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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I 배경 영화 (VII)-'닥터 지바고'(Doctor Zhivago)(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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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라라가 쏜 총이 코마로프스키의 왼손에 가벼운 총상을 입힌다. 그러나 그는 라라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말고 경찰도 부르지 말 것을 부탁하는데, 이때 뒤따르던 파샤가 용감하게 들어와 그녀를 부축해 데리고 나간다.

 

 라라를 마주친 것이 유리에게는 두 번째였고, 토냐는 처음이었다. 이 인연은 나중에 유리 지바고가 맞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의 순간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빅토르의 상처를 치료해 주던 유리는 그가 이복형 예프그라프와도 연락이 닿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볼셰비키가 맘에 들진 않지만 한편으로는 좋아한다며 그 이유는 그들이 이길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의 앞날을 내다보는 혜안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유리 부친의 임종을 지켜본 친구로써 특히 부친이 유리 어머니에게 헌신적이었다고 귀띔해준다.

 

 둘 사이의 화제는 라라의 얘기로 바뀐다. 빅토르가 그녀와의 관계 얘기를 소문내지 말라는 뜻으로 유리에게 빙 둘러 말하자 "그런 여자를 버리면 어떡하냐?"고 되묻는 유리에게 "관심이 있다면 자네한테 넘겨주겠네. 결혼 선물이야."하곤 문을 쾅 닫고 나가 버리는 코마로프스키. 여자를 마치 성노리개쯤으로 생각하는 그의 비뚤어진 여성관을 엿볼 수 있다. 하기야 당시엔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이 보편적인 시대였다.

 

 한편 새벽까지 라라의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며 라라가 털어놓은 과거사에 괴로워하는 파샤. 이즈음 유리는 라라의 뇌쇄적인 아름다움을 잊지 못한다. 그녀는 순수함과 요염함, 성숙함과 천진함, 부드러움과 강인함을 두루 갖춘 여인으로 한껏 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장면은 바뀌어 1914년 러시아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다. 예프그라프 지바고는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에 의해 제국주의 볼셰비키 육군을 타파하는 임무가 주어진다. 이즈음 토냐는 유리의 아들 사샤를 낳고, 라라는 파샤와 결혼하여 딸 카챠를 낳는다.

 

 라라의 과거사에 상처받아 군에 입대한 파샤는 독일 나치에 대항하여 싸우다 실종되고, 라라는 그를 찾기 위해 종군간호부로 자원한다. 유리 지바고는 군의관으로 참전했는데 부상자를 치료하다가 우연히 간호사가 된 라라와 해후한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총격사건 이후 4년 만이다. [註: 영화 시작부터 1시간 20분이 지나서야 둘은 처음으로 대화한다.]

 

 1917년 모스크바에 10월 혁명으로 블라디미르 레닌의 혁명정부가 수립되면서 러시아 전체가 좌파, 우파로 나뉘어져 내전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전선(戰線)에서 유리가 토냐에게 보낸 편지에는 구구절절 토냐와 양부모님에 대한 안부와 사랑이지만 라라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이때 토냐의 어머니 안나는 이미 사망했다.

 

 라라와 유리가 함께 6개월 동안 야전 병원에서 일하는 동안 둘은 사랑을 느끼지만, 토냐를 속일 만한 일은 없었다. 전쟁이 끝나고 라라는 남편 파샤를 찾지 못한 채 어린 딸 카챠가 있는 그라도프로 떠난다. 전선에서 라라를 떠나 보내며 홀로 남은 유리의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 하다.

 

 '라라의 주제곡'과 함께 화병에 꽂혀 있는 해바라기꽃의 잎사귀가 시들어 하나 둘 떨어지는 장면은 유리의 마음속 애틋한 이별의 아픔을 상징한다. 하지만 유리는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 아내 토냐와 아들 사샤가 있는 모스크바로 돌아간다.

