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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불심(多情佛心)
leed2017

 

 고향산천을 떠난 지가 벌써 반 백년이 지났습니다. 여름 하늘에 떠가는 흰구름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살면서도 그 사이 한 시도 그 정든 산천을 잊은 적은 없습니다. 내  고향이라고 무슨 별다른 경치야 있겠습니까. 그저 한국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산봉우리들이 빙둘러 서 있고 그 사이로 강물이 비집고 흘러가는 풍광이 내가 고향이라고 일컫는 곳입니다. 그런데도 나는 그 무심한 산하(山河)가 늘 그립습니다. 거기 가서 이 세상을 작별하는 눈을 감았으면 하는 생각을 자주합니다. 왜 고향산천이 이다지도 그리울까요?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딱 한가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정(情)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정(情)이 생겨나는 과정을 살펴보면 이해가 갈 것입니다. 지각심리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무슨 자극이든지 자주 보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친근감이 생긴답니다. 예로, 아무 의미가 없는 자극도 자꾸 되풀이해서 보여주고 난 뒤, 나중에 그 자극을 다른 낯선 자극들과 함께 섞어서 보여주면 먼저 되풀이 보여준 자극이 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고 합니다.

 이 말은 무엇이든 자꾸 만나면 호감이 생기고 호감이 싹트면 정(情)이 붙게 된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곰보도 자주 보면 미인”이란 속담이 생각납니다. 세월의 이끼, 그것이 곧 정(情)이라는 말이지요.

 내 서재에는 한국전쟁에 관한 사진첩 여러권이 꽂혀 있습니다. 한국 E여대에서 은퇴하던 해에 은퇴 기념으로 샀다고 적혀 있더군요. 오늘은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집안에만 갖혀 있으니 너무 갑갑해서 서가에서 먼지만 뒤집어 쓰고 있는 그 사진첩을 꺼내서 여기저기 펼쳐보았습니다. 그 책에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들이 한둘이 아니었지요.

 그런 사진 중에 내 눈길을 사로잡은 사진 한 장이 있었습니다. 어떤 나이가 지긋한  어머니 한 분이 전선(戰線)으로 가는 아들을 보내는 장면이었습니다. 아들을 죽이고 살리는 그 전쟁터에 보내는 어미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아들을 바라보는 그 경건한  눈길, 평생을 쏟아부은 사랑, 영 이별이 될 수도 있는 이 순간의 슬픔과 두려움, 문자로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어머니의 처절한 염원, 이 모든 것이 용해되어  만들어낸 눈빛이었습니다.

 아무리 인물묘사에 뛰어난 화가나 배우라 할지라도 그 눈빛을 그려낼 수는 없을 것이라고 혼자 단정짓고 말았습니다.

 다정불심(多情佛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정다감하고 착한 마음을 가리키는 말이지요. 아들을 죽음의 전쟁터로 보내는 그 어머니의 눈빛을 나는 다정불심으로 부르고 싶습니다. 그러니 내가 말하는 정(情)이란 것도 이 다정불심의 하위개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태어나서부터 주위사람들과 인연을 맺기 시작합니다. 우선 엄마를 위시해서 자기가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는 몇몇일테고 자라면서 맺는 인간관계는 점점 더 많아지고 넓어질 것입니다. 이 아이가 크면서 겪는 정서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내 생각에는 정(情)과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정이란 자기 생존에 도움을 주는 몇몇 사람들 뿐만 아니라 아침저녁 늘 보고 지내는 것들, 이를테면 데리고 노는 강아지나 밭을 가는 누렁이, 숨바꼭질하고 놀던 뒷동산 같은 무생물에게도 정(情)이 끼어들기 마련입니다. 남이 보기에는 하잘 것 없는 산천이라 하더라도 그 산천에 오래 노출된 사람, 즉 그 산천에 정(情)을 준 사람들에게는 마음 속에서 떠날 날이 없는 산천이 됩니다.

 정(情)이 부리는 요술 중에는 그 속에 있을 때는 자신도 잘 느끼지 못하다가도 작별할 때가 되면 갑자기 어디에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고향이 그렇지요. 막상 고향을 떠나려면 어디서 정(情)이 불쑥 나타나 소매를 잡아 당깁니다.

 이호우라는 청도 출신의 시조시인이 있습니다. 그는 그의 시조 ‘이향사(離鄕詞)’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습니다.

 “선영 모신 산도 이미 멀리 돌아지고 / 산협을 울어예는 귀익은 시냇소리 / 모르고 살아온 그 정, 빙 눈물이 돌구나”

 여명기의 시인 김소월도 그의 시 ‘산’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불귀 불귀 다시 불귀 산수갑산 다시 불귀 / 사나이 맘이라 잊으련만 십오년 정분을 못잊겠네.”

 부부 사이가 일그러져서 서로 다투고 싸우지 않는 날이 일년에 하루도 없다시피 하는 부부도 막상 이혼장에 도장을 찍고 돌아설 때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아무리 미운 배우자라 해도 오랜 시간에 걸쳐 부대끼며 살아온 사람에 대한 정은 어쩔수 없었기 때문이었나 봅니다.

 자주보는 것이 정(情) 형성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거니와 고운 정(情) 뿐만 아니라 미운 정(情)도 있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지요. 일단 정이 생기면  전등 스위치처럼 켰다 껐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情)이란 땅속에서 저절로 솟아오르는 온천수 같은 것. 그렇기 때문에 이호우는 “모르고 살아온 그 정 빙 눈물이 돌구나”라고 읊었고 소월은 “십오년 정분을 못잊겠네”라고 노래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정 때문에 울고 정 때문에 웃습니다. 정 때문에 가까와지고 정 때문에 멀어집니다. 이렇게 보면 반 백 년 넘게 낯선 곳에서만 이리저리 헤매면서도 아직도 그 산천을 그리워하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정(情)이란 다정심불(多情佛心)의 정토(淨土)에 자리잡은 거룩한 존재라는 생각을 아니할 수 없습니다. (202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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