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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leed2017

 

 지난 여름에는 대학원 학생 대여섯 명과 미국 하와이주에 있는 호놀룰루를 다녀왔다. 우리 일행이 나라 밖에 가있는 2주 동안 한국은 찜통더위가 될 것이라는 게 기상청의 말이니 우리는 이 더위에 좋은 피서지로 도망가는 행운아가 되었다. 3년 전에는 학생들과 샌프란시스코를 다녀왔는데 재수 좋게 이번에도 하와이가 걸린 것이다.


 호놀룰루 비행장에서 몇 시간 쉬었다 간 적은 있지만, 하와이 주위 섬들을 두루 살펴보는 여유는 한 번도 가져보질 못했다.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는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지 않았고, 주머니 사정이 든든할 때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북미대륙에 30년을 넘게 살아도 하와이 관광이라는 말은 우리 부부에게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다. 그래서 대한민국 국민의 세금으로 집행되는 '공적' 행사를 마치고 우리 일행은 하와이 주변의 몇몇 섬을 돌아보는 4박 5일 관광을 했다. 우리가 언제 또 하와이를 다시 오겠느냐는 비장한 각오로 한국에서 보름 동안 먹고살 생활비까지 미리 끌어당긴 '거액'을 거머쥐고.


 이렇게 하다 보니 공적 행사인 학회는 어느새 뒷전으로 밀려나고 남이 들으면 눈썹을 치켜올릴 하와이 관광만 부각되고 말았다.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하와이에 간다는 흥분으로 마음이 들떠 있었다. 그들의 준비물로 봐서 여행준비를 단단히 했다는 증거가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내가 하와이 땅을 처음 밟아 본 것은 지금부터 38년 전인 1966년 9월 11일이었다. 물론 비행기를 타본 것도 그때가 난생처음이었다. 비행기를 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남의 부러움을 사고도 남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더구나 청운의 꿈을 싣고 유학길에 오른다는 것은 영광도 보통 영광이 아니었다. 


 목적지인 밴쿠버에 가기 위해 미국의 북서(Northwestern) 비행기를 타고 호놀룰루에 잠시 내렸다가 샌프란시스코로, 샌프란시스코에서 다시 미국 국내 비행기로 갈아타고 이튿날 새벽 밴쿠버에 도착하였다.


 나를 기다리던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은 내가 앞으로 학문을 닦을 도장이라기보다는 내 앞에 우뚝 서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무슨 괴물같이 생각되었다. 오로지 목적을 달성하고야 말겠다는 결심으로 꽉 찬 피 뜨거운 청년이었다. 지금은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이지만 호놀룰루 비행장에 내렸을 때 어느 젊은 여인이 다가와서 목에 꽃을 걸어주고, 조금 더 있으니 저쪽 사람이 오렌지 주스 한 잔을 권하였다. 


 비행기를 처음 타본 이 안동군 예안면 부포동 역동 낙동강 가에서 자란 촌뜨기가 "저게 공짜일까?" 하는 의심이 들자 만일에 대비해서 조용히 주머니 속에 넣어둔 나의 전 재산 미화 60불의 안부를 묻던 생각이 났다.


 무정하다 세월이여! 그것이 바로 어제 같은 38년 전 일이다. 26살 청춘에 밟았던 그 호놀룰루 땅을 64살 노인이 되어 비행기에서 내리는 감회는 생각 밖으로 컸다. 그야말로 감개무량이었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를 외친 로마의 어느 개선장군처럼 이번에는 6명의 학생 소대를 인솔하고 호놀룰루에 '상륙' 하는 것이다. 


 혹시 너무 깊이 감회에 젖다가 여권을 잃어버릴까 봐 왼손에 든 여권을 필요 이상으로 꽉  힘을 주었다. 학생들과 마주 앉을 때는 1966년 9월 11일 나의 첫 '호놀룰루 상륙'에 대해 녹음기 틀어놓은 것처럼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세월이 달라도 많이도 달라졌다. 지금 학생들은 마치 고속버스터미널 광주행 매표소 앞에 서 있는 것처럼 태연자약한 태도로 저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서있는 게 아닌가. "겁도 없는 아가씨들아, 여기는 호놀룰루다, 호놀룰루. 이동렬이라는 싸나이가 1966년 9월 11일에 상륙한 하와이 땅이다."


 하와이는 분명 아름다운 곳이다. 지난해 봄에 울릉도에 갔다가 그 아름다움에 울고 싶도록 깊은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하와이도 울릉도 못지않게, 더 큰 스케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자연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산과 강이나 바다, 그리고 맑은 바람, 푸른 하늘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보탤 것이 있다면 아름다움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정서랄까 분위기이다. 예로 강가에 빈 맥주병이 뒹굴거나, 퀴퀴한 냄새가 나는 데서는 아름다움을 느끼기 어렵다.


 그런데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주는 것은 산이나 강, 바다만은 아니다. 확 트인 들판,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밭, 야생화 핀 들길, 실같이 흐르는 개천, 이 모두가 분위기만 맞으면 모두 아름다운 풍경이 될 수 있다. 한 편의 시나 수필 같은 문학작품, 글씨나 그림, 음악이나 연극 같은 창작 예술 등,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실로 무수하다. 수필이란 것도 그 글을 읽는 사람에게 미적(美的) 감동을 주는 것이 좋은 수필이 아닌가.


 이렇게 해서 하와이에서 열나흘은 우리 부부에게나 학생들에게 꿈같이 흘러갔다. 잊지 못할 추억이요, 그리움이다. 서울로 돌아오기 전날 밤이었던가. 어느 학생 하나가 "선생님은 이번 하와이 여행이 어땠어요?" 하고 물었다. 나는 "여러분 같은 활기차고 눈 맑은 소녀들과 함께 샌프란시스코로 호놀룰루로 다니는 것도 아마 이게 마지막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자꾸만 쓸쓸한 생각이 앞선다"고 대답했다. 나의 솔직한 고백이었다. 그리고 학생들은 앞으로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고 집을 장만하고 자녀를 가질 꿈에 부풀어 있겠지마는 이번 하와이 여행처럼 근심걱정 없는 때는 없을 것이라는 말도 했다. 


 포스터(S. Foster)의 노래 [켄터키 옛집]에 나오는, ". 어려운 시절이 닥쳐오리니 잘 쉬어라. 켄터키 옛집. " 이라는 구절이 생각난 것이다. 앞으로 이 세상에서 인생살이 속 눈물이 무거워지면 이번 하와이 여행을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내가 무슨 시인이나 철학자가 된 것처럼 남의 글에서 훔쳐온 글귀를 내 것인 양 마구 갖다 끌어대며 떠들었다. 


 사실 이번 하와이 여행처럼 즐거운 때는 앞으로 더 없을 것이라는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지나친 말이요, 악담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은 입 밖으로 내놓는 말에 따라 감정도 달라진다. 이런 말을 입 밖으로 내 논 내 마음에는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애잔한 슬픔과 설움이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내년이면 정년 퇴임이다. (200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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