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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음악가 시리즈(VII)-'비발디’(Antonio Vivaldi, a Prince of Venic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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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디는 과연 성자인가, 죄인인가? 



 

 

 

 

(지난 호에 이어)
성직자가 된 후에도 비발디는 천주님보다는 바이올린을 더 열심히 섬겼고 오페라 작곡에 전념하였다. 자연히 그는 사이비 사제로 사람들 눈에 비칠 수밖에 없었고, 그의 그러한 행실은 베네치아 주교(미셸 세로)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주교는 화가 나 당장 그를 불러들였다. 


 주교는 "성직자로서 응당해야 할 미사는 뒷전이고 교황의 사절이라도 된 양 나다니면서 귀족이나 대사들하고 어울리는 것은 유명세나 쫓자는 것"이라며 "바이올린 선생은 인정하지만 오페라 공연은 용납 못한다"고 질타한다. 


 비발디는 "병 때문에 먼 길도 못 가고 오래 서 있질 못하니 미사는 꿈도 못 꾼다"며 "말씀하신 분들을 찾아뵈어 제 작품을 알려야 제 오페라 올리는 데 힘이 됩니다"고 하소연 한다. 


그러나 "병으로 미사를 거행 못하는 건 전혀 마음에 걸리지 않고 몇 시간씩 서서 오페라 감독할 땐 병이 싹 사라지는 모양이군! 이 배우 저 배우 훨훨 날아다니던데… 집무관 한텐 통할지 몰라도 난 어림없네. 자넬 아끼지만 조심하게. 이 점 명심하게나!" 하고 훈계하는 주교.


 그러나 사실 비발디는 작곡할 때를 제외하고는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는 점, 또 그가 쓴 악보 첫머리에 "LDBMDA(Laus Deo Beataeque Mariae Deiparae Amen, '축복 받은 성모 마리아를 찬미하여 아멘'이란 뜻)"라는 글씨가 적혀 있는 곡이 적지 않은 점 등으로 미루어 그가 결코 사이비 사제는 아니었다고도 하는데…. 

 

 

 

 

 


 집에서 아버지와 베네치아 산탄젤로 극장에서의 오페라 공연을 위한 상세한 준비 사항을 상의한 뒤 비발디는 후원자 중 한 사람인 보르기세 백작부인(다이안 스톨로쟝)을 만나러 간다. 항구도시 베네치아의 거친 입소문을 우려해 신분을 감추기 위해 이른바 '베네치아 가면'을 쓰고 실내가 아닌 베네치아 다리 위에서 만난다. 

 

 

 

 


 그녀는 선뜻 후원을 약속하는데, 이때 나온 배경음악이 "유디트의 승리(Juditha Triumphans, RV 644)"이다. 이 곡은 비발디가 쓴 4개의 오라토리오 중 유일하게 온전히 남아있는 작품으로 그 전에 써본 적이 없었던 대규모 기악곡이다. 말하자면 피에타에서 끌어올 수 있는 모든 악기를 사용하여 피에타 소녀들의 독창 5부와 혼성 4부를 접목한 것으로 보인다. [註: 유디트(Judith)는 아름다운 미망인으로 이스라엘을 강탈하려는 아시리아의 장수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하여 그의 목을 칼로 베고 나라를 구한 영웅적 유태 여인이다.] 


 한편 피에타 양육원에서 세칠리아(모드 주레스)라는 학생이 안젤로 신부에게 베로나 공작과 혼약이 돼있다며 베로나로 보내달라고 고해성사를 한다. 그녀의 설명에 의하면 풍랑을 만나 배가 뒤집혀 부모님은 죽고 혼자만 살아남았는데 해안경비원이 겁탈하려고 하자 도망쳐 나왔으나 그 경비원이 부모 죽인 죄를 뒤집어씌워 감옥에 처넣고 금화 2만 냥까지 훔쳐갔다고 한다. 


 몇 주 감옥에 있던 중 수녀에게 맡겨졌고 가엾게 여긴 수녀가 피에타 양육원으로 데리고 온 것이라고 하는데, 그런 일이 있기 전에 이미 청혼했던 베로나 공작과 결혼하기 위해 베로나로 가려 한다는 설명이다. 


