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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가 나오질 않네
leed2017

 

 한국 E여대에서 은퇴를 앞둔 1년 전쯤이었지 싶습니다. 중학교 동기 동창 H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이유인즉 H가 박사학위 공부를 한 캐나다 A대학교의 부총장이 한국학생들을 A대학교에 유치할 목적으로 한국에 나왔다 합니다. 왔던김에 A대학교에서 학위과정 공부를 한 사람으로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저녁 대접을 하겠으니 S호텔 양식부로 나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A대학교에서 박사과정 코스웍을 모두 마치고 학위논문을 쓰고 있었는데 내가 동부로 대학을 옮기는 바람에 먼거리로 주임교수를 만나기도 어렵고 흐지부지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아내는 한국 A대학교 동문회에 회원이었고 그날 저녁 모임에 참여할 자격이 있었지요.

 그래서 나도 아내 덕분에 저녁 모임에 갔습니다. 한 50명 정도가 모였을까 저녁을 먹고 옆자리에 앉은 사람하고 얘기를 하고 있는데 사회자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 내밀듯이 “이동렬 교수 앞에 나와서 좋은 말씀 몇마디 해주십시오” 하고 나를  끌어내는게 아닙니까. 사전 예고도 없는 완전 기습 작전이었습니다. 나는 영어로 뭘 쓰는데는 자신이 있었지만 말은 내 발음도 그렇고 어물어물 하고 유창하지를 못합니다.

 내 한국말도 어눌하거늘 미국말로 하라구? 그렇다고 캐나다 교단에만 30년을 섰다는 사람이 인사말 한마디 못한다면 말이 되겠습니까? 앞에 나가서 마이크를 물려 받았습니다. 이것을 한국말로 정면돌파라고 한다면서요.

 그런데 말이 나오질 않지 않습니다. 무정한 세월은 흐르고 또 흐르는데도 나는 마른 기침에 웰…웰만 하다가 겨우 몇마디 하고서는 마지막에 “땡큐”라는 말은 또렷하고 자신있게 끝내고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날 저녁에 나온 사람들은 “저 사람이 강단은 고사하고 캐나다에 50년을 살았다는게 맞나?” 할 정도로 영어가 되질 않았습니다.

 근거없는 주장은 아닌데 어떤 교수가 내게 한 말이 생각납니다. 사람은 죽을 때가  가까워 오면 제2외국어는 슬며시 사라지고 자기 모국어만 남는다는 주장입니다. 이승만도 하와이 요양원에 가 있을때 영어를 “예스” “노” 밖에 못했고 연세대 총장 백낙준도 그의 죽음이 가까와 와서는 영어는 다 잊어버리고 한국말만 했다 합니다. 내 운명도 그들과 같게 되지 않을까요?

 나는 요사이  TV에서 나오는 뉴스도 알아듣기 어려워서 듣질 않고 지냅니다. 한국에 가면 E대학교 학생들은 내가 영어권 나라에 50년을 살았다니까 꿈도 영어로 꾸고 영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 속만 타들어가니 어디 호소할 곳도 없습니다.

 물론 내가 사는 현재 언어환경이 그렇게 만들기도 했겠지요. 낮에 걸려오는 영어전화란 모두가 “집 팔겠으면 도와 주겠다”는 장사꾼들의 말뿐이니 영어로 대화할 기회는 거의 없습니다.

 심리학자들이 미국에 이민 온 사람들이 영어를 마스터해 가는 과정을 연구한 것을 보면 미국에 와서 영어를 시작한 나이를 꼽습니다.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좋고 그것도 15살이 되면 정점이 되어 그 이후에는 별로 덕을 보지는 못한답니다. 그러니 서른살에 미국에 오던 마흔살에 오던 별 상관이 없다는 말이지요.

 또 중요한 요소가 이 북미대륙 문화에 젖어드는 정도입니다. 북미대륙 문화에 젖어드는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영어에 대한 성장도 빠르고 깊다고 합니다. 내 생각에도 언어라는 것은 특정문화와 긴밀하게 연결된 것이므로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는 그 문화의 언어에 대한 이해도 제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로 “등 따시고 배 부르다”는 속담은 온돌이라는 문화적 개념을 모르고는 참 이해하기가 어려운 말이 되지요.

 나는 내 나이 26살에 캐나다에 왔으니 혓바닥이 굳을대로 굳어진 놈이었습니다. 게다가 나는 북미생활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내 이름도 “조지”니 “마이크” “폴”이니 하는 서양이름도 없습니다.

 나는 서양문화, 특히 북미대륙의 문화는 너무나 침략적이고 음험하며 이해타산적인 문화라고 원천적으로 부정하였습니다. 그러니 나는 북미대륙의 문화에 흡입되거나 동화되지 않고 실로 멀게 살아왔습니다.

 이 모든 것을 살펴볼 때 내 영어가 늘어갈 확률은 낮아지고 아마 이대로 있다가 저 세상으로 가지 싶습니다.

 한국 속담에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는 영어로 인사하고 영어로 회의하는 데는 될 수 있는 대로 피하려고 합니다. (202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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