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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미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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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나리’의 윤여정씨가 오스카 여우 조연상을 수상하였다. 젊은 한인 가정의 미국 정착기를 소재로 딸을 도와주려고 언어, 생활풍습이 전혀 다른 이국땅에 날아온 한국전형 할머니 순자의 역을 깊이 있게 연출하였다는 평이었다.

‘미나리’ 이름이 오스카 후보에 오르면서 나름대로 미나리와 얽힌 나만의 오랜 추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미나리는 다년생으로 주로 물가, 습기 있는 곳(미나리 꽝)에서 자라며 한국에는 80여 종이 있고 강활, 기름나물, 어수리, 바다나물 등의 이름이 있다.

미나리는 몸속의 노폐물과 독소 등을 제거, 염증을 완화 시키고 청 혈, 해독, 강장제, 결막염, 간염, 감기, 고혈압, 과민성 대장증후군 등의 예방 치료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항산화 작용을 함으로 위장암, 대장암, 전립선암 등의 암 예방에 효과가 있으며 비타민 A가 풍부해 눈의 피로를 풀어주고 시력을 보호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1.4후퇴 당시 아버지와 오빠만 먼저 피난시키고 집을 지키던 어머니와 우리 자매들은 마지막 서울 철수령에 밀려 걸어서 피난을 가게 되었다. 한 달 만에 우리가 정착한 곳은 전북 이리(현 정읍) 근처의 ‘황 등’이라는 농촌 마을 장로님 댁 사랑채였다.

5일 장에서는 쌀밖에 살 것이 없을 정도로 푸성귀, 계란, 때로 두부까지 서로 나누는 인심 좋은 자급자족 마을이었다. 어느 더운 날, 권사님이 작은 오지항아리를 들고 오셨다. 열자마자 상큼한 냄새가 싸 하게 코를 찔렀다. 손가락 두 마디만 하게 자른 미나리에 풋고추를 성둥 성둥 썰어 담근 물김치는 이미 발효되어 새큼한 맛이 들어가고 있었다.

보리를 약간 섞은 그 날의 저녁밥은 김치 한 보시기로 포식하였다. 더운 날씨에 찐득하게 솟았던 땀이 순식간에 걷히는 듯 온몸이 뼈 속까지 시원하였다. 이것이 내가 처음 ‘미나리’와 만난 즐거운 해후였다. 이웃들은 매일 이다시피 미나리와 상추를 갖다 주었고 나는 서울 환도할 때까지 물리지도 않고 미나리를 먹었다.

대학교 신입생이던 여름방학에 농촌계몽을 가게 되었다. 정부수립기념으로 특별히 계획된 농촌계몽은 제주도 포함 전국 10개 지역에 서울대, 연세의대, 성균관대, 숙대 등에서 학생들을 선발하여 각 팀에 수의과, 농과, 의과, 교육과, 경제과, 가정과 학생 1명씩으로 편성하였다. 약 50, 60명의 학생들이 수원에 있는 농업진흥원에서 일주일간의 합숙 훈련을 받고 지정마을로 떠나 한 달간 계몽 사업을 한 것이었다.

무료진료사업은 다 같이 하였으나 남학생들은 논이나 밭에 직접 들어가서 과학적인 농사법 조언을 하기도 하고, 가축의 건강이나 사육에 대한 계몽을 하였다. 나는 부인들을 모아 영양소의 이해와 조리법에 대해 강의와 실습을 하고 주방위생과 과학적인 동선(動線), 어머니의 건강관리 등을 교육하였다.

한 주일에 며칠은 아동들에게 글짓기, 그림 그리기, 새 노래 부르기를 지도하였는데, 아이들은 한 달 내내 눈만 뜨면 나를 찾아와 종일 따라다녔다.

하루는 장난스러운 농과학생이 다리에 피를 줄줄 흘리며 들어왔다. 밭에서 일하다 왔다는데 다리엔 거뭇거뭇한 상처가 여럿 나 있었다. 깜짝 놀라 어디서 그랬느냐고 물었더니 그의 대답이 더 놀라웠다. 미나리꽝에 들어갔는데 순식간에 거머리가 떼로 들러붙었다고 한다.

손으로 잡아 뜯었지만 얼마나 억센지 잘 떨어지지도 않고 이미 피를 빨아서 줄줄 흐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거뭇거뭇한 것은 상처가 아니라 아직도 달라붙어 있는 거머리였다. ‘미스 손 보여주려 그냥 왔지’라며 싱긋 웃었다. 그 순간 나는 미나리와 작별을 하였다.

 몇 년 전에 원예가 H씨가 이사를 하면서 자기 집 뜰에 있던 포도나무를 옮겨 주었다. 텃밭에 번식한 부추와 미나리도 옮겨 주겠다는 말에 화들짝 놀라 반대하였다. 다리에 찰싹 달라붙어서 피를 빨던 거머리는 아직도 온몸에 소름이 돋치게 하였다.

‘이건 돌미나리라서 괜찮아요.’ 하긴 미나리꽝이 아니고 밭에서 나는 것이니 다른 종류일 수도 있겠다 싶어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이 돌미나리가 번식하여 수많은 한국인이 신나게 따 간다. 고향 생각에도 좋고, 몸에 좋고, 맛도 좋고 ‘좋다’를 연발하며 따가는 모습이 나 보기에도 좋다.

어쩌면 돌미나리는 우리 이민자 모두의 일생을 보여주는 삶의 이정표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미나리의 효능을 알지도 못하던 때, 먹는다는 사실을 순수하게 즐길 수 있게 해주던 미나리는 거머리가 달라붙어 피를 빠는 난관과 고통의 투쟁기를 거쳐 드디어 돌미나리로 탈바꿈하고 새 세상, 새 환경에 적응하여 당당히 주인으로 우뚝 서는 우여곡절의 승리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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