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ho2017
칼럼니스트
국제펜클럽회원

416-871-3428
[email protected]
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252 전체: 667,439 )
한국전쟁 배경영화 (III) -'모정'(慕情.4)
youngho2017

 

(지난 호에 이어)

 다음 날 '모정의 언덕'에서 만나는 두 연인. 마크가 취재차 일주일간 마카오에 가야 한단다. 휴가를 내 당장 마카오로 떠날 준비에 분주한 수인에게 전화로 아들린 파머 존스 부인이 발목이 삐었다며 그녀를 찾는다. 급히 아들린 집에 들른 수인. 그러나 발목을 삔 게 아니고 마크와의 개인 문제에 대해 경고를 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에 더 이상 듣지도 않고 "다음에 정말 발목이 삐면 그때 연락 달라"며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수인!

 

 여기서 그녀가 병원에서 쫓겨날 결정적 구실을 주게 된다. 아들린은 병원이사장의 부인으로 권력의 핵심에 있으며 직원의 행실에 대해 일일이 간섭하고 혼혈아인 수인에 대해서는 더더욱 경멸, 홀대 하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한수인은 주위 사람들의 눈을 피해 마크와 만나면서 깊이 사랑에 빠지고, 마크는 아내와 정식으로 이혼하려 하지만 아내가 좀처럼 동의해주지 않는다. 주위에서는 혼혈녀와 유부남의 불륜이라고 비난하지만 이들에게는 상관이 없다.

 

 페리를 타고 마카오로 간 둘은 마카오 그랜 호텔(Macau Gran Hotel, 中央大酒店)에 여장을 푼다. 꽃병에 마크의 카드와 함께 장미꽃이 탐스럽게 꽂혀 있다. 갑자기 삶에 대한 애착이 느껴지고 태양의 소리, 냄새까지 느껴진다고 말하는 수인. 삼라만상의 모양새와 그 짜임새 모든 게 다 느껴진다며 너무나 신비롭다고 말하는 그녀는 너무 행복해서 무서울 정도라고 말한다. 진정 '사랑의 기쁨'이 이런 것이리라!

 

 이때 바깥 대로에 풍악을 울리며 축제 같은 분위기의 장례행렬이 지나간다. 훌륭히 살다간 선인이기 때문이며 깃발을 보면 안단다. 상주들을 휘장으로 가려놓았는데 이는 슬픔을 감추기 위해서란다. 그 뒤로 상여가 지나간다. 이 행렬을 보며 문득 살아있음에 희열을 느끼는 수인!

 

 엘리베이터 또는 식당에서 마크 또는 수인을 알아보는 사람들을 만나지만 아무도 아는 체를 하지 않는다. [註: 예의상 그런 것이겠지만 마카오는 '도박의 도시'라 누구도 방해받지 않는 음성적인 색깔이 짙은 곳이기 때문이라고 보겠다.]

 

 여기서 흥미를 끄는 장면이 둘이서 점을 보러가는 것이다. 점쟁이(레너드 스트롱)는 큰집을 갖고 자녀도 네 명을 낳는다고 말하며 관심을 끈 뒤 장수할 수 있느냐고 물으니 복채를 더 놓으란다. 풍뎅이 2마리를 내놓으며 흰 놈은 아내, 푸른 놈은 남편인데 둘 다 상자 안으로 들어가면 아주 길하다고 말한다. 정말 두 마리가 상자 속으로 들어가자 장수하겠다고 말하는 점쟁이. 이에 마냥 기뻐하는 수인과 덤덤한 표정의 마크!

 [註: 중국인들의 풍수(風水), 점(占)에 대한 집착은 대단하다. 그 진원지가 홍콩이다. 본토가 공산주의 정부의 주도로 풍수, 점 등 '운세 서비스 산업'을 규제했던 반면 영국의 지배를 받던 홍콩은 비교적 자유로워 그 명맥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리펄스베이에 37층 빌딩 중앙에 6층 규모의 직사각형 구멍이 뻥 뚫려 있는 건물이 있다. 뒷산에 살고 있는 용이 매일 바다로 드나드는 통로를 마련하여 기(氣)를 흡수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원래 이 건물은 푸라마 호텔로 사용하다가 1982년에 문을 닫자 고급 아파트로 신축하면서 풍수에 따라 이렇게 구멍을 뚫은 것이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면서 풍수는 본토로 역상륙하여 웃지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호텔로 돌아오니 전보가 기다리고 있다.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터져 마크를 한국전선 종군기자로 발령한다는 내용이었다. 마크가 "그 좋은 점괘가 하루도 못 넘긴다"며 투덜거리자 "(전쟁이) 기껏 몇 주면 끝나겠죠?"라고 반문하는 수인.

