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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I 배경 영화 (VII)-'닥터 지바고’(Doctor Zhivago)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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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이윽고 일행들이 탄 기차가 악명 높은 볼셰비키 사령관 스트렐니코프의 무장열차에 의해 호송되고 있으며 분쟁 지역인 우랄산맥을 통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기차가 완전 정지하자 유리가 기차에서 내려 주변을 살펴보던 중 중무장한 열차를 발견하는 순간 체포되어 스트렐니코프(톰 코티네이)에게 끌려간다.

 

 유리는 단박에 그가 바로 실종됐다는 '파샤' 안티포프임을 알아챈다. [註: 여기 등장하는 무장기관차는 버트 랭카스터 주연의 '대열차 작전(The Train·1964)'에서의 중무장 열차를 연상시킨다. 1, 2차 대전 때 실제 사용했던 열차의 완벽한 복사품으로, 애초의 목적은 트럭이나 탱크가 진입할 수 없는 폭설을 제거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개인의 삶은 역사에 의해 죽었다."며 집중 심문을 하던 스트렐니코프는, 유리가 6년 전 크리스마스 이브날 부인(라라)의 총격 사건 때 '사내다운' 그를 봤다고 말하자 어떻게 아내를 아느냐고 묻는다.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같이 복무한 적이 있다고 대답하는 유리. 전쟁 후 아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며, 그녀가 한때 반공산주의 백군(白軍)이 점령했던 유리아틴 마을에 살고 있다고 알려주는 스트렐니코프.

 

 유리는 기차를 타고 오면서 본 폐허의 '밍크' 마을을 그 지경으로 만든 것은 '사내다움의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용감하게 지적한다. 그럼에도 유리를 다시 가족품에 돌려보내는 스트렐니코프. 사령관의 오른팔인 장교가 "억수로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그에게 심문 받은 사람은 모두 총살 당했다는 암시를 주면서….

 

 우여곡절 끝에 바리키노 역에 도착하는 일행. 역장인 페챠(잭 맥가우런)가 알렉산데르를 알아보고 넙죽 "주인님!"하고 인사를 한다. 페챠가 끄는 마차를 타고 바리키노 별장에 당도하니 현관 입구에 '유리아틴의 혁명위원회가 인민의 이름으로 징발했다'는 팻말이 붙어있는 게 아닌가.

 

 할 수 없이 별채를 거처로 정하는 지바고 가족. 어렵사리 구해온 밀가루, 소금, 커피 등과 함께 스트렐니코프가 만주로 떠났다는 소식을 전하는 페챠. 그가 구해준 신문에 니콜라이 2세 황제와 그 가족이 총살 당했다는 뉴스를 보고 거대한 혁명의 물결을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을 개탄하는 알렉산데르…. 아, 옛날이여…! [註: 제정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14번째 황제였던 니콜라이 2세(Nicholai II Alexandrovich Romanov, 1868~1918)와 그의 가족은 1917년 2월 혁명으로 세워진 볼셰비키정부에 의해 폐위되고 투옥됐다가 시베리아로 유배된 후 1918년 7월에 총살되었다.]

 

 바리키노 산골에서 궁핍하지만 전원 생활을 통해 평화를 만끽하는 네 식구. 유리가 가까운 마을 유리아틴에서 라라를 찾을 때까지는…. 성에가 두껍게 낀 겨울 유리창 그리고 계절은 바뀌어 수선화가 흐드러지게 핀 봄날. [註: 네덜란드에서 4천 송이의 수선화를 수입하여 스페인 산악지대 소리아(Soria)에 설치한 세트장에 심었다고 한다.]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유리아틴에 있는 도서관을 찾은 유리. 거기서 라라와 다시 운명적으로 만나게 될 줄이야! 이때부터 유리는 라라와 토냐 사이를 오가면서 이중 밀회를 지속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토냐가 임신했을 때 양심의 가책을 받은 유리가 라라에게 '관계 단절'을 단호하게 선언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좌파 빨치산에 붙잡혀 강제 입산을 당해 종군 의사로 일하게 될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기막힌 인생유전(人生流轉)이다.

