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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神童)과 늦둥이
leed2017

 

 미국 지식층 사람들이 즐겨 읽는 [타임(Time)]이라는 잡지에서 현재 살아있는 세계 신동(神童)에 관한 특집을 낸 적이 있다. 소개된 사람들은 주로 예체능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신동들이었다. "이런 아이가 있을까?" "이게 정말일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일찍부터 놀라운 재능을 보여준 신동들이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특집에 적힌 몇 가지 사실들이 무척 흥미로웠다. 첫째, 신동들을 독점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는 것.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후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에서도 찬란한 재능의 빛을 뿜고 있는 신동들이 많다는 말이다. 둘째, 이들 신동들이 어른이 되어서는 어렸을 때 보여준 그 놀라운 능력을 계속 보여주는 '성숙한 신동'은 드물다는 것이다. "일찍 핀 꽃이 먼저 시든다"는 말이 있듯이 신동들 대부분이 정상적인 환경에서 꾸준하게 자기 계발을 위해 노력한 '늦둥이'들보다 결국에 가서는 더 나을 것도 없다는 말이다. 대기만성(大器晩成) 거북이가 결국에 가서는 토끼를 따라잡고 만다는 말이다.


 왜 어려서 이름을 날리던 신동들이 자라면서 일찍 시들어지고 마는가? 아직 심리학은 이에 만족할만한 대답은 내놓고 있지 못하고 있다. 부분적 이유밖에 되질 않겠지만 부모 형제나 이웃, 더 넓게는 사회 전체가 이들을 보는 시선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아무튼 신동들이 커서는 뒤쫓아 오는 대기만성형 늦둥이들에게 따라잡힌다는 것은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늦둥이 얘기가 나온 김에 퇴계(退溪) 이황 얘기를 해야겠다. 단군 이래 가장 큰 학자로 불리는 퇴계(退溪)는 과거(科擧)에 세 번이나 떨어졌다 한다. 4수 만에 진사시험에 합격한 것은 그가 27살, 문과(文科) 시험에 합격한 것은 33살 때였다. 퇴계에 비해 율곡(栗谷) 이이(13살에 진사시험에 합격했다던가?)나 고봉(高峰) 기대승 같은 사람들은 천재성이 번뜩이는 '토끼반' 출신들이다. 


 율곡이 22살 때 경북 안동 도산에 있는 거유 퇴계를 방문하여 이틀을 자고 갔다. 당시 58살의 대학자였던 퇴계는 22살 청년 율곡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율곡의 학문에 관한 질문에 성실한 자세로 설명을 해주었다고 한다. 율곡이 집으로 돌아갈 때 퇴계는 학풍상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던 이 젊은 학자에게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적어 주었다. 고재희 님의 힘을 빌려 옮겨 적어보자.

 

 

병도 깊고 문도 닫아 봄 못 봤는데
그대 와서 심신 뚫어 꿈 깨듯 했네
이름 아래 헛된 선비 아님을 알고
지난날이 부끄러워 몸둘 바 없네
속이 찬 곡식 숲엔 잡초가 없고
갈고 닦은 새 거울엔 티가 없는 법
.
공부에 힘 쓰며 서로 친하세
 

 

 


 퇴계의 학자다운 풍모와 사람에 대한 공경심을 잘 느낄 수 있는 시조이다. 뒷날 퇴계는 "옛 성인들이 후배를 두려워하라고 했는데 율곡이야말로 두려운 재주를 가진 선비다"며 율곡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400년 전 퇴계같이 꾸준히 노력하는 거북이 특성이다. 우리는 걸핏하면 대가요, 알아주는 권위요, 국제적이요, 최정상급이다. 대가, 알아주는 권위, 국제적, 최정상급이라는 별명이 이렇게 쉽게 붙여지는 풍토에서는 '늙은 신동'은 드물다. 이런 사회에서 자란 아이들은 계속 노력은 하지 않으며 이름 쫓기에 바쁘고 공명심과 자만심만 큰 사람이 되기 쉽고, 아동을 어른들의 허영심을 충족하는 도구로 이용당하고 마는 경우가 많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신동은 "저 사람이 저래도 옛날에는. " 하는 소리나 듣는 평범한 성인이 되고 마는 경우가 흔한 것이다.


 신동들의 어머니 아버지와 그리고 늦둥이들의 어머니 아버지들이여, 우리가 자녀들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은 퇴계와 같은 꾸준한 자아계발의 길, 노력의 길인 것을 잊지 말자. (200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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