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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산책
leed2017

 

 미국 대통령 선거가 가까워오는 2020년 8월 어느 맑은 여름날 아침이었다. 우리 부부는 아침을 먹기 전에 습관대로 우리가 사는 콘도미니엄 뒤 험버강을 따라 걷는 산책길에 나섰다. 산책길은 자동차 한대가 너끈히 다닐 수 있는 넓이의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 양쪽 옆으로는 숲이고 오른편 숲이 끝나고는 험버강이 흐른다.

 그날도 별다른 일 없이 길을 가고 있는데 저 앞에서 우리쪽으로 걸어오던 중동사람인 듯한 부부가 우리 앞에 다가오더니 우리를 막아서며 “오른쪽으로 걸어라”는 지시를 하는 게 아닌가. 순간 나는 속으로 “세상에 이런 무례한 놈이 있나”는 생각이 들어 내가 얼마 전 바로 이 길에서 순시하는 교통순경에게 ‘이런 길에서 왼쪽으로 걸어야 하느냐, 오른쪽으로 걸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순경의 대답이 어느쪽으로 걸어야 한다는 규정이 없으니 네 마음대로 걸어라’ 하더라는 말도 했다. 규정이 없다는 것이 나의 대답. 그래서 왼쪽으로 걸으면 앞에서 오는 자전거 같은 것을 더 쉽게 피할 수 있어 나는 왼쪽으로 걷는다고 친절한 설명까지 덛붙여 해주었다.

 그런데 이런 설명 따위는 이 중동에서 온 부부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이런 길에서는 오른쪽으로 걷는 것이 규범이란다. 어느쪽으로 걸어도 된다고 해도 “오른쪽으로 걷는 것이 규범이다”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네 기준은 어디서 나온 규범이냐”고 물어도 대답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오른쪽으로 걸으니 너도 오른쪽으로 걸어야 한다는 말 뿐이었다.

 나중에는 서로의 감정이 격해져서 나는 “내가 어느쪽으로 걸어야 하는 것은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나보고 어느쪽으로 걸어야 한다고 지시할 권리가 없다. 너는 너, 나는 나다. 너는 네 할 일이나 하고 나는 내 할 일을 하고 산다”는 요지의 주장을 해도 상대방은 오른쪽으로 걷는 것이 규범이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싸우다가 정든다는 말이 있듯이 어느새 정이 들었는지 나중에는 서로 웃으며 자기 주장만 하다가 헤어졌다.

 이 일이 있은 며칠 후 나는 중동 부부의 규범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규범이란 무엇인가? 규범이란 한 문화에서 정상적으로 기대하는 행동이다. 그러나 규범이란 문화에 따라 제각기 다르다. 예로 한국이나 일본 사람은 길거리에 걷고 다니던 신을 그대로 신고 집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북미 문화권에서는 신을 신고 집안에 들어간다. 이것이 규범의 차이다.

 벌써 20년이 넘었다.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교에 있을 때 어떤 파티 자리에서 어느 낯선 외국 교수가 아내를 소개하는 아내 뺨에 키스를 하려는 바람에 아내가 몹시 당황해 하던 기억이 난다.

 길을 왼쪽으로 걸어라 오른쪽으로 걸어라 하는 시비는 누가 맞고 누가 틀리다고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옛날 박정희나 전두환 같은 독재자 아래서 법의 획일적 해석과 복종을 수없이 경험한 사람들은 이 길 걷는 규범도 일종의 법이니 내가 오른쪽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 법에 저촉되는 일만 아니면 누구에게나 이래라 저래라 간섭받지 않고 행동할 수 있다. 규범의 해석도 그 사회 구성원의 과거 경험에 따라 제각기 다르기 마련이니 사실 규범이란 것도 이제는 몇 개 안 남기고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

 캐나다 같이 제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라에서는 “이것이 캐나다 사회의 규범이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나보고 오른쪽으로 걸어라 지시를 하던 중동계 부부는 요사이도 가끔 마주친다. 나는 아직도 왼쪽으로 걷고 그들은 오른쪽으로 걷는다. 나와 마주칠 때는 우리는 반가운 척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댄다.

 그러나 나는 속으로는 “아침부터 재수없게 저런 부부와 마주치나”는 생각이 든다. 그들도 아침부터 저 차이나맨(Chinaman) 만나서 재수 없겠다”는 생각을 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웃으며 손을 흔들어대며 지나간다. (2020.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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