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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만 잡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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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에 있는 옛 직장동료가 자기가 활동하는 클래식기타동호회에서 연주회를 가진다고 알려왔다. 나도 클래식기타를 취미로 즐기고 있어 관심이 많지만 멀리 떨어져 있으니 가볼 수 없어서 무척 아쉽다고 했더니, 연주회가 끝난 후 자기가 연주한 부분을 유튜브에 올린 걸 페이스북에 띄웠다. 기타소리도 맑고 연주도 좋았지만 본인은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무대울렁증’으로 인해 연주를 망쳤다고 무척 아쉬워했다. 내가 보기에는 한 두 군데 다소 덜 매끄러운 부분이 없진 않았지만 그만하면 아마추어 동호인으로선 괜찮은 연주였는데도 말이다.


누구나 살다 보면 사람들 앞에 나가서 얘기하거나 뭔가를 해야 하는 일이 가끔씩 생긴다. 특히 회사에서 기획업무를 하거나 영업을 하는 이들은 남들에게 자신의 기획안이나 상품을 팔아야 하므로 사람들 앞에서 당황하지 않고 조리있게 자신의 의사를 잘 전달하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또 개인적으로도 하다못해 동창회모임 같은 자리에서 간단하게 인사를 해야 할 때를 비롯해서 크고 작은 모임자리에서 사람들 앞에서 한 마디 해야 할 일이 가끔 생기게 마련이다.


그런데, 대중 앞에만 서면 움츠려 들고 다리가 떨리면서 손에 땀이 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런 증상을 ‘무대울렁증’ 또는 ‘무대공포증’이라고 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다섯 사람 중 한 사람은 이런 무대공포증이 있으며, 어떤 사람에게는 이 공포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도 더 크다고 한다. 심지어 직업상 늘 대중 앞에 서는 가수나 연주자, 직업 사회자 같은 사람들도 사람들 앞에 나설 때마다 어느 정도는 이런 공포감을 느낀다고 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Robert Yerkes와 John Dodson같은 학자는 무대공포증이 반드시 나쁘기만 한 게 아니라 어느 정도의 공포심은 우리의 성취능력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험적으로 이 증상이 자신의 발표나 연주를 망친다는 걸 알기에 이 ‘무대울렁증’을 두려워한다. 그렇다 보니 이런 증상에 대한 다양한 해법들도 많이 알려져 있다.


흔히 많이 알려진 전문가들의 조언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1. 발표할 내용을 암기하거나 요점을 정리해 충분히 연습하라. 2. 발표 시간 전에 여유 있게 도착해 청중 몇 명과 미리 익숙해져라. 3. 청중이 속옷 바람으로 앞에 앉아 있다고 상상하라. 4. 농담을 던져 긴장된 분위기를 풀어 줌으로써 자신과 청중을 느긋하게 만들어라. 이 외에도 껌을 씹거나 스트레칭을 하는 방법으로 몸의 긴장풀기, 명상하기, 카페인 피하기, 운동하기, 최대한 웃기, 좋아하는 시나 노래 읊기, 천천히 말하기, 자신감 있는 척 하기, 긍정적인 생각하기,… 등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 


그런데, 이렇게 잘 알려진 소위 ‘전문가’들의 조언은 일견 그럴 듯 하게 들리지만 사실 자세히 뜯어보면, 조금 심하게 얘기해서 잔뜩 긴장해 있는 사람한테 “긴장을 최대한 풀고 연습 많이 해서 자신감을 가지고 하면 돼!”라고 하는 것처럼 너무 상식적이어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내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얘기를 한 첫 경험은 친구 결혼식 사회를 맡았을 때였던 것 같다. 친구 중에서 가장 먼저 결혼한 친구의 사회를 내가 맡았었기 때문에 이전에 남들은 어떻게 하는지 구경한 적도 없어 사실 꽤 부담스럽고 긴장이 되었다. 그렇게 다소 긴장한 채로 하객들을 안내하고 좌석을 정리시킨 후 비교적 차분하게 식의 시작을 알렸다. 식이 중반에 접어들었을 때 드디어 실수를 하고 말았다. 식순을 하나 빼먹고 다음 순서를 말해버린 것이다. 순간적으로 무척 당황했지만, 이내 알아차리고 그냥 원래 식순을 다시 얘기하고 진행시켰다. “죄송합니다.”라거나 “정정하겠습니다.”따위의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앞의 내 말을 무시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제 순서로 돌아가 식을 진행시킨 것이다. 나중에 보니 아무도 내가 그런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내가 소위 전문가들의 무대울렁증해소법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 대부분이 그 근본 원인을 꿰뚫어보지 못하고 겉으로 나타나는 대증요법에 머물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무대공포증은 결국 ‘실수에 대한 두려움’인데, 이는 ‘완벽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되고, 또 다른 말로 하면 ‘자신은 완벽해야 한다’는 잘못된 믿음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이를 없애는 방법은 이 ‘잘못된 믿음’을 깨는 것이지 두려움 자체를 바로 없애겠다고 덤벼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평소에 전혀 완벽하지도 않은 자신을 사람들 앞에서는 완벽한 것처럼 보이고 싶은 잘못된 욕심이 그 무시무시한 무대공포증의 정체라는 걸 깨닫고 나면 해법은 의외로 쉬워진다. “나는 사실 완벽한 사람이 아니고 가끔 엉뚱한 실수도 저지르고 말재주도 완벽하지는 않은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니 사람들 앞에서 좀 실수한들 뭔 대순가? 그냥 평소 내 모습을 보여주면 되지 뭐.” 이 게 무대공포증해소법의 정답이 아닐까?


연말이 가까워 오니 크고 작은 모임들이 잦아진다. 모임에 나가면 원하지 않아도 때로는 자기소개도 해야 하고, 인사말을 해야 할 때도 있고, 마이크 잡고 노래를 해야 할 때도 있다. 이런 일에 부담을 느끼고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은 분들은 명심하시라. 그대는 그리 완벽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인물임을. 그대 앞에 앉아있는 저 사람들이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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