 

 급히 홍콩으로 가는 페리를 타고 돌아온 마크는 수인을 병원으로 데려다 주고 먼저 신문사에 들러 사태를 파악한 후 전화를 주겠다며 떠난다.

 

 한편 병원 엘리베이터에서 닥터 센을 만난 수인. 그는 "닥터 한의 계약이 갱신되지 않을 거란 소문이 있다"고 알린다. 자리를 비워서 쫓겨난다는 게 아니라 혼혈아라는 이유 때문이라며 중국으로 돌아가기를 권고하는 닥터 센.

 

 고아 소녀 오노가 'London Bridge is Falling Down'이란 노래를 중국어로 부르는 도중 마크의 전화를 받는 수인. 급히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하니 만남의 언덕에서 보잔다.

 

 장면은 모정의 언덕. 한국에서 어떤 기사를 쓰느냐고 묻자 "아프리카나 인도네시아에서처럼 전쟁의 참상, 인간의 고통과 두려움, 영문도 모르고 죽어가는 인간들…" 수인이 또 묻는다. "특파원들도 죽는 수가 있나요?" "내 친구는 도쿄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대답하는 마크. "당신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의사를 그만 두겠다"며 "당신이 다칠 수도 있다니 사람들이 싫어진다"고 말하는 수인. "그건 당신답지 않다"며 "나 때문에 그러면 안 돼!"라고 다독이는 마크.

 

 시계를 쳐다보며 벌써 10분이나 늦었다며 불행히도 비행기는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내가 뒤돌아봤을 때 당신이 이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 좋겠다"며 떠나는 마크에게 "돌아올 때도 여기 있겠어요. 약속해요."라며 서로 키스하고 힘찬 포옹을 한다. 혼자 총총 언덕을 내려가던 마크가 뒤돌아서며 말한다. "푸른 풍뎅이 기억나오? 함께 장수한다고 했잖소?" … 이렇게 이별은 갑자기 찾아왔다.

 

 마크를 한국으로 떠나 보내고 병원에서 실직 당한 수인은 그녀가 치료하여 낫게 해준 고아 오노를 양녀로 삼아 친구 노라 헝의 집에 신세를 지게 된다.

 

 병원을 떠나기 전에 그녀를 방문한 닥터 센이 자기는 중국으로 가기로 했다며 같이 동행할 생각이 있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마크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홍콩에 있어야 한다고 대답하는 수인에게 그는 대뜸 "그런 낭만적 감정 때문에 조국과 인민을 버릴 생각이오? …약한 자는 살 수 없는 세상이오."라며 질타하자 "센 선생, 모욕이나 비난은 삼가세요. 그럼 약한 이를 돌보는 의사의 본분도 필요 없군요."라고 반박하는 수인.

 

 그러자 "중국은 새로 태어났고 인민은 마침내 해방됐소"라며 격앙하는 닥터 센. "피난민이 하루에도 3천명씩 홍콩으로 몰려들고 있어요. 인민의 해방을 믿는다지만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거죠?"라는 그녀의 지적에 그는 "당신은 중국인이 아니구려! 거울에 자신을 비춰봐요."라며 씩씩댄다.

 

 수인이 "그렇다고 당신처럼 공산주의자가 되진 않았어요. 의사로서 더 충실할 뿐이죠. …당신은 거울에 비치는 게 진실이라고 믿지만 이건 환상일 뿐이에요. 거울 안에서는 뭐든지 좌우가 바뀌어 보이니까요." 이 말에 화가 나서 방을 뛰쳐나가는 닥터 센. 이 당시 선택의 기로에 선 지식인들의 번민과 고뇌를 반영하는 상당히 중요한 대화이다. (다음 호에 계속)
 

▲ 기내에서 손톱을 물어뜯는 마크. 이혼 문제가 해결되면 그 버릇도 없어질 거라고 말하는 수인.
 

▲ 공항에 마중나간 수인. 그러나 마크의 표정이 어둡다. 전보를 칠 때만 해도 이혼에 동의했던 부인이 마음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 마크에게 너무 행복해서 무서울 정도라고 말한 수인은 바깥 장례 행렬을 바라보며 살아있음에 희열을 느낀다고 말하는데….
 

▲ 수인은 장례행렬에서 오른쪽 깃발들은 훌륭히 살다간 선인임을 뜻하고 왼쪽의 흰 휘장은 상주들의 슬픔을 감추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 홍콩과는 달리 주위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돼 마카오 식당에서 사랑의 기쁨을 만끽하며 춤을 추는 두 연인.
 

▲ "돌아올 때도 여기 있겠다"며 '모정의 언덕'에서 한국전선으로 떠나는 마크를 배웅하는 수인. 이게 마지막이 될 줄이야!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