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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leed2017

 

 내가 어렸을 적에 고향집 역동 앞을 흐르는 낙동강을 건너 늘매마을 북쪽으로 조금 가다보면 들판에 어마어마하게 큰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습니다. 주변에는 다른 나무들은 없었고 그 느티나무만 덩그렇게 서 있었는데 나는 아직까지 살아있는 느티나무가 그렇게 큰 것은 보질 못했습니다. 부채꼴을 하고 서 있는 그 나무 밑에는 작은 돌들이 깔려있고 사방이 그늘져 있어서 그 속으로 들어가면 시원하기도 하지만 으스스한 기분에 무섭기도 했습니다.

 사람들 말로 그 느티나무는 수 백 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느티나무에는 큰 구렁이가 한마리 살고 있다는데 나는 있다는 말만 들었지 구렁이는커녕 도마뱀도 한 마리 보질 못했습니다. 늘매 마을과는 뚝 떨어져 있어서 마을 사람들이 마을 앞 정자처럼 자주 드나드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그 느티나무 가지를 꺾거나 잎에 매달리거나 나무에 성가시게 굴면 구렁이가 밤에 나와서 “동렬이 너를 잡아간다”고 겁을 주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 나무 그늘 속으로 들어가서 앉아보지도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오래된 나무를 보면 엄숙해지고 두려운 마음까지 드는가 봅니다. 오래된  나무에 무슨 신령(神靈) 같은게 있다고 믿는지 그 앞에 서서 온갖 소원, 이를테면 딸을 입학시험에 합격시켜 달라, 우리 며느리 아들 낳게 해달라, 영감 바람 좀 덜 피우게 해달라, 영감 술 좀 덜 마시게 해달라는 등 각가지 소원을 비는 모양입니다. 도시에 가면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겠어요.

 나도 어른들이 하는대로 한 두 번 빌어볼 때도 있었지만 무엇을 빌었는지는 지금 전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 나무 그늘은 소변을 보기가 썩 좋은 명당이었으나 나는 거기에는 한 번도 소변을 보질 않았습니다. 혹시 신령이 보고 있다가 밤에 자는데 와서 나의 그 소중한 연장(지금은 맹장처럼 있으나 마나 한 존재)을 가위로 싹둑 잘라버리면 큰 일이 아니겠습니까?

 나무뿐 아니라 크고 오래된 자연에는 그것을 지키는 신령들이 있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우상숭배인지 모르겠으나 우리가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가서 제사를 지낼 때면 제사를 지내기 전에 산신령을 위한 행사로 ‘고수레’ 지내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요새 말로 표현하자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 잘 봐달라고 산신령한테 ‘뇌물’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그런데 요새 사람들은 내 어린시절과 비교해서 달라도 너무 다른 것 같습니다. 산소를 파헤치고 시신을 화장해서 납골당에 모시고는 그 뫼터 자리에 아담한 별장을 짓질 않나, 수백년 묵은 나무를 마구 베어내고 그 자리에 아파트를 짓질 않나, 좌우간 자연 알기를 우습게 아는 것 같습니다.

 요사이 언론에 자주 오르는 김해공항이 이를 잘 말해줍니다. 김해공항을 없애고 가덕도에 새 공항을 짓는 것보다는 기왕에 있는 김해공항을 더 크게 만들어 쓰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이라는 의견입니다. 그런데 김해공항 근처에 300m가 넘는 산들이 서너개나 있어서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데 무척 위험하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김해공항을 크게 만들어 쓰자는 이들은 산봉우리를 깎아 내리면 된다는 것입니다. 내 어릴 때 같았으면 이런 의견은 분명 미친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세 산의 산신령들이 합동회의를 갖고 “이 녀석들이 우리 머리를 깎아 내린다고?” “비행기를 김해 앞바다 속으로 집어 넣어버릴까봐” 하는 결정을 내리는 날에는 그야말로 폭망하는 날이 아니겠습니까.

 가덕도에 새로 공항을 짓는다는 것이 정치적 결정이라고 나무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는 집권당이 정치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뭐가 잘못되었느냐고 되묻고 싶습니다. 정치라는 것은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국민의 의견을 잘 들어서 국민 다수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게 정치 아닙니까? 그러니 집권자는 모든 결정을 반드시 정치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학교를 다닐 때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서 들은 것이 생각납니다. 이름이(분명치는 않으나) 클럭혼(K. Kluckhohn)이라고 기억합니다. 이 클 선생의 주장에 따르면 미국과 같이 인간이 자연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문화가 있고, 인도처럼 자연 밑에 있다고 생각하는 문화, 그리고 중국이나 한국처럼 자연과 조화를 강조하는 문화가 있다고 합니다.

 이 생각은 그 문화의 경제적 발달과 긴밀한 관계가 된답니다. 대체로 자연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문화는 산업이 발달되었고, 자연 밑에 있다고 생각하는 문화는 산업화가 느리고 경제발달도 늦다고 합니다.

 한국은 자연 속에서, 자연과 조화를 강조하는 문화라는데 이것도 벌써 한물 지난 생각인가, 산을 깎아 물길을 새로 내고 수백년 묵은 나무를 베어버리고 그 자리에 대형 갈비집을 내는 것을 보니 우리 인간들이 벌써 자연위에 누르고 앉아 떵떵거릴 뿐아니라 자연을 마구 짖밟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늘매 동네 앞, 강쪽으로 있던 느티나무는 수몰지구가 되는 바람에 전기톱에 잘려 어느 가구공장으로 실려 갔는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거기에 살고 있다던 그 구렁이도 나무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02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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