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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I 배경 영화(IV)-애수(哀愁·Waterloo Bridge)(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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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마스코트가 클로스업 되면서 장면은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마이러가 남긴 행운의 마스코트를 바라보며 여전히 그녀를 잊지 못하는 영국 육군 대령 로이 크로닌!

 

 마이러의 음성이 들린다. "로이…당신을 사랑했어요…다른 사람은 사랑한 적도 없었고 사랑하지도 않을 거에요…" 그립고 애틋한 회상에서 깨어난 그의 눈에는 눈물이 어려 있다. 

 

 25살의 젊은 대위에서 이제 48세의 대령이 된 로이는 아직도 독신으로 살면서 오직 그 만을 진실로 사랑했던 마이러를 회상하며 코트 안주머니에 마스코트를 집어넣고 지프차를 타고 떠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올드 랭 사인'이 울려퍼지면서….

 

 '애수' 영화는 한마디로 사랑을 얻었다가 잃고 다시 찾고 그리고 영원히 잃어버리는 비극적 대단원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결코 경박하거나 통속적인 그런 영화가 아니다. 사랑스럽고 감동적이며 너무나 비극적인 러브 스토리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헐리우드산(産) 영화이다. 그래서 눈물을 삼키러 '만약 이랬더라면 어땠을까(what-if)?'란 질문이 생김을 어쩌랴!

 

 법이고 뭐고 다짜고짜 결혼식을 올렸더라면?… 재정적 궁핍에 처해있던 마이러가 자존심 꺾고 로이의 어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했더라면?… 과거를 묻어 두고 다시 결합했더라면 과연 행복했을까?… 마이러는 로이가 사랑에 빠졌던 그 소녀로 다시 돌아올 수 없을 만큼 봉건적인 도덕관념과 전쟁의 희생양이어야 했는가?… 두어라 다 부질 없는 짓이려니… 클리넥스나 준비하고 감상할 수밖에!

 

 그런데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애수'에서 가장 인상 깊고 좋아하는 캐릭터가 '키티'가 아닌가 싶다. 그녀는 친구 마이러에 대해 이해심 많고 현실적이며 변함없는 우정으로 '보호 천사'가 되어준다. 비록 거리의 여인이 되었지만 그것은 두 사람이 살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지 인간성까지 희생하지 않은 감수성 예민하고 상냥한 올곧은 아가씨였기에 하는 말이다.

 

 '애수'의 주인공 마이러 레스터 역의 비비안 리(Vivian Leigh, 1913~1967)는 바로 전년도에 제작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1939)'에서 전형적인 남부 '타라'의 여인 스칼렛 오하라 역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유명 영국배우이다.

 

 그 후 일리어 카잔 감독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1951)'에서 블랑슈 뒤부아 역으로 또 한번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비비안 리는 세계적인 미인이었지만 진작 자신은 아름다움이 진정한 배우의 길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다. 그녀는 1940년 유명한 영국배우 로렌스 올리비에(Laurence Olivier, 1907~1989)와 재혼하여 1960년 이혼할 때까지 황금기를 누렸지만 극심한 조울증과 정서 불안 때문에 함께 일하기 힘들다는 평판을 얻으면서 내리막길을 걷다가 만성결핵으로 향년 53세로 타계한 비운의 배우였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비비안 리는 '바람과 함께…'보다 '애수'를 더 좋아한다고 말했으며 로버트 테일러도 마찬가지였다. 또 비비안은 한 인터뷰에서 "사람을 웃기는 것보다 울리는 일이 더 쉽다"고 말한 적도 있다. 공감이다!

 

 제작한지 80년이 지난 지금, 총천연색으로 보여준 도도하고 강렬한 이미지의 스칼렛 오하라보다는 흑백으로 보여준 발레리나 마이러 레스터가 더 오래도록 기억에 남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극적 스토리의 힘과 최고 절정기의 두 중량급 배우의 아름다운 모습과 멋진 연기로 보여준 원형의 힘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 남아 있다는 걸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로버트 테일러(Robert Taylor, 1911~1969)는 '옥스포드의 양키(A Yank at Oxford·1938)'에 이어 '애수'에서 비비안 리와 두 번째 공연했다. 훤칠하고 잘 생기고 멋진 그는 당시 여성팬들의 우상으로 군림했으며 '애수' 이후 '마스코트 주고받기'를 유행시키기도 했다.