 

 2년 뒤, 지바고는 드디어 탈출에 성공하여 눈 덮인 설원을 걷고 또 걸어서 천신만고 끝에 유리아틴의 라라의 집에 당도하여 쓰러진다.

 

 의식을 회복하자 라라는 토냐가 유리를 찾는 중에 집으로 찾아와 서로 만난 적이 있었다며 가족은 지금 모스크바에 있다고 알려준다. 그리고 토냐가 6개월 전에 유리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던 편지를 건네준다. 토냐는 딸을 분만했고 이름은 안나, 아버지 알렉산데르와 아이들은 추방 당해 파리에 가서 살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라라 안티포바는 '훌륭한 사람'이라는 추신이 있었다. 다시 만난 유리와 라라는 그들의 관계를 새로이 시작하는데….

 

 어느 날 몹시 추운 겨울밤, 뜻밖에 빅토르 코마로프스키가 찾아와 두 사람에게 비밀경찰 체카가 미행하고 있다고 알린다. 그 이유는 라라는 스트렐니코프와의 혼인 관계 때문에, 그리고 유리는 빨치산 5사단에서 탈영했을 뿐만 아니라 가족은 파리의 망명자 조직과 연루됐고, 또 그가 쓴 반혁명적인 시작(詩作) 때문이라며, 둘을 도와 러시아를 떠나도록 돕겠다는 빅토르. 사실 그는 자치주 극동 공화국의 법무성 장관으로 임명되어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톡으로 가는 길에 유리아틴을 들렀던 것이다.

 

 그러나 둘은 거절한다. 왜냐하면 빅토르는 급변하는 러시아 사회에서 수많은 정권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살아남는 약삭빠른 사람일 뿐만 아니라 라라를 겁탈한 자로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당시 구하기 힘든 설탕을 주고 돌아가려던 빅토르는 그것마저도 거부하는 두 사람에게 "사람은 모두 진흙으로 만들어졌다."며 "고상한 채 굴지 말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사라진다.

 

 둘은 다시 바리키노로 돌아가, 버려진 얼음궁전 같은 집을 거처로 정하고 거기서 서로 헤어지기 전에 마지막 생을 즐기며 의미있게 살자면서, 오직 사랑의 열기로써 서로를 데운다.

 

 어느 겨울밤, 온세상이 눈으로 뒤덮여 있는데 늑대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장갑을 낀 손을 호호 불며 얼어붙은 잉크를 녹여 라라를 위한 시를 쓰기 시작하는 유리. 그 시로 그는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정부로서는 눈엣가시였다. [註: 그런데 이 영화에서 그의 시를 접할 기회는 끝내 주어지지 않는다.]

 

 비밀경찰이 언제 두 사람을 붙잡아 처형장으로 보낼지 알 수 없는 불안한 나날들. 운명의 그림자가 다가오는 순간을 예감하는 절박한 삶속에서 이제 시 쓰기도 포기하고 운명을 기다릴 때, 다시 코마로프스키가 찾아온다.

 

 그는 스트렐니코프가 라라를 만나러 오다가 8㎞ 전방에서 체포되었는데 심문 중에 끝까지 자기는 파벨 안티포프라고 고집했고 스트렐니코프라는 이름에는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며, 사형장으로 향할 때 보초의 총을 뽑아 자기 머리를 쏴 자살했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한다.

 

그리고 그동안 체카는 스트렐니코프를 체포하기 위한 미끼로 쓰기 위해 라라를 자유롭게 놔두었는데, 이제 그가 죽었기 때문에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어진 라라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절박한 설명이었다.

 

 마침내 지바고는 라라와 딸 카챠를 빅토르와 함께 먼저 떠나보내고, 자신은 다른 썰매로 곧 뒤따라 가겠다며 지금까지 소중히 간직했던 발랄라이카를 그녀에게 건네준다. 하지만 결국 자기가 싫어하는 자와 함께 떠나지 않겠다며 혼자서 그의 운명과 맞닥뜨리기로 결심하는 유리!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