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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의 특별한 선물
yoobyungyong

 

성탄 예배를 진이네 식구와 함께 하기로 약속하였는데, 아침에 진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무래도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아 예배에 참석하기가 어렵겠다고 알려온 것이었다.
식구 모두가 심한 기침에 아침엔 주훈이가 코피를 쏟고, 진이도 전화의 음성이 코가 막힌 듯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을 정도의 상태였다. (진이는 만삭이 가까운 임산부라 몸도 무척이나 부풀어 올랐고, 또한 주훈 아빠는 한국 방문 중에 있어 주훈, 예훈, 복중에 태아 모두 진이가 거두어야 할 상황이었음)


실은 나도 전날 밤 수면부족으로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가 띵하고, 주위가 빙빙 도는 것 같이 어지럽기도 하였다. 웬만하면 두문불출 하고 쉬고 싶었으나, 성탄절 예배가 있어 그럴 수도 없었다.


진이네는 우리가 예배를 마치고 귀가할 때를 맞추어 집으로 오기로 하였고 아내와 나는 예배에 참예하여 순서를 다 마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얼마 후 진이가 녀석들을 데리고 집에 들어섰다. 그와 동시에 주훈이가, 조그만 봉투를 내밀며 할머니 선물이라고 말하더니, 이어 나에겐 할아버지 선물이 없어 미안하다고 하였다.


그러더니 작은 목소리로 할아버지가 불쌍해 보인다고 중얼거렸다. 내가 녀석한테 왜 할아버지가 불쌍해? 하고 물으니 할아버지는 선물이 없잖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녀석에게 얼른 말하길, 나는 선물이 없어도 괜찮아 너희들(주훈, 예훈)이 나에겐 제일 큰 선물이야, 하였다.


그 말을 들은 녀석이, 좀 의아하다는 표정을 하며 우리가 “선물” 이라고? ...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다는 듯 묘한 몸짓을 보였다.


그들과 함께 아내가 준비한 풍성한 저녁을 즐기고 아이들과 같이 놀아주기도 하며 지내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갔다.


이튿날(Boxing day) 아침 아내는 집에서 음식과 살림 정리를 위해 하루 쉬기로 하고, 나는 가게로 출근하려 조반을 들고 있을 무렵, 진이로부터 전화가 와 아내가 통화를 하고 있었다. 


통화를 마친 아내에게 진이가 무슨 일로 전화를 했냐고 물으니 아내가 답하길 “아침에 주훈이가 눈을 뜨더니 슬픈 표정에 눈물을 짜며 할아버지가 우리의 선물도 못 받고 너무 불쌍하다"라며 흐느끼더라고 딸이 알려 왔단다.”


그러면서 딸이 오늘 할아버지가 가게를 혼자 나가신다고 하니, 녀석이 혼자서 나가면 더 힘들텐데 어떡해~ 하며 더 심하게 울어대더니, 어쩐지 할아버지가 어젯밤에 그렇게 표정이 잘 웃지도 않고 힘들어 보이는 것 같더라고 덧붙여 말하였단다.


그 얘길 듣고 나는 온종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녀석이 이제 갓 여섯 살을 넘긴 나이인데, 그 나이에 그런 생각 그런 정서가 떠오를 수 있을까? 나도 어려서부터 비교적 감수성이 풍부하고 정서가 남달리 예민하긴 하였지만, 나도 녀석과 같은 정도의 그런 감수성과 표현력이 있었을까...?


그러나 아무리 녀석이 또래보다 그런 정서가 빠르고 생각이 조금 앞선다고 해서, 지금 나의 마음 육십 후반의 세월을 살아낸 “삶의 숱한 희로애락, 순경과 역경을 넘나들며 산전수전을 다 겪어낸 이 초로의 지극히 평범한 할애비의 인생, 실패와 좌절을 통한 교훈과 깨우침, 하늘이 주신 천리를, 어찌 눈꼽만큼이라도 알아내며 이해할 수 있으랴! 


혼자 묵묵히 생각을 이어갈 때, 심연으로부터 살며시 따뜻하게 데워진 정감의 격류가 나의 지(知), 정(情), 의() 속으로 서서히 파고들어와 유유히 흐르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전날 내가 녀석에게 한말, 나에겐 너와, 예훈이가 "제일 큰 선물이야" 라고 했던 말이 다시 떠오르며 나의 생애를 한번 뒤돌아 보니, 진정으로 성탄절에 받았던 그 어떤 것보다 더욱 값진 것이 녀석이 아침에 울면서 할아버지가 너무 불쌍해 하던 그 ‘고백’ 이었다.


‘녀석아, 너의 그 ~ 할아버지가 불쌍해 라고 울면서 엄마에게 내뱉은 그 말이 ~ 그게 내겐 가장 큰 선물이란다.’


 그리스도께서 날 위해 오신 그 엄청난 선물(성탄절) 외에는... 아마도 녀석이 아무리 또래들보다 감성이 조금 앞선다 해도, 그래도 한 오십여 년은 지나야 겨우 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겠지. 그러나 그때엔 나는 이미 세상을 떠난 후가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그가 확실히 알게 되겠지, 사랑은 그 어떤 보상을 바라는 것이 아닌 아무 대가 없이 주는 것이란 걸. 그게 진정한 행복이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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