 

 그 후 '쿼바디스(Quo Vadis·1951)', '아이반호(Ivanhoe·1952)', '원탁의 기사(Knights of the Round Table·1953)' 등으로 20세기 전중반을 풍미하던 미국배우이다. 폐암으로 57세에 타계.

 

 머빈 르로이(Mervyn LeRoy, 1900~1987)는 '마음의 행로(Random Harvest·1942)'의 감독과 '오즈의 마법사(The Wizard of Oz·1939)'의 제작자로 각 해당연도 아카데미 감독상 및 제작상 후보에 올랐던 명감독이다. 그의 증조 할아버지가 샌프란시스코 백화점 소유자였는데 1906년 대지진으로 파산해 버리자 어렸을 때부터 안 해본 일이 없이 무척 고생했다고 한다.

 

 그는 '십계(The Ten Commandments·1923, 이는 흑백무성영화이며 1956년에 컬러판으로 리메이크)'로 유명한 세실 B. 데밀 감독으로부터 감독수업을 받았고, 1938년부터 MGM사의 제작담당 총책으로 있으면서 주옥같은 명작을 탄생시키는 한편 클라크 게이블, 로레타 영, 로버트 미첨, 라나 터너 등을 발굴해 내는 업적을 쌓았다.

 

 르로이 감독은 1934년 도리스 워너(1912~1978)와 재혼했는데, 그녀는 워너 브라더즈사 창업자인 해리 워너의 딸이다. 둘 사이에 아들 워너와 딸 린다를 두고 1942년 이혼했다. 워너 르로이는 뉴욕시에서 '르로이 어드벤처스'라는 레스토랑 사업가로 유명했는데 그가 2001년에 66세로 죽자 불과 22세였던 딸이 물려받아 CEO가 되는 일화를 남겼다.

 

 '애수'의 음악감독 허버트 스토다트(Herbert Stothart, 1885~1949)는 1939년 '오즈의 마법사'로 아카데미 작곡상을 수상한 작곡가. 그는 이미 뮤지컬 '로즈 마리(Rose Marie·1936)'로 유명세를 타고 있던 작곡가로 특히 지네트 맥도널드와 넬슨 에디의 이중창 '인디언 러브 콜'은 지금도 애창되는 아름다운 곡이다.

 

 그 밖에 로버트 Z. 레너드 감독의 '오만과 편견(1940)', 윌리엄 와일러 감독, 그리어 가슨, 월터 피전 주연의 '미니버 부인(Mrs. Miniver·1942)', 머빈 르로이 감독의 '마음의 행로(行路)' 및 '퀴리 부인(Madame Curie·1943)' 그리고 당시 12살의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미키 루니 주연의 '녹원의 천사(National Velvet·1944)' 등의 음악감독으로 기억되는 유명 작곡가이다. (끝)

 

▲ 마이러와의 결혼을 승락해 주었던 로이의 삼촌이자 상관인 듀크 대령(C.오브리 스미스)이 마이러를 반갑게 맞이하고, 그녀를 자연스럽게 귀빈들에게 알리기 위해 춤을 청하는 세심함을 보인다.

 

▲ 로이의 어머니 마거렛 여사(루실 왓슨, 캐나다 퀘벡 출신 배우)는 마이러를 이해하고 사랑으로 다독이는데…

 

▲ (왼쪽) 마이러(비비안 리)가 안개 낀 워털루 다리 위에서 달려오는 군용트럭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오른쪽) 그녀가 갖고 있던 행운의 마스코트가 길바닥에 나뒹군다.

 

▲ 워털루 다리 위에서의 회상이 끝난 육군 대령 로이 크로닌(로버트 테일러)의 눈에 눈물이 어려있다. 정말 비극적 사랑이다! '올드 랭 사인'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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