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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I 배경 영화 (VIII)-'여로(旅路)'(The Voyage)(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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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그러나 그들의 험담에 전혀 개의치 않고 호텔로 가는 마차 안에서 체사레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아드리아나!

 

 다음날 집으로 돌아가려고 기차를 타려다가 아드리아나의 마음이 변해 베니스로 향하는 두 사람. 곤돌라, 음악회, 호텔에서의 포근한 안식…. 지금까지 둘은 호텔방을 따로 잡았으나 이때부터는 한 방을 쓴다.

 

 드디어 곤돌라 위에서 체사레가 청혼을 하고 아드리아나는 이를 쾌히 승락하는데…. 호텔로 돌아오니 베니스 시내에는 사라예보 암살 사건의 호외가 나돈다. [註: 1914년 6월28일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계 민족주의자인 가브릴로 피린치프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왕위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그의 부인 조피 초테크 여공작을 암살한 사건을 지칭하는 것 같다. 이 사건은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러나 마냥 행복하기만 한 두 사람에게 시칠리아의 아드리아나 어머니로부터 전보가 날아드는데…. "상복을 입고 있는 터에 딴 사내와 한 달 동안이나 여행을 하다니…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썩 돌아오너라!"

 

 이때 체사레는 전보 같은 것은 본인이 읽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의사의 충고에 따라 자기가 읽어내려가다 돋보기가 필요하다며 딴전을 부리자 아드리아나는 끝까지 읽으라고 재촉한다.

 

 마침 청혼의 사실을 전하기 위해 신청해 놓은 장거리 전화가 연결됐다는 교환원의 연락을 받고 체사레는 전화부스가 있는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이때 방에 남아있던 아드리아나는 답답한 마음을 진정시키려 창문을 연다. 밖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오스트리아가 유럽의 평화를 위협한다'는 호외 배달꾼의 외침이 들린다.

 

 이래저래 감정이 격해진 그녀는 체사레의 이름을 부르지만 목에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몸에 해로운 나쁜 소식들 때문에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어 침대 옆으로 쓰러지는 아드리아나!

 

 한편 전화기를 붙들고 아드리아나의 어머니와 결혼 문제를 놓고 격한 입씨름을 하고 있는 체사레.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체사레가 결론 없는 실랑이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고 방으로 돌아왔을 때, 아드리아나는 이미 일생에 단 한 번의 행복을 그 아름다운 얼굴에 가득 띤 채 호텔방 바닥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고 있었다. "내 사랑 언제까지나!(Always, My Love!)"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불치의 병으로 죽어가는 한 여인의 10년 여정(旅程)이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마지막 운명을 상징하고 있는 듯하다.

 

 리처드 버튼(Richard Burton, 1925~1984)은 1963년 '클레오파트라'에서 공연한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눈이 맞아, 버튼은 재혼, 테일러는 다섯 번째로 결혼하였다. 1964년 캐나다 몬트리올 리츠 칼튼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지만 10년 후인 1974년에 이혼했다가 16개월 뒤에 다시 보츠와나 초베국립공원에서 거창하게 재혼식을 올렸지만 결국 1년도 안 된 1976년에 또 이혼하고 만다.

 

 버튼은 8살 때부터 담배를 피기 시작하여 하루에 100개피를 입에 물고 다녔으며 12세에 술을 마시기 시작하여 하루에 서너 병의 보드카 같은 독주를 마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스포츠로 다진 건장한 체구의 버튼은 심장마비로 58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는 아카데미상에 총 7차례 노미네이트 되었지만 한 번도 수상하지 못했다.

 

 리처드 버튼은 2002년 영국 BBC 방송이 영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가장 위대한 영국인 100명'에 선정되었다.

 

 소피아 로렌(Sophia Loren)은 1934년 9월생으로 올해 87세가 된다. 그녀가 17세 때인 1951년 머빈 르로이 감독의 '쿼바디스(Quo Vadis)'에 엑스트라로 출연한 것이 영화와의 첫 인연이었고, 2년 뒤인 1953년 베르디의 오페라 영화 '아이다(Aida)'에서 주연을 맡았다.

 

 일반적으로 소피아 로렌 하면 이탈리아의 유명한 글래머 스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정작 배우로서의 연기력을 과시한 역할이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두 여인(Two Women·1960)'에서였다. 이 작품으로 외국영화로는 처음으로 1962년 아카데미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22개의 국제영화상들을 휩쓸면서 세계적인 배우로 발돋움했다.

 

 그 후 '엘 시드(El Cid·1961)', 화제의 작 '이탈리아식 결혼(Marriage Italian-Style·1964)'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더 높였으며, '로마제국의 멸망(The Fall of the Roman Empire·1964)' '크로스보우 대작전(Operation Crossbow·1965)' '아라베스크(Arabesque·1966)' '해바라기(Sunflower·1970)' 등으로 우리에게도 너무나 친숙한 배우이다.

 

 그런데 그녀는 당시 유명 글래머 배우치고는 드물게 현모양처 타입이다. 우리 보통사람들의 기준으로 볼 때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딱 한 번만 결혼했다. 그녀는 22살이나 연상인 이탈리아 영화제작자인 카를로 폰티(Carlo Ponti, 1912~2007)와 1966년 정식 결혼하여 그가 94세로 사망할 때까지 함께 했으며, 그 이후 한 인터뷰에서 "다시는 결혼하지 않겠다.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영화 '여로'는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마지막 영화이기도 하지만 재혼한 마리아 메르카데르 사이에서 난 아들인 마뉴엘 데 시카가 음악을 맡은 작품이기도 하다. 마뉴엘은 아버지의 1968년 멜로드라마 작품 '연인들의 장소(Amanti, 영어제목 A Place for Lovers. 한국에는 5년 뒤인 1973년에 단성사에서 상영되었다)'에서 음악감독으로 첫 데뷔를 했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의 줄거리도 주인공 줄리아(페이 더너웨이)가 불치의 병에 걸려 죽는다는 내용이었다.

 

 얘기가 났으니 얘기지만 이 영화에 출연한 페이 더너웨이가 상대역인 발레리오 역의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에 반해 결혼하고 애기도 낳겠다며 찰떡같이 붙었으나, 로만 가톨릭 신자였던 마스트로얀니의 첫 부인과의 이혼수속이 지지부진하여 3년을 더 기다린 끝에 1971년 결국 마음을 바꾸고 그의 곁을 떠나버린 일이 있었다. (끝)

 

▲ 심근팽창증이라는 불치의 병에 걸린 아드리아나(소피아 로렌)는 남은 삶을 못다 이룬 사랑의 불길에 불사르려 한다.

 

▲ 나이트클럽에서 둘이 캉캉쇼를 보다 자리를 뜨자 그들을 알아 본 몇몇 관객들이 입방아 거리가 생긴 듯 수근거린다.

 

▲ 팔레르모에서 베니스로 온 두 사람은 이제 한 방을 쓴다.

 

▲ 베니스에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기뻐하는 아드리아나(소피아 로렌)와 체사레(리처드 버튼).

 

▲ "내 사랑 언제까지나!"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조용히 숨을 거두는 아드리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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