귀족도 아닌 신분에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지만 보조신부 안젤로에게서 이 얘기를 들은 주교의 집무관(필립 드 발레랑)은 이 기회에 제자와 스승 간의 염문을 만들어 비발디를 쫓아낼 구실을 찾도록 그에게 은밀하게 지시하는데…. 


 안젤로는 비발디에게 남의 이목(耳目)이 있으니 밤에 자기 집에서 만나도록 주선하겠다고 말하고, 한편 세칠리아에게는 옷을 다 벗은 채로 침실에 있으라고 요구하는데….


 약속된 9시에 카운셀링을 위해 안젤로의 집으로 찾아간 비발디는 뜻밖에 잠옷을 입고 맞이하는 세칠리아를 보고 기겁을 한다. 그러나 그녀는 위선 부릴 필요 없다며 베로나로 갈 수만 있다면 이미 몸을 판 거나 다름없으니 어떤 짓이라도 하겠다고 말한다. 

 

 

 

 


 비발디가 불쾌감을 나타내자 오히려 연극은 그만 하라고 대담하게 말하는 세칠리아.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비발디는 안젤로를 통해 자기를 시험하여 옥죄려는 짓임을 알아채고 황급히 집을 나선다. 


 다음날 안젤로를 꾸짖으며 한 대 치려고 하다가 참고, 대신 세칠리아에게 사과하라고 타이르는 비발디. 만일 이 일이 잘못 새어나가는 날에는 비발디의 미래와 명예는 매장될 뿐만 아니라 성직자로서 파면될 중대사였다.


 물론 영화 속 픽션이지만, 젊은 여성고아들로 구성된 양육원이었기에 사실 이런 저런 이유로 고아원을 탈출하려는 여성도 많았고, 또 어린 사춘기 학생들의 성적 유혹 때문에 성직자 신분의 비발디를 곤경에 빠뜨리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아무튼 이러한 추문설을 듣는 베네치아 주교는 "비발디 때문에 제 명에 못살겠네."라며 "주여! 제게 왜 이런 시련을!…"하고 개탄한다. 그러나 이런 염문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서품을 준 사제가 파면 당하면 체면이 구겨지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래도 그의 신앙심을 믿었기 때문이었는진 몰라도 비발디는 끝까지 파면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비발디는 1718~1720년 약 3년 동안 만토바에 있는 헤세 다름슈타트 영주 필립공의 악장을 지냈는데, 이때 마르첼로(Benedetto Marcello, 1686~1739)와 알비노니(Tomaso Giovanni Albinoni, 1671~1751)의 영향을 받아 "티토 만리오(Tito Manlio, RV 738)" 등 여러 오페라를 작곡하였다. 


 이 만토바 기간은 비발디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전성기로 볼 수 있다. 유명한 "사계(Les Quattro Stagioni)", 즉 4계절을 묘사한 "4개의 바이올린 협주곡, 작품 8"은 이 때 작곡되었다. 나머지 3개는 독창적이지만, 첫 번째 '봄'은 그가 작곡한 3막 오페라 "주스티노"의 제1막에 나오는 '신포니아(Sinfonia)'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註: 1724년에 작곡된 일명 '아나스타시오(Anastasio)'로 불리는 오페라 "주스티노(Il Giustino), RV 717"는 로마의 카니발 기간 중 카프라니카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특히 아리아 "나의 사랑하는 님과 만나리(Vedro con mio diletto)"는 지금도 사랑받는 곡이다. 니콜로 베레간 백작(1627~1713)이 대본을 쓴 '주스티노'는 비발디의 전후로 1683년 조반니 레그렌치(1626~1690), 1737년 헨델(1685~1759)이 작곡한 버전이 더 있다.] (다음 호에 계속) 

 

 

(알림)
8월 1일(수) 갤러리아 쏜힐점에서 문화 강의가 있습니다. 강사: 문종명, 손영호(주제: 중국 서안 둘러보기), 천하성, 한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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