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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이란 말을 음미하며
leehyungin

 

 


 
 현대차 제네시스 브랜드를 사고 싶었다. 내가 한국사람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생김새가 이제는 국산 브랜드 차를 구입해야겠다는 자부심의 결단이었다. 자칭 애국자인 듯 10여 년 몰고 다녔던 차를 이번엔 현대차로 바꿔야지, 다짐하며 용단을 내려 덤벼 들었다.


동서남북 딜러들을 찾아 헤매고 다녔다. 현대차는 현대 딜러에서 모두 취급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왠걸 고급 브랜드는 따로 취급하고 있다는 걸 알고는 더욱 바쁘게 서성거렸다.


10년을 몰고 다닌 낡은 차는 아내 차도 나의 차도 겨우 8만 킬로밖에 뛰지 않은 아직도 반들반들, 어느 한곳 녹슨 곳 없이 멀쩡하게 씽씽한 차들이었다. 아무리 마일리지가 적게 뛰었다곤 하지만 10년이나 몰고 다녔던 헌 차였다.


억지를 써서 더 좋은 값을 받으려고 트레드인을 강요할 수는 없는 상황임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다. 제네시스, 현대 최고의 브랜드라고 국제 자동차 평가단의 보고서가 입증한 자랑스러운 조국의 생산품이었기에, 구경을 하면서도 놀라움과 감동으로 가슴이 뭉클하기까지 했다. 


헌 차를 소유한 것이 무슨 죄인 양, 그래도 명성있는 새 차로 바꾸려고 이곳 저곳 탐문하고 다녔다. 새 차의 적정한 값과 헌 차의 어느 정도의 매매 값이 구매자의 필수사안이었기에 다양한 자동차들 마켓을 기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10년 된 헌 차들의 브랜드역시 M/B SUV GLK 350이었고 아내 차는 BMW Mini sports brand였다. 아내 역시 이번엔 한국 차에 관심이 가던 상황이라 값이 적정선으로만 합의를 이룰 수 있다면야 나이 들어 애국하는 길을 밟을 수 있으려나, 모처럼 고국의 향기가 물씬거렸다.


할머니 떡도 값이 싸야 사먹는다는 순수함이 철저히 몸에 배인 우리 민족성 아닌가. 2019년도 차 값들은 탱탱하게 틈바구니 하나 없이 붙잡고 있으면서 10년 된 헌 차 값들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고철 취급과 동시에 쓰레기 값으로 후려쳐 버린다.


딜러들 가는 곳마다 매우 실망스러웠지만 다른 묘안이 있을까? 기웃거려봐도 used car 마켓에 비교할 수 없는 값으로야, 처분하기란 애지중지 십 년의 애장품에 다시 미련이 들고 있었다. 차라리 버릴 수밖에 없을 때까지 더 몰고 다닐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어쩔 수 없이 애국이란 단어가 염치없이 멀어져 가버릴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몰고 다녔던 벤츠 딜러를 찾아 나섰다. 매우 세부적이고 상냥하기 이를데없이 친절하고 유동성 있는 대화로 십 년 된 헌 차 값을 상상 이상으로 격상 시켜주었다.


말이 통하던 참에 정서적 국민성에까지 접근할 수 있는 젊은 여걸 같은 자동차 세일즈에 능통한 한국 여인(Marie Ahn)을 만났다. 현대 딜러가 제시한 금액의 배 이상을 산출하는 비법에 놀라웠다.


 물론 새 차 값 역시 매우 적절히 제시하고 갖가지의 서비스가 상황을 완전 탈바꿈시킬 수 있었다. 모처럼 만의 애국의 꿈도 결국 잠꼬대로 끝나버린 순간이었지만, 현대자동차 딜러들의 고객들과의 소통의 방법이 아직까지도 덜 익은 과일처럼 떨떠름한 이면을 보고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이제서야 겨우 2년 전부터 고급차 브랜드의 반열에 들어선 현대차의 국제 마케팅의 빈자리가 확연히 드러나 보였다. 최소한 세일즈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고객들의 편의와 필요를 해결하는 수준만큼이야 열정과 성의가 돋보여야 할 곳이 아닌가.


차가 필요해서 문을 열고 들어왔던 고객을 감싸안을 수야 없다 하더라도, 설득하고 이해를 도우려는 성의만큼은 기본을 갖추어야 할 것 아닌가. 헌 차를 두 대나 가져갔다.

새 차가 필요해서 방문했던 기본적 바이어들의 표정쯤이야 분명히 읽어야 할뿐더러 마케팅의 근사치는 회사 자체에서 적정선을 파악하고 있어야 할 상황이 아닌가.


반세기를 국제 미아로 떠돌며 입고 먹고 마시는 것까지 아껴가며 고국에 이바지했던 청춘이 아니었던가! 서독땅속 석탄가루 뒤집어 쓰며 마르크를 퍼내어 산업전사의 한 획을 이뤘던 것도 그랬고, 생명부지의 캐나다 이민의 선구자적 대열에 앞장서는 1969년도의 이민 봇짐으로, 10만이 넘는 동포사회를 일궈가는 대열에 참여했었기에 바로 그렇게 애국이란 단어를 품고 살아왔던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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