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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綱常)의 죄(罪)
leed2017

 

 우리는 무섭고 끔찍한 방법으로 저지른 죄(罪), 이를테면 사람을 죽여도 몹시 잔인한 방법으로 죽였다든지 아들이 부모를 죽인 것 같은 패륜 행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가 간혹 있다. 이럴 때는 '천벌을 받을 놈'이라거나 '하늘도 무섭지 않으냐?' '하늘이 내려다 본다'는 등 하늘을 끌어대며 혀를 찬다. 내 생각으로는 모두 허무맹랑한 말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하늘은 바람을 일으켜 구름을 옮기고, 눈, 비, 폭풍, 번개를 품고 밝은 햇빛을 통과시키는 것이 하는 일의 거의 전부일 거다. 하늘은 넓디넓은 공간, 그러니 자율적 의지나 생명은 없다. 하늘이 생명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번연히 알면서도 '하늘이 벌을 내릴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 절대 권력을 가진 전지전능의 그 무엇의 존재를 갈망한다는 증거가 아닐까?


 그런데 하늘을 끌어대는 죄는 주로 윤리, 그 중에서도 강상(綱常)윤리에 저촉되는 죄를 가리키는 것은 무척 흥미롭다. 강상(綱常)이란 무엇인가? 강상이란 조선시대 때 삼강(三綱)과 오상(五常)으로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이다.


 삼강(三綱))이란 유교의 근본이 되는 세 가지 강(綱), 영어로는 three fundamental principles in human relations이다. 즉 임금과 신하(군위신강), 어버이와 자식(부위자강), 남편과 아내(부위부강)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한다.


 오상(五常) 역시 유교에서 나온 말로 사람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의 도리를 말한다. 영어로는 five moral rules라고 할까. 군신유의, 부자유친,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 다섯 가지다. 상(常)이란 사람 사이의 관계를 질서 있게 하는 이법(理法). 오상은 인륜의 근본이라는 의미에서 오륜(五倫)이라 불리기도 한다.


 사람을 얽어매어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던 현대의 보안법보다 더 지독한 그 법이 기승을 부리던 조선시대 때는 강상(綱常)의 윤리를 범한 죄인에게는 가장 혹독한 형벌이 내렸다. 가장 흔한 얘로 노비(奴婢)가 주인을 살해하는 경우, 삼강의 군신유의를 확대한 죄니 무조건 종에게 사형이 내렸다. 노비는 어떤 경우에라도, 설사 주인이 종의 아내를 빼앗아 갔다 하더라도 주인을 죽여서는 안 된다. 손경희 님의 책을 보면 자기 홀어머니가 다른 남자와 간통하는 것을 알고 이 사실을 관가에 고발했더니 처벌받은 것은 간통한 어머니가 아니라 도리어 그 딸이었다고 한다. 딸이 어머니를 고발한다는 것은 강상(綱常)의 윤리를 범한 중죄(重罪)이기 때문이란 것.


 왜 이렇게 엄격한 강상윤리가 태어났을까? 조선은 고려를 부정하고 세워진 왕조. 마치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노무현 정권의 모든 것을 배척 혹은 무시한 것처럼 조선은 고려의 거의 모든 것을 부정하면서 새로운 사회질서를 확립하려 들었다. 우선 건국에 공(功)을 세운 공신들에게 보답을 해야 하는 시급한 요구. 그래서 공신들에게는 나라에서 막대한 토지와 노비가 내려졌다. 


 그 결과 이성계의 건국, 왕자의 난(亂), 세조의 왕위찬탈 등을 지나며 비교적 짧은 기간에 공신 수가 부쩍 늘어났다. 그 공신들은 평생 호의호식하며 그 자손들까지 세를 불리다 보니 한정된 토지와 노비는 바닥이 나고 분배상 갈등을 초래했다. 조선은 전쟁이 없었기 때문에 수입 노비는 없는 나라. 이런 환경에서는 노비공급을 위해서 노비신분을 오래 오래 지속하도록 하는 수밖에 없었다. 양반 상놈으로 짜여있는 사회구조에서 기득권층의 특권을 보장하는데 필요한 새로운 인간관계의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절실하였다. 


 이렇게 해서 나온 강상(綱常)윤리는 하늘의 뜻이니 두말 말고 운명적으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새 왕조의 엘리트들이 통치이념으로 만든 삼강오상은 500년이 넘도록 백성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얽어매었다. 그러나 그 법은 조선의 멸망과 함께 완전히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삼강오상 대신 오늘날 무엇이 들어섰는가. 인간관계에 있어서 지켜야 할 새로운 법도는 무엇인가? 내가 알기로는 없다. 있다면 그것은 돈을 벌어서 치부(致富)하는 것이라고나 할까? 돈만 있으면 강상윤리고 뭐고 필요 없다. 그러나 부(富)는 약(藥)도 되고 독(毒)도 되는 법. 부(富)에 대한 욕심 때문에 '하늘이 내린 벌'을 받을 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내가 한국을 떠난 1960년대에도 있었고 오늘도 있고 100년, 200년 뒤에도 있을 것이다.


 하늘이 벌을 내린다던 그 엄숙한 하늘로 사람 실은 비행기가 날고 로켓(rocket)도 빠른 속도로 날아간다. 이제 하늘도 무섭지 않은 모양이다. 하늘이 내린 죄건 아니건 속세(俗世)의 인간들이 저지른 범죄의 수는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다. (20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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