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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랩소디(Rhapsody)
leed2017

 

生色一年芳草雨, 薄情三月落花風(방초에 비를 뿌려 한 해 생색내더니만, 박정(薄情)하고나 삼월광풍 꽃은 왜 지우는가?)

 


 한말의 풍운아(風雲兒), 개세(蓋世)의 영웅 우남(雩南) 이승만의 시(詩)다. 나는 우남의 한시를 자유자재로 읽고 감상할 실력도 여유도 없는 둔재(鈍才). 우연히 어느 시인의 산문집을 뒤적이다가 눈에 띄기에 베껴둔 것이다.


 1875년 황해도 시골에서 양녕대군의 다섯째 아들 이흔(李?)의 서계(庶系)로 내려온 몰락한 양반집에서 태어난 우남 이승만은 두살 때 서울로 이사를 와서 우수현(雩守峴: 비가 오랫동안 내리지 않을 때 기우제를 지내는 마루턱) 남쪽에 살았다. 그의 아호 우남(雩南)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우남은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을 지냈다. 그러나 영화 끝에 욕(辱)이라는 말처럼 그의 정권 말기에 실정(失政)을 하여 나라 밖으로 쫓겨 갔다가 그 외로운 타국에서 쓸쓸히 이 세상을 하직하는 눈을 감았다. 그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나 중국의 모택동 못지 않는, 한국현대사에서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풍운아요 건국 초기의 영도자였다. 그에 대해서는 아직도 찬반(贊反) 말들이 많다.


 위에 인용한 우남의 시(詩)는 비바람에 시달려 낙화 신세가 되는 슬픔을 노래한 절구. 비바람은 꽃을 피게 하는 예쁜이 역할도 하지만 핀 꽃을 뚝 떨어지게 하는 심술도 있다. 그러나 시인들은 꽃을 떨어뜨리면 원흉으로 묘사하기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일찍이 조선 중기의 문신 면앙정(?仰亭) 송순은 "꽃이 진다 하고 새들아 슬퍼마라. 바람에 흩날리니 꽃의 탓 아니로다. "고 노래하지 않았는가.


 중국 당(唐)대의 시인 우무릉(千武陵)도 그의 오언절구에서 "꽃 피면 비바람, 인생엔 이별 (花發多風雨/人生足別離)"이라고 읊은 것은 비바람은 꽃잎을 흩날리는 원흉도 되지마는 인생살이에서 가장 큰 슬픔인 영원한 이별과도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조선 선조 때 문신 운곡(雲谷) 송익필도 그의 <우음(偶吟)>에서 비바람을 나무랐다.


‘밤비에 피던 꽃이/ 아침 바람에 지네/ 가엾다. 한 해의 봄이/ 비바람 속에 오가다니’ (花開昨夜雨. ?來風雨中)


 정민 교수는 위의 시 정조(情調)로 보아 작가는 꽃 아닌 사람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같다고 술회하였다. 즉 나라와 자신을 빛낼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당시 권력의 된서리에 희생되어 피어보지도 못하고 시들어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슬픔이 이 시에 잘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꽃을 사람으로 보고 비바람을 기득권 세력의 횡포로 본다면 앞서 인용한 우남의 시도 죄 없이 구석으로 내몰린 아까운 인재들을 보고 슬퍼 탄식하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성계의 18대 손이지만 한파(寒派)로 알려진 양녕대군파에 속한 가계인데다 그 파내에서도 격이 낮은 서계(庶系)였기 때문에 오랫동안 벼슬길이 막혀 몰락, 빈한한 가정에서 자란 우남 이승민. 이러한 가족 배경은 말이 왕족이지 기득권 횡포에 평생 기(氣) 한번 못 펴며 움츠리고 살아온 자기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 대한 동정과 쌓이고 쌓인 울분이 어찌 없었으랴.


 봄이면 피어났던 꽃들은 비바람 아니더라도 봄이 저물면 저절로 떨어지는 것. 이 세상에 도대체 영원 무한한 것이 어디 있는가. 사람은 죽어서 황천을 가고 무덤도 세월이 가면 봉분이 무너져 내려앉고, 비석은 마멸되고, 찾아오는 사람 발자국 소리도 끊어진다.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던 김태길 교수의 수필집에 <꽃 떨어져도 봄은 그대로>라는 제목을 단 책이 있다. 꽃이 떨어져도 이 세상 모든 일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말없이 진행된다는 것. 그러니 한 번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낙심하지 말고 꾸준히 마음 속에 둔 일을 계속해 나가자는 말이다.


 김 교수는 또한 일본 어느 고등학교 기숙사 노래에 “봄이 감을 슬퍼하는 노래(行春哀歌)라는 것이 유행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노랫말을 밝히지 않아 내용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김태길 교수는 노래내용이 너무 슬퍼서 젊은이들에게는 좋은 노래가 못 된다고 했다. 그러나 나같인 70 고희를 넘긴 촌로(邨老), 비바람 없이도 갑자기 어느날 잘 익은 과일[熟果]처럼 ‘뚝’하고 저절로 떨어질 사람에게는 봄이 가져오는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부끄러운 일. 그 노래의 내용이 무척 궁금하다.


 조금 전 창밖을 내다봤더니 안개가 자욱하여 불과 10미터도 안되는 거리에 있는 건물도 보이질 않았다. 세상에! 운심부지처(雲深不知處). 우리가 어리석어 꿈속에 산다더니 이게 바로 그 꿈속의 일이런가? 그러나 몇 분 사이에 안개는 어느덧 걷히고 밤새 흐르던 그 강물이 조용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호수같이 잔잔한 강물. 나를 기쁘게 그러나 때로는 슬프게 해주는 봄이 왔다. (20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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