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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I 배경 영화(IX)-'영광의 길’(Paths of Glory)(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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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차 세계대전 배경영화 시리즈의 아홉 번째로 '영광의 길'을 소개한다. 사실 1차 대전에 대한 전체적인 개요는 첫 작품인 '서부 전선 이상 없다(1930)'에서 이미 살펴보았기 때문에, 기관총과 철조망, 참호전으로 대표되는 '무인지대'에서의 참혹한 전투 및 엄청난 희생만 치른 무의미한 전쟁에서 '생존이 곧 승리'를 의미하는 1차 대전을 이 작품을 통해 다시 한 번 음미해 보게 된다.

 

 그리고 계급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전쟁터에서 부조리한 상부 권력 집단의 횡포와 인간성 상실 등을 통해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전달할 뿐만 아니라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초기 작품이자 커크 더글러스가 46세 때 출연했던 수작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1957년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사 배급. 출연 커크 더글러스, 아돌프 멘쥬, 조지 맥레디, 랄프 미커 등. 원작은 험프리 코브가 1935년 출간한 동명의 소설. 러닝타임 88분. [註: 14살 때 '영광의 길(Paths of Glory)'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던 큐브릭 감독은 그후 영화제작을 위해 험프리 코브의 미망인으로부터 당시 1만 달러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약 10만 달러 상당)에 저작권을 구입했다고 한다.

 

 험프리 코브(Humphrey Cobb, 1899~1944)는 이탈리아 시에나 태생이나 13세 때 미국으로 건너와 고등학교를 다니다 때려치고 17세 때 캐나다 몬트리올로 가서 캐나다원정 보병연대(CEF)에 자원하여 프랑스 서부전선에서 3년간 복무하며 1차 대전 종료 직전 '아미엔 전투(Battle of Amiens)'에 참전했다. 그후 미국 뉴욕으로 돌아와 광고회사 'Young & Rubicam'에 근무 중 36세 때 '영광의 길'을 출간했다.

 

 그런데 '영광의 길'이란 제목은 영국 시인 토머스 그레이(Thomas Gray, 1716~1771)의 유명한 시 '시골 묘지에서 쓴 비가(悲歌)'(Elegy Written in a Country Churchyard·1751) 중 다음의 9연(聯)에서 따온 것이다.

 

 The boast of heraldry, the pomp of pow'r,

 And all that beauty, all that wealth e'er gave,

 Awaits alike the inevitable hour.

 The paths of glory lead but to the grave.

 (자랑할 만한 가문, 화려한 권세,

 그리고 그 모든 아름다움과, 그 모든 재산도,

 피할 길 없는 시간은 똑같이 기다리고 있으니.

 영광의 길이 이르는 곳은 무덤일 뿐이다.)

 

 토머스 그레이는 시골묘지에 잠들어 있는 이름없고 세상에 드러나지 못한 자들의 죽음을 노래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죽음의 세계에 대한 경험과 사색을 공유하고 죽음 앞에 만민이 동등하다는 인류애적 평등의 메시지를 표현했다.]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안락한 장소에서 꼬냑과 화려한 식사,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파티를 즐기면서 전선의 병사들에게는 사지(死地)로 뛰어들라고 강요하며, 다음 진급 심사에서 하나의 별을 더 달 수 있기를 학수고대하는 고급 장성들. 그들이 별을 달 때 수많은 이름 없는 병사들은 지옥의 강을 건너며 다치고 정신병자가 되거나 참혹하게 죽는다.

 

 병사들은 장기판의 말(馬)에 불과하고 쉽게 잊혀지지만 장군은 전투에서 죽을 일이 거의 없고 오히려 영웅으로 떠받들리며 온갖 호사를 누린다. 한마디로 전쟁은 그들을 위한 놀이터이며 보수 높은 직장이다. 그들은 포격으로부터 안전한 벙커나 후방에서 전쟁이 가져올 이득을 계산하며 점령할 고지의 좌표를 찍고 돌격명령만 내리면 된다….

