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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機智)
leed2017

 

 내 생각에 나는 재치 혹은 기지(機智)랄까 더 넓게는 해학이나 순발력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순발력이나 기지가 있는 사람으로 보이려고 애를 쓰는 편이다. 예로 누구와 이게 옳은가 같은 논쟁을 할 때도 상대의 허점을 그 자리에서 날카롭게 지적해서 공격하지 못하고 집에 돌아와서 곰곰히 생각한 끝에 ‘이렇게 말했더라면 상대가 꼼짝 못했을 텐데…”하고 후회한다. 그야말로 버스 지나간 후에 손 흔드는 꼴이다. 내가 왜 그럴까?

 

 선천적으로 그런 집안에서 태어나서 그렇다고 조상을 나무랄 수도 있고 후천적으로 누구와 말다툼을 하며 자란 분위기에 휩싸여 보질 못해서 그렇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집안 식구들과는 물론이고 학교 친구들과도 경쟁에 신경을 써가며 소년시절을 보내지는 않았다.

 

 우리 집 가풍(家風)도 무시할 수 없다. 나는 어릴 때부터 집에서 형제들 간에 말싸움을 한다든지 누구와 다투며 살지는 않은 것 같다. 막내라서 야단을 맞으면 맞았지 말싸움을 해본 적은 없다. 그 놈의 군자가 뭔지 사내는 군자다워야 한다며 몸놀림은 물론 마음도 비교적 무겁게 가지며 뭣을 좀 아는 체라도 하면 너무 촐랑댄다고 야단을 맞곤 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을 슬로모션(slow motion)으로 살다보니 세상에 보기 드문 굼벵이가 되고 말았다.

 

 요새는 유투브를 통해 한국 국회의원들이 청문회 자리에서 논쟁하는 것을 많이 본다. 나는 국회의원이란 말을 들으면 골은 텅 빈 사람들이 요란스레 빈말만 떠들고 다니는 사기꾼 내지 허풍선이들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웬걸 그들이 말하는 것을 보면 이리저리 개 혀처럼 굴리며 말을 어찌나 요령있게 잘하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 같은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으면 입도 한번 뻥긋 못했을 것 같다. 그들은 골이 빈 사람들이라며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천만에 말씀. 아무리 그들 보좌관들이 말한 것을 적어준다지만 상대의 주장에 그렇게도 빨리, 논리에 맞게, 말대꾸를 할 수가 있단 말인가-.

 

 말하는 능력은 그 사람의 새롭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낳는 힘, 즉 기지나 해학을 만들어낼 수 있는 힘과도 관계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여기에서도 별로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는 것은 창의력과도 관계가 깊다. 예를 들면, 옛날 서울 뒷골목을 걷다보면 방뇨(放尿)하지 말라는 권고로 “방뇨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류의 충고가 대부분이나, 어떤 곳은 방뇨하면 “귀하의 연장을 싹뚝 잘라버리겠다”는 의미로 가위를 크게 그려놓은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약간 으스스한 기분이 들긴 하나 방뇨하면 절대로 안된다는 말보다는 훨씬 재치가 있는 메시지가 아닌가.

 

 변기를 두고도 잘 못해서 변기 바로 앞이 늘 지저분하게 물바다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이것도 “조준을 정확히 하십시오” 따위의 진부한 충고보다는 “남자가 흘려서 안 되는 것은 눈물만이 아니잖아요” 하는 애교있는 부드러운 기지에 찬 경고도 재미있다. 여기에 단연 압권은 “Your penis is not as long as you imagine”이다. 우리말로 옮기면 “당신의 연장은 당신이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라는 경고다. 이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물바다를 만들어 놓고 가는 사람들은 글쎄, 비뇨기과에 가서 소변이 흘러나오는 경로(經路)와 유속(流速)에 대한 철저한 검사를 받아야 할 것이다.

 

 기지나 해학이 풍부해지려면 매일의 생활에 여유나 느긋함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비행시간에 늦어 허둥대는 사람이 해학을 즐길 여유나 한가로움이 어디 있겠는가. 아버님께 들은 일화 하나. 내 수필 어디에서 한 얘기지만 한 번 더 써먹는다. 조선말기 이하응이 아들 재면(고종)의 아버지로서 대원군이 되어 나라의 권력을 쥐락펴락할 때의 일이다. 한 젊은이가 대원군을 찾아와서 넙죽 절을 하였다. 대원군에게 눈도장을 찍고 싶은 욕심에 그 젊은이는 또 한 번 절을 하였다. 모르고 있을 줄 알았던 대원군이 소리를 버럭 지르며 “내가 죽은 송장도 아닌데 왜 절을 두 번이나 하는가?”며 꾸짖었다. 난처해진 젊은이의 기막히게 재빠른 대답 “첫 번째 절은 소인이 왔다는 절이고, 두 번째 절은 물러간다는 절입니다”라고 둘러댔다. 나 같은 사람에게서는 10분 아니 100분을 기다려도 이런 신통한 대답은 나오지 않을 것 같다.

 

 날카롭고 기지에 찬 말솜씨를 배우자면 교회 같은데 나가서 입 놀리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와서 말하는 솜씨를 키우겠다고 어디에 나간다는 것도 세상의 웃음거리임을 면치 못할 것이 아닌가. 모자라는 말솜씨, 기지를 발휘해서 나를 단단히 무장시킨들 어디에다 써먹을 것인가. 입이 하나고 귀가 둘인 것은 말하기 보다는 듣기를 두 배로 하라는 말일께다. 지금 와서 뭣을 뜯어고치려는 욕심만 줄이면 마음도 맑아지고 오래오래 산다는데-.

 

 이제는 기지(機智)고 뭐고 다 틀렸다. 올해로 내 한국 나이 80, 쓸데없는 생각말고 아침저녁 양치질이나 부지런히 하고 귀도 깨끗이 씻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나 들으며 살자. 얼마 안 있어 천국 가는 문이 스르르 열린다고 한다. (201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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