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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
leed2017

 

 사람들은 달이 커지는 현상을 단계로 구분하여 어떤 이는 초승달을, 어떤 이는 그믐달을, 또 어떤 이는 보름달을 좋아한다며 퍽 요란한 이유를 끌어대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나 같은 두메산골에서 자란 시골뜨기는 ‘달은 달이지 뭐 그믐달이 좋다든지 초승달이 좋다든지 특별한 구별은 해서 무엇 하느냐’ 는 생각이지요. 여명기의 소설가 나도향은 그믐달을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그믐달은 요염하며 “감히 손을 댈 수도 없고 말을 붙일 수도 없이 깜찍하여 예쁜 계집같다”고 했습니다.

 

 한편 소설가 김동리는 한(恨)이 많은 사람들은 그믐달을, 꿈 많은 사람들은 초승달을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무심한 달 하나를 두고 이렇게 말이 많아서야 되겠습니까? 여기다가 전라도 부안이 낳은 시인 신석정은 1931년 ‘동광’에 발표한 그의 시 ‘님께서 부르시면’에서 “호수에 안개끼어 자욱한 밤에 말없이 재 넘는 초승달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님께서 부르시면…”하고 초승달을 끌어댔습니다.

 

 나는 보름달을 좋아합니다. 두메산골 생활의 뛰어난 조명구실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낙동강가 모래밭에서 이웃동네 아이들과 밤늦도록 어울려 놀던 추억과 뒤엉켜 있으니 보름달을 좋아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어느 하나가 좋고 그 나머지는 별 볼일 없다는 것은 아름답다는 말의 의미를 너무 좁게 정한 것은 아닐까요?

 

 달이 밝은 밤, 혼자서 터벅터벅 걷고 있는데 신작로(新作路) 저쪽에서 검은 물체 하나가 이쪽으로 오는 것이 보이면 머리끝이 쭈뼛, 신경이 곤두서지요. 혹시 나쁜 사람은 아닐까? 왜 하필 좋은 사람이 아니고 나쁜 사람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할까요? 아마도 형님, 누나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들, 이를테면 밤에 일어난 살인사건, 강도질, 도둑질 따위의 이야기는 수없이 듣고 밤길 조심하라는 충고는 귀가 아프도록 들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긴긴 가을밤이나 겨울밤 어른들이 들려주는 무시무시한 이야기의 무대는 거의가 깊은 밤, 어느 외딴집에서 시작되지 않습니까? 내가 들은 이야기의 많은 무대가 신작로였기 때문에 착한 사람보다는 악한 사람이 아닐까를 걱정했던 것이지요. 지나갈 때 갑자기 “야, 이거 동렬이 아이가(아닌가)? 니(너) 와 이레(이렇게) 늦었노?” 하는 동네어른을 만나면 얼마나 반갑고 마음이 놓이는지-.

 

 현대수필가 윤오영의 ‘달밤’이 있습니다. 이 수필은 보통길이의 채 반도 못 되는 아주 짧은 글이나 수필문학의 고전으로 꼽힙니다. 수필의 이야기는 어느날 달이 무척 밝은 밤으로 시작되지요.

 

 “내가 잠시 낙향해서 있었을 때의 일. …달이 몹시 밝았다. 서울서 이사 온 윗마을 김군을 찾아갔다. 대문은 잠겨있고 주위는 고요했다. 나는 밖에서 혼자 머뭇거리다가 대문을 흔들지 않고 그대로 돌아섰다. 맞은편 집 사랑 툇마루엔 웬 노인이 한분이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달을 보고 있었다. …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이렇게 두 사람이 앉아서 말없이 달을 보며 있다가 노인이 내오는 무청김치며 막걸리 한 사발을 마시고 나옵니다. 이렇게 두 사람이 아무 말 없이 앉아 오랫동안 있었다는 이야기는 칼라일과 시인 에머슨이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에도 나옵니다. 이 둘은 생전 처음 만나서 인사를 나눈 뒤 서로 30분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다가 칼라일이 일어서면서 “오늘 참 재미있게 놀았습니다”며 방을 나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우암(尤庵) 송시열과 양파공(陽坡公) 정태화의 일화에서 이와 비슷한 면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당시 영의정이던 양파공은 동생 치화와 자기 집에서 얘기를 나누던 중 우암대감이 갑자기 방문했다는 청지기로부터의 전갈이 왔습니다. 우암을 극히 싫어하던 동생 치화는 “형님, 나 그 자와는 얼굴도 마주보기 싫으니 다락에 올라갔다가 그 자가 가고 난 다음에 내려오겠습니다”며 다락으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다락에 올라간 동생 치화가 아무리 기다려도 방에서 인기척 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우암이나 양파공 둘 다 말이 없는 사람들이니 10여 분간 입을 다물고 있었지요. 우암이 돌아간 줄 잘못 판단한 치화는 “형님, 그 자식 갔습니까?”하고 큰 소리를 냅다 질러버렸습니다. 입장이 난처해진 양파공은 “아, 아까왔던 과천 산지기는 돌아가고 지금은 우암대감이 와 계시네.” 하고 둘러댔답니다. 우암이 가고난 뒤 양파공은 다락에서 내려온 동생에게 “나는 네가 내 뒤를 이어 영의정에 오를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 그만한 그릇이 못된다는 것을 알았네” 했답니다(동생도 나중에 영의정에 올랐습니다).

 

 사바(娑婆)세계의 흥망성쇠(興亡盛衰)의 사연을 알리 없는 저 달은 오늘도 뜨고 지기를 거듭합니다. 가슴속에 떠나지 않고 어려 있는 천추(千秋)의 정한(情恨), 사랑하던 연인과 헤어진 애처로운 별리(別離)를 보지 못했던가. 달은 무심하게 우리에게 왔다가는 무정하게 우리 곁을 떠나버립니다.

 

 이렇게 하면서도 사랑을 잃은 이나 사랑을 얻은 이의 기쁨이 되는 달은 만인의 연인이요 거울이며 방패막이요 초원(草原)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20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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