 

 표현이 좀 지나칠지 모르겠으나 이 작품은 다음과 같은 실화에 바탕하고 있기 때문에 하는 얘기다. 1915년 3월17일, 프랑스 북동부에 있는 수앙 마을에서 제로 리벨라크(Geraud Reveilhac, 1851~1937) 장군의 명령에 의해 336보병연대의 상병 4명이 총살 당했다. 이른바 '수앙마을 상병 처형 사건(Souain Corporal Affair)'으로, 총살 당한 뒤 곧바로 테오필 모파 상병의 미망인 블랑셰 모파가 인권위원회에 호소한 이래로 결국 전국적 운동으로 확산되어 19년만인 1934년에 비로소 명예 회복이 이루어진 사건이다.

 

 배경은 이렇다. 두 달 동안의 전투에서 이렇다 할 성과가 없자 리벨라크 장군은 서부전선인 수앙 마을 공격을 명한다. 그러나 첫 공격을 개시하자마자 프랑스 포병대의 연발사격이 독일군 참호가 아닌 프랑스군 참호 속으로 떨어지는 일이 벌어졌고, 게다가 독일군의 막강한 화력으로 수많은 병사가 죽음으로써 첫 돌격이 좌절되는 것을 본 21중대의 병력이 참호 밖으로 나가기를 거부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사실 21중대원들은 임무 교대 없이 몇 날 며칠 동안 싸운 나머지 완전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이 소식을 들은 리벨라크 장군은 그들이 공격에 참여토록 하기 위해 사단 포병으로 하여금 아군 진지에 포를 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포병 지휘관인 라울 베루베(Raoul Berube) 대령이 서면 명령 없이는 그럴 수 없다고 반발하여 무산되었다.

 

 그러자 리벨라크 장군은 공격 실패의 책임을 21중대의 병사들에게 돌리고 이퀼베(Equilbey) 중대장에게 명하여 각 분대에서 상병 2명과 일병 6명씩 모두 24명의 명단을 올리도록 했다. 그리고 3월15일에 리벨라크 장군은 24명을 '명령불복종'의 본보기로 군법재판에 회부 하겠다고 공표했다. [註: 당시 군사재판은 3명의 재판관이 결정했고, 항소는 인정되지 않으며, 집행은 보통 선고 다음날 바로 행해졌다. 이런 엉터리 재판을 '캥거루 법정'이라고 한다. 이 시스템은 1916년 4월24일에 폐지되었다.]

 

 그런데 이틀 후인 3월17일에 20명은 이런저런 이유로 사면되고 상병 4명만 총살형에 처해졌다. 테오필 모파(Theophile Maupas, 당시 40세, 자녀 2명) 상병은 제비뽑기로 선택되었다. 한데 처형 후 2시간 뒤에 프랑스 최고위사령부로부터 총살형 대신 강제노역으로 변경하라는 지시가 내려졌지만 때는 늦었다. [註: 1차 대전 당시까지도 프랑스에서는 집단 전체의 죄에 대한 처벌로 제비뽑기 등에 의해 개인을 무작위로 선택하여 총살시키는 관행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로마군율의 십분형(decimation)에서 유래했다. 이 점에서 보면 프랑스는 더 이상 낭만적이지 않다.]

 

 이제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오프닝 크레디트에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유'가 흐른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6년 참혹한 참호전을 설명하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하고 스네어 드럼이 배경음악으로 나온다. (다음 호에 계속)

 


▲ '영광의 길(Paths of Glory·1957)' 영화포스터


▲ 폴 미로 장군(조지 맥레디)은 부관인 상토방 대위(리처드 앤더슨·왼쪽)를 대동하고 참호를 시찰하면서 병사들에게 일일이 "독일군을 죽일 각오가 돼 있느냐?"고 묻는데…

 

▲ 미로 장군(조지 맥레디·왼쪽)은 연대장인 덱스 대령(커크 더글라스)에게 불가능한 개미고지 점령을 명령한다.

 

▲ 공격 개시 전날 밤, 중대장 로제 중위(웨인 모리스·왼쪽)가 술취한 상태에서 르준 일병(켐 딥스·가운데)을 먼저 정찰 보낸 후 공포에 휩싸여 그를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를 본 필립 파리 상병(랄프 미커)은 유일한 목격자로서 나중에 총살 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진다.

 

▲ 독일군의 개미고지 점령을 위해 호루라기와 권총만으로 첫 돌격 작전을 지휘하는 덱스 대령(커크 더글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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