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mkang39
캐나다 加人 강신봉
전 캐나다한인총연합회장, 전 토론토한인회장, 요크한국인학교 설립교장, 김치캐나다사장, 전 스코필드박사동상건립위원장,전 무궁화사랑모임창립회장, 토론토흥사단창립지부장, 대한민국국민훈장목련장, 역사문화원장

캐나다 문협회원.현 GTA한카노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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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 해설(6)-전쟁에서 이기려면 ‘빼앗아라’
samkang39

 

 

 손자병법이 말하는 ‘빼았아라’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첫째는 식량을 빼앗는 일이고, 둘째는 요새를 빼앗아야 하며, 셋째는 무기를 빼앗아야 하고, 넷째는 사람을 빼앗아야 한다. 다섯째는 땅을 빼앗는 일이지만 그것은 나중의 일이다. 우선은 앞의 4가지를 잘 빼앗아야 승리를 거둔다. 


 첫째로 식량을 빼앗아야 한다는 일은 침략자들이 감행하는 기본적인 약탈행위다. 군사를 멀리 파병을 하면 나라가 가난해 지고, 나라가 가난해 지면 곧 백성이 가난해 진다(國之貧於師者遠輸 遠輸?百姓貧). 


 여기에서 가난해 지는 이유는 식량을 모두 군량미로 가져가기 때문이다. 오늘날과 같이 수송력이 좋은 시스템이 아닌 고대에 전쟁을 하려면 많은 군량미를 인력이나 마력(馬力)으로 부대이동과 더불어 수송해야 하기 때문에 군량미를 원거리 수송한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그렇기 때문에 점령한 현지에서 식량을 빼앗아 조달하는 것은 그 번거로운 수송절차를 해결하는 일이요, 국력을 소모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첫 번째의 승리조건이 된다. 그래서 똑똑한 장수는 적지에서 식량을 조달한다(智將務食於敵).


 고려사(高麗史)에 군정(軍政)으로 말하면 첫째가 군량(軍糧), 둘째가 요새(要塞), 셋째가 장비(裝備)라고 했다.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은 비려 정벌에 나섰을 때 ”소와 말, 양을 노획했는데 그 수를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고 광개토대왕비에 적혀있다. 


 군량미 탈취 이야기를 하면 나는 1.4후퇴 때를 회상한다. 중공군이 우리 시골동네 집에 들어와 곡식을 모두 약탈해 갔다. 우리 집은 부엌 광속에 땅을 파고 쌀독을 묻었는데 그들은 큰 쇠몽둥이를 들고 다니며 쿵쿵쿵하고 땅을 울려 보며 그 묻은 쌀독까지 찾아내서 모두 가져갔다. 


 또 사변 전에 빨치산(Partisan)들이 밤이면 산에서 내려와 노략질을 해가던 일도 생각난다. 태백산, 지리산, 한라산 속에 들어있던 빨치산 공비들의 짓 말이다. 6.25전쟁 전에 김일성의 지령을 받고 남한을 전복하려고 파견된 공산당 유격대원들이 빨치산이다.


 산 속에 숨어 있다가 밤이면 마을로 내려와서 동네 집집을 돌아다니며 곡식을 털어가고 닭이나 소, 돼지, 개까지 모조리 잡아 갔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공산당 운동을 하던 그들을 보면 참으로 공산당은 독종악질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골 사람들이 그 빨치산들에게 식량을 뺐기는 것도 문제였지만 그보다도 그들의 협박에 대한 공포는 두 말할 것이 없었다. 오늘날에도 북한의 스파이 남파, 지하공작은 계속되고 있지만 과연 그렇게 해서 승리를 할 수가 있을까? 민주주의를 맛본 사람들에게 공산주의를 강압한다고 해도 씨가 안 먹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민주주의 앞에서 공산주의가 이 지상에서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1992년 국제공산당 소련이 붕괴하면서 부터다. 