 

 그러나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알렉산데르의 집은 새로운 소비에트 혁명정부의 인민위원회에 의해 접수되어 13가구가 함께 사는 집단수용소로 변해 있었다. 모스크바 귀족집안의 품위있고 고등교육을 받은 지식인인 토냐의 아버지는 그 사이에 정권교체와 사회적 변혁에 의해 무능하고 연약한 존재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이제 '체카'의 비밀경찰이 된 예프그라프가 처음으로 이복 동생 유리를 만난다. [註: 체카(CHEKA)는 KGB(소련 국가안보위원회)의 전신으로 펠릭스 제르진스키가 만든 첩보수사 기관. 냉전시대의 유물인 KGB는 1995년 4월 이후 연방보안청(FSB)이 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또 예프그라프의 긴 내레이션이 나온다.) 변한 시류에 적응을 하지 못해 고생을 하고 있는 동생 유리에게, 그가 쓴 시가 검열에서 '부르주아의 방종'같다는 악평을 받아 숙청의 대상이 되었다고 알려 준다. 예프그라프는 유리를 배려하여 그의 가족들과 함께 새로운 정치 수도인 모스크바를 떠나 머나 먼 우랄 산맥의 오지인 바리키노 마을로 피신시키며 그에 필요한 통행허가증과 증명서 등 서류를 만들어준다. 유리는 감사의 표시로 그의 시집 한 권을 주고 서로 헤어진다. [註: 이 시집이 첫 장면에 타냐에게 보여준 바로 그 시집이다.]

 

 유리, 토냐, 사샤 그리고 장인 알렉산데르는 우리의 6·25전쟁 때 피난민을 방불케 하는 가축 운반 열차에 가까스로 몸을 싣는다. [註: 이 열차 장면 시퀀스는 캐나다 알버타주에서 촬영했다.]

 

 이때 알렉산데르가 '멋진 시설이군.'하고 비아냥거리자 동승하고 있던 무정부주의자 죄수인 코스토예드 아무르스키(클라우스 킨스키)가 맞장구를 치며 자기는 '지식인이지만 막노동꾼'이라며 왼팔에 차고 있는 붉은 완장을 가리킨다.

 

 차장이 올라타서 위생규칙 등을 설명하고, "열흘 간에 걸쳐 외국의 지원을 받는 반동범죄자들인 우파가 출몰하는 위험한 우랄 산맥을 통과하지만 좌파 적군(赤軍)의 지도자인 인민사령관 스트렐니코프의 보호를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듣던 아무르스키가 '스트렐니코프 사령관'이라는 이름에 존경의 박수를 치며 '나 만이 자유의 몸이며 나머지는 모두 가축'이라며 수갑찬 손을 허우적거리며 절규한다. [註: 클라우스 킨스키는 혁명에 관해서 시니컬한 반응을 보이는 이 장면에만 등장한다.]

 

 모두가 곤히 잠든 중에 일어나 눈곱만한 크기의 여닫이 창을 열어 바깥 풍경을 내다보는 유리. 보름달이 중천에 떠있고 기차가 눈 덮인 끝없는 대평원을 가로질러 하얀 연기를 숨가쁘게 내뿜으며 철로에 쌓인 눈을 헤치고 달리는 장면은 한 폭의 그림같이 낭만적이고 아름답다.

 

 그러나 내일이 되면 자신들에게 또 어떤 일이 닥칠 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기차 안에서는 춤사위가 벌어지는데, 이때 갑자기 열차가 서행을 하기 시작하고 바깥에 비치는 마을 풍경은 깡그리 불에 타고, 사람들은 학살 당해 살아남은 사람들은 굶주리고 공포에 떠는 아비규환 그 자체다. 달리는 열차에 겨우 올라탄 한 마을여자(릴리 무라티)가 스트렐니코프가 저지른 짓이라고 항변한다. 과연 혁명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여기까지가 1시간 58분. 약 3분의 중간 휴식시간이 있다. (다음 호에 계속)

 

▲ 남편 파샤를 찾기 위해 종군간호부로 자원한 라라와 군의관으로 참전한 유리는 부상자를 치료하다가 우연히 해후한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총격사건 이후 4년 만이다.

 

▲ 라라와 유리가 6개월 동안 함께 야전 병원에서 일하는 동안 둘은 사랑을 느끼지만, 라라는 어린 딸 카챠가 있는 그라도프로 떠난다.

 

▲ 비밀경찰이 된 예프그라프가 처음으로 이복 동생 유리를 만난다. 그는 유리의 가족에게 필요한 통행허가증 등을 만들어주며 오지인 바리키노로 피신시킨다.

 

▲ 눈 덮인 끝없는 대평원을 하얀 연기를 품으며 달리는 열차가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답다. 아날로그 영상의 진수다.

 

▲ 볼셰비키 사령관 스트렐니코프가 탄 중무장열차. 이 열차는 실제 존재했던 열차로 이 영화에서 완벽하게 복원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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