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mkang39
캐나다 加人 강신봉
전 캐나다한인총연합회장, 전 토론토한인회장, 요크한국인학교 설립교장, 김치캐나다사장, 전 스코필드박사동상건립위원장,전 무궁화사랑모임창립회장, 토론토흥사단창립지부장, 대한민국국민훈장목련장, 역사문화원장

캐나다 문협회원.현 GTA한카노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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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의 역사 500년(63)-사색당쟁의 정치판(상)
samkang39

 
 

역사적으로 고찰해 보면 조선조 500년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색당쟁의 당파 정치였다. 그러한 사상과 이념이 우리의 DNA속에 배어 있어서 그런지 오늘날까지도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 나라의 정당정치다. 


민주주의를 하려면 여당이 있고 야당이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정치체제다. 여야는 서로 원수가 아니라 경쟁하며 보완해야 하는 임무를 가진 것이 민주주의 정치인 것이다. 야당의 중요한 기능의 하나는 여당이 독재정치를 하지 못하도록 견제 의무를 부여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실제로 움직여 가는 모습을 보면 견제의 의무를 지나쳐서, 서로 원수가 될 정도로 여야는 상호 적대적이다. 정권이 바뀌어 여당이 되면 원수 야당을 잡아 조지는 것이 첫째 임무요, 자기 세력으로 수 천, 수 만의 자리를 갈아 치우는 것이 둘 째 임무다. 


야당으로 전락한 정당들도 마찬가지다. 건건이 발목을 잡아 행정부의 국정집행을 방해하며, 모함을 자행함으로 차기 정권교체의 기회를 잡으려는 욕심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시절, 국가 발전을 저해하는 수 백 건의 낡은 법안을 폐기해야 한다고 정부가 제안을 하였으나 야당은 내내 발목을 잡고 이를 통과시키지 않았다. 행정부를 돕는 입법부가 아니라 국가발전을 저해하는 국회가 된 것이다. 


특별히 2008년의 광우병 같은 사건은 지금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다. 당시 야당은 광우병 우려를 이용해 국민들을 촛불시위로 내몰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초기부터 밤과 낮 없이 시청광장에서 시위하는 붉은색 데모대에 혼쭐나 “나는 회색주의자”라고 엉뚱한 이념을 폈다. 대한민국의 헌법이 지향하는 자본주의 민주주의 파란 색의 사상이 아니라 빨간 쪽으로 조금 기울어지는 회색이라고 하여 숨통을 돌린 것이다.


참으로 웃기는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니 세월호 사건이 터졌다. 얼씨구나! 종북주의 야당은 큰 건을 하나 물었다며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배가 뒤집혀 304명이 죽은 일을 대통령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고, 촛불들을 총동원하여 광화문 광장을 메웠다.


민간 배가 바다에서 뒤집어졌는데 왜 청와대의 대통령이 책임을 지나? 참으로 알고도 모를 일이다. 미국에서 9.11사태가 벌어졌을 때에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고 3000여명이 비운을 맞았다. 죠지 부시 대통령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는가? 그것이 왜 대통령의 실책인가? 


세월호 사건은 지금까지도 온 나라를 들먹거리고 있다. 세월호의 촛불은 드디어 여소야대로 국회의 정치판을 뒤집어 놓았고, 그 국회는 국민이 뽑은 대통령에 탄핵을 걸어 박근혜 대통령을 내쫓았다. 집권당은 무너지고 종북이 실세가 되어 정권교체를 성공적으로 이끈 것이다. 


집권당의 독재를 견제하라는 것이 야당의 임무인데 이제는 자기들이 실권을 잡고 보니, 호령하고 마구 설쳐댄다. 500년 핏줄 속에 젖어 들은 사색당쟁 정신으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내로남불이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러한 역사적인 바탕 위에, 남북간에 상이한 이념전쟁이 가미되어 정당정치가 한 몫을 더 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이나 영국 같은 진실한 민주주의 정당정치 실현이 더욱 어려운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한 마디로 종북이니 좌향이니 하는 요소가 정당 속에서 깊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은 정당정치가 아니라, 남과 북의 대결장 같은 양상을 표출하고 있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 


조선조의 사색당쟁은 사대사화를 거치면서 뿌리를 깊이 내렸지만, 당쟁의 극치는 실로 14대 선조 이후 동인과 서인의 싸움에서 최고조의 실감을 하고 있다. 1590년경, 일본의 풍신수길이 자국내의 모든 부족들을 통일하고 나서 움직이는 동태가 수상하다 하여, 선조는 일본을 정찰하기로 작정하였다. 


겉으로는 사절단이란 명목으로 통신사 일행을 파견 하였지만 속내는 일본의 움직임을 정탐하고자 한 것이었다. 서인 중에서 통신사 황윤길을 정사로 하고, 동인 중에서는 김성일을 부사로 하여 일년간 그곳의 동향을 파악하고 돌아오게 하였다. 


이듬해에 돌아와서 두 사람이 선조에게 보고를 하는데, 두 사람은 서로 당파가 다른지라 상반된 보고를 함으로써 선조에게 혼란스러운 일이 벌어지게 하였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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