒)에는 이로!'라는 사막의 율법을 따른 것이다. [註: 1918년 9월27일 시리아 남부 소읍(90가옥, 주민 400명)인 타파스(Tafas)에서 일어난 학살사건으로, 로렌스의 군대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터키군 뿐만 아니라 그 동맹국인 독일, 오스트리아 군인을 포함한 약 250명의 포로들까지 모조리 사살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1915~1923년에 있었던 터키 정부의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의 연장선상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남자는 도끼로 두개골을 쪼개 죽이고, 젊은 여자는 몸에 구멍을 뚫어 반으로 갈라 죽였고, 임산부는 배를 째 아기를 끄집어 내는 등 피가 강물을 이루었으며, 인간이 얼마나 악랄하고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잔인한 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참상이었다. 당시 300만 명의 아르메니아 인구의 절반이 죽은 대학살은 터키 청년투르크당의 3인방, 즉 엔베르, 탈라트, 제말 등 투르크족 우월주의에 빠진 3파샤(Pasha)가 종교적 편견으로 세계 최초(AD301)의 그리스도 국가인 아르메니아 종족을 말살시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뒤늦게 도착한 벤틀리 기자가 그 처참한 광경에 경악한다. 알리는 "이제야 아랍인들이 얼마나 야만스럽고 극악무도하다는 걸 확인했군. 다른 사람도 다 똑같아."하고 말한다. 이에 벤틀리 기자는 "당신(로렌스)의 역겨운 모습을 찍어 빌어먹을 신문에 내겠다."며 흙먼지를 뒤집어 쓴 그의 얼굴에 플래시를 터트린다.

 

 드디어 로렌스의 아랍부대는 1918년 10월 기계화된 알렌비의 영국 군대가 도착하기 하루 반 전에 다마스쿠스를 점령하여 마을회관에 사령부를 만든다. 뒤늦게 다마스쿠스에 입성한 영국군은 아랍군대의 사기를 꺾고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군악대를 앞세워 시내를 행군하며 강력한 무력 시위를 보인다. [註: 1918년 10월1일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Damascus)에 가장 먼저 도착한 부대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제4기병 연대였고, 다음이 제3기병 연대, T. E. 로렌스는 같은 날 3번째로 도착했다. 이틀 뒤인 10월3일에 파이살 왕자가 이끄는 아랍 반군과 영국군이 도착했다.  다마스쿠스는 현존하는 도시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도시이며 이슬람 문화의 4대 도시 (메카, 메디나, 예루살렘, 다마스쿠스) 중의 하나로 예부터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를 연결하는 대상(隊商) 무역로이자 로마 시대의 전략적 요지로 수많은 이슬람 학자들의 수련장이었고 예수의 제자 아나니아가 사도 바울의 눈을 치료했던 곳이기도 하다.]

 

 아랍인들은 도시를 장악할 아랍국가의회를 구성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일에 맞지 않는 버려진 종족들이었다. 로렌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전화·전기·병원·소방서 등 공공 유틸리티를 관리·유지하는 방법을 몰라 배울 생각은커녕 서로 다투기만 하고 아우다는 숫제 피를 보기 전에 다시 돌아가자고 권하는 게 아닌가.

 

 로렌스가 "다시는 사막을 보지 않기로 기도했다."고 하자 아우다는 "당신은 다시 돌아올 거요. 사막은 당신에게 어울리지."라고 내뱉고는 나가버린다.

 

 알리에게 묻자 자기는 남아서 정치를 배우겠다고 한다. 로렌스가 '정치는 몹쓸 직업'이라고 하자, 알리는 다마스쿠스를 아랍인들에게 넘겨주기 위한 그 동안의 로렌스의 노력을 이해하고, 대단한 일을 했다며 자부심을 가지라고 말하고는 밖으로 뛰쳐나온다. 알리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그것은 로렌스가 자국이 원하는 것 이상으로 아랍지도자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싸워, 분열된 아랍국을 통합하고 마침내 다마스쿠스를 점령, 아랍 민족으로부터 다시 한 번 '아라비아의 로렌스'라는 영웅적인 칭호를 받게 되지만, 이 일을 이루기까지 이방인 로렌스의 자기 자신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가 얼마나 컸겠느냐는 인간적인 우정에서 나온 사랑의 눈물이었다.

 

 그러나 아랍인들은 천신만고 끝에 얻은 다마스쿠스를 순순히 영국군에게 내준다. 오랫동안 부족 단위 이상의 정치의식을 발휘해 볼 기회가 없었던 사막부족들에게는 대도시를 운영할 능력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서구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단위로서의 민족의식의 각성을 기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밥상을 차려주어도 먹지 못하는 자업자득이랄까…. (다음 호에 계속)

 

▲ 권총으로 로렌스의 오른쪽 어깨에 부상을 입히고 아우다의 칼에 맞아 죽은 터키군을 노려보는 로렌스와 벤틀리 기자(아서 케네디).

 

▲ "나를 죽일 수 있는 것은 황금 총알 밖에 없다."며 열차 위로 올라가는 로렌스. 대중의 환호와 승리를 즐기는 사람으로 변질되어 가는 것이다.

 

▲ 말을 실은 터키 보급열차를 강탈하여 수백 마리의 말을 노획한 아우다(앤서니 퀸)는 자기가 원하는 걸 다 얻었다며 전장을 떠나버린다.

 

▲ 터키군이 점거하고 있는 북부 데라 지역으로 진출했던 로렌스는 알리와 함께 마을을 걷다가 혼자 여러 아랍 주민들과 함께 붙잡힌다.

 

▲ 터키 베이(호세 페러)에게 심한 고문을 받고 능욕까지 당하는 로렌스. 이 경험은 로렌스의 마음에 큰 충격과 상처를 준다.

 

▲ 데라의 고문 이후 식음을 전폐하고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허탈감에 빠진 로렌스를 정성껏 보살피는 알리(오마 샤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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