 둘째는 요새를 빼앗는 일이다. 요새를 빼앗고 점령한다는 것은 전법 제일의 방법이다. 뭐니 뭐니 해도 요새를 빼앗기 위한 전투라고 하면 ‘백마고지 전투’를 제일로 손꼽지 않을 수 없다. 1952년 10월6일부터 15일까지 10일간 벌어진 한국 전쟁사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국 육군 제9사단(백마사단)과 중공군 38군단간의 교전으로 열두 차례를 뺐고 빼앗긴 전투였다. 백마고지는 철의 삼각지대로 알려진 철원, 평강, 금화 지구의 서북쪽에 있는 395고지이다. 이 고지를 점령하면 철의 삼각지대 전부를 장악할 수 있고, 잃으면 철원평야까지 모두를 잃게 되는 요새가 이 395 백마고지였다.


 낮에는 UN군의 공중 폭격 지원을 받아 국군이 점령을 하였고, 밤이면 인해전술로 중공군이 점령을 하는 옥신각신을 무려 12차례나 한 것이다. 이 전투에서 중공군 14,000명, 아군은 3,396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러니까 이 고지에서 하루에 평균 1,800명의 사상자가 10일간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이 전투에서 한국군과 미군은 21만9,954발, 중공군은 5만5천발, 총 27만4,954발의 포탄을 퍼부었다. 단일 전투에서 최다 폭탄 소비 전투지로 기록되어 있다. 


 셋째는 무기를 빼앗아야 한다. 조선조 초기에 최윤덕(崔潤德)이 4군 개척에 나섰을 때 그는 여진족으로부터 병기 1,200점을 노획했다. 적군의 무기나 병기 창고를 빼앗으면 적의 전력은 그만큼 약화되는 것이고, 반면 아군의 힘은 강화되는 것이다. 현대전에서는 적군의 병기를 탈취했다 하여도 그 무기들을 재사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옛날의 무기는 창과 칼과 활 같은 것이었기에 탈취한 무기를 재활용한다는 것은 큰 힘이 되었다. 


 무기 기술도 탈취의 대상이다.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에 신라도 삼키려고 했던 당 고종은 신라의 기술자 구진천(仇珍川)을 되려갔다. 그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사정거리를 자랑하는 기계식 활인 ‘노’(弩)를 만드는 기술자였다. 당나라에 가서 노를 만들었는데 성능이 시원치 않았다. 고종이 물었다. “듣자하니 너의 나라에서는 노를 쏘면 1천보를 나간다는데 네가 만든 이 노는 30보밖에 아니 나가는 이유가 무엇이냐?” “당나라의 나무는 신라의 것과 다르기 때문인 줄로 압니다”


 그래서 당 고종은 신라에 가서 나무를 구해다 주고 다시 만들라 했다. 이번에는 60보를 나갔다. “이것이 어찌된 일이냐” 고종이 황당하다는 듯이 물었다. “예, 아마도 목재가 바다를 건너오느라 습기가 차서 문제가 된 듯합니다.” 구진천의 애국심은 고종의 뜻을 꺾었다는 이야기다. 


 넷째는 군사를 빼앗아 쓰는 방법이다. 이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적군을 유인하여 아군으로 쓸 수 있게 함은 대세의 변화를 의미한다. 적군의 부대가 투항을 하여 대량으로 넘어오는 경우도 있고, 개별적으로 백기를 들고 넘어 오는 경우도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북한의 한 병사가 DMZ을 넘어 왔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는 휴전선에서 적군에게 하는 대북방송을 듣고 마음을 돌리게 되었다고 했다. 


 태조실록(太祖實錄)에 이지란(李之蘭)이란 인물이 등장한다. 이 사람은 원래 퉁구룬투란 티무르란 이름을 가진 여진족의 장수였다. 그저 퉁드란 이라고 불기도 한다. 고려 공민왕 때에 여진족 정벌에 나선 이성계의 인품과 무예에 감동을 받아 그는 부락민들을 이끌고 항복을 한 뒤, 이성계의 동생임을 자임하고 평생동안 형제의 의를 지키며 생사고락을 같이 했다. 후에 조선 개국의 일등공신이 됐으며, 경상도 총사령관이 돼서 왜구 토벌에 앞장을 서기도 했다. 


 이렇게 적군을 포섭하여 ‘손 안대고 코풀기’를 하는 수법은 장수의 역량에 따라 아주 다르다. 불노소득을 하는 일이니 이는 전적으로 장수의 지략과 역량에 달려있는 특수전법이라 하겠다. (2017.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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