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mkang39
캐나다 加人 강신봉
전 캐나다한인총연합회장, 전 토론토한인회장, 요크한국인학교 설립교장, 김치캐나다사장, 전 스코필드박사동상건립위원장,전 무궁화사랑모임창립회장, 토론토흥사단창립지부장, 대한민국국민훈장목련장, 역사문화원장

캐나다 문협회원.현 GTA한카노인대학장
http://skang3441.tistory.com/
[email protected]
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116 전체: 255,909 )
‘설마’의 역사 500년(31)-반공의식의 쇠퇴(1)
samkang39

 

 

 

 

 1945년 해방이 되면서,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갈라졌다. 자유 민주주의 나라와 공산주의 세습제의 나라가 생겼다. 남한의 이승만 정권과 북한의 김일성 정권이 대결양상으로 시작을 하더니, 소련제 탱크와 기관총을 내뿜으며 동족상잔의 비극 6.25전쟁을 일으켰다.


 3년간 오락가락 남북한을 초토화 하는 포성이 1953년 7월 27일 정전으로 조용해졌다. 300만 명이 죽었고, 일천만의 이산가족이 생겼으며, 십만 명의 과부가 생겼고, 이십만 명의 고아들이 길거리를 헤매게 되었다. 


미국의 교회들이 모아다 주는 구호물자의 옷과 가루밀크와 강냉이가루가 아니었다면 무엇으로 살아남을 수가 있었을까? 그러면서 우리는 4.19학생혁명을 치렀고, 5.16군사혁명의 경제발전과 5.18이란 민주주의 길을 모색하여 왔다.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 노태우 정권은 군인들의 정권이기에 강력한 반공이념과 애국심이란 의식으로 국민들이 정신무장을 하였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치르고 정리될 때까지 우리 민족의 의식은 ‘반공’이 ‘민주’보다 더 앞서 있었다. 


반공의 문제라면 다소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희생되더라도 군말 없이 받아 들였다. 공산주의와 전쟁을 하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그 정도의 정신 무장은 늘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각오를 하고 살아왔다.   그러나 1992년, 김영삼 민간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는 ‘반공’이라는 소리가 쇠약해지기 시작하였다. 민주주의를 떠들면서 학생들을 길거리 데모 꾼으로 내몰던 김영삼이 정권을 잡으니 반공이라는 이념은 꼬리를 내리고, 자유와 민주와 인권을 내세우는 개인주의 사고방식이 사회에 만연해지기 시작 하였다. 


외세의 상황이 어떻든 간에 군인정치라면 신물이 난다고 하였다. 국민들의 사상은 반공이라는 생각 대신에 자유와 민주주의와 개인주의 맛에 취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하다가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는 반공이념은 거의 다 사그라져 버렸고, “같은 민족끼리”라는 북한의 구호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국민들은, 굶주림에 삐쩍 마른 북한 동포들에 대하여 꽤나 동정적 자세로 바뀌었다. 반공이라던 자기 주관의식을 어느새 다 잃어 버리고 불그스름한 색깔의 이념이 대한민국의 구석구석으로 물들어 오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혼동 속에서 역사의식을 망각하고 흐리멍텅 해져갔다. 군인들마저도 주적 개념이 희미해졌고 오히려 동맹국인 미국이 주적이라고 생각하는 군인들이 나오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국방백서에서 북한을 주적으로 하는 용어를 빼라고 대통령이 지시하였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아직도 반공이념을 지키고 있는 수구세력과 갑자기 불거져 나오는 신진 진보세력으로 남남갈등의 세상이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300만 인민이 다 굶어 죽는데도 적화통일 야망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북한은 한 치도 변함이 없이 남한의 부(富)를 뜯어 가기에 충혈이 되어 있었다. 혹여나 마음이 부드러워질까 하여 한없이 퍼다 주었다. 하나 그 돈은 원자탄으로 바뀌었을 뿐, “전쟁은 없다”는 김대중의 선언은 무색해졌다. 김대중의 퍼다 주는 자비는 김정일에게 사기를 당했다. 


노무현 정권이 뒤를 이으니 반공이념이 은근슬쩍 반미로 탈바꿈을 하여 갔다. 어느새 친공 종북사상으로 물들은 전교조 교사들이 젊은 세대들을 유혹하였다. 제주도 4.3사태, 지리산 빨치산 사태, 여수 순천 반란사건 등 70년이나 묵은 역사적 사건들의 재판을 다시 벌렸다.


빨갱이가 파랭이가 되고, 파랭이 경찰 군인들이 역적으로 몰리는, 역사적 재판의 결과가 뒤집어지는 변란이 생겼다. 그 때에 빨갱이가 파랭이로 뒤바뀐 적색 가족들은 지금도 국가보훈처에서 애국지사로 등록되어 상당한 보훈비를 타고 있다. 


재판이 비밀재판 이었는지 그 사건의 현장에는 가지도 않은 많은 사람들이 애국지사가 되어 보훈비를 타고 있다고 쉬쉬하는 소리가 들린다. 지금 그들의 명단은 공개할 수가 없게 감추어져 있다고 한다. 


뿐만이 아니다. 그 자녀들은 공무원 시험 등 취직에 특혜를 받는 가산점 제도까지 만들어 놓았다는데 그 비밀 게임을 누가 알랴! 멀쩡한 자유 민주주의 공개적인 세상인데 이런 음흉한 비밀이 대한민국 안에 서리어 있다니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