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26 전체: 388,206 )
서울 가는 비행기 속에서
leed2017

  

 나는 그들을 영어로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타보질 못하고 하늘에 떠가는 비행기를 쳐다보기만 하던 시절에는 나는 '스튜디스'로 발음했습니다. 스튜디스에 '어' 자를 넣어 '스튜어디스(Stewardess)'로 발음한 것은 비행기를 타 보고 난 뒤의 이야기입니다. 


 내가 비행기를 처음 타 본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이 지나서, 정확히 말하면 대학원을 끝내고 유학길에 오른 1966년 9월 12일이었습니다. 머리 위로 폭포수가 쾅쾅 내리쏟아지는 것 같은 우렁찬 소리를 내면서 비행기가 부르릉 하늘로 치솟는 순간의 감격과 흥분은 내 젊은날의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비행기 안에서 나는 스튜어디스들이 일하는 것을 처음 봤습니다. 택시가 처음 나왔을 때 택시를 운전한다는 것이 하나의 인기직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스튜어디스도 대부분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 보질 못하던 그 시절에는 대단한 인기직(人氣職)이었습니다. 예로, E여대 무슨 과를 수석 졸업한 재원이 어느 비행기 회사의 스튜어디스로 취직되었다는 기사가 사진과 함께 D일보 같은 전국지에 큼지막하게 나왔으니까요.


 그때 스튜어디스는 내가 말 한마디 붙여 보기가 힘든, 저 멀리 강 건너 있는 여성이었습니다. 우선 비행기를 타고 이 하늘 저 하늘로 날아다니는 사람이 어찌 보통 사람이겠습니까. 난다 긴다 하는 멋쟁이들은 다 만나서 태연히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직업여성이 나같은 시골뜨기가 눈에 보이겠습니까. "저런 여자들은 절대로 집에 들어앉아 살림을 할 여자들이 아니다."는 생각은 나 혼자 조용히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이 생각이 내 좁디좁은 촌뜨기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1980년 여름,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어느 섬에 있는 대학교에 하계 강의를 하러 갔을 때였습니다. 우연히 최근 몇 년 동안 스튜어디스로 일하던 여성과 결혼한 K형 부인은 일등 주부였습니다. 예쁘고 체격 좋고 살림은 그 어느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만큼 알뜰하게 살고 있는 전(前) 스튜어디스를 보고 속으로 무척 놀랐습니다. 


 그러다가 요사이 알게 된 두 사람의 전 스튜어디스들을 보는 동안 내 편견은 말끔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화려한 삶을 쫓는 사람들도 아니고 고물고물 살아가기에 바쁜 주부들이란 것을 알게 되었지요.


 올 4월, 아내와 함께 한국을 다녀왔습니다. 내가 앉은 앞자리, 왼쪽으로 20대 젊은이들 몇이서 창가부터 나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불을 끄고 잠을 잘 시간에 이들은 스튜어디스에게 라면을 끓여 달라, 담요 하나 더 다오, 더운 물 한 컵만 달라, ... 얼마나 주문이 많은지 스튜어디스 한 사람이 약 한시간 동안 전적으로 그들에게 매달려서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를 옆에서 지켜보는 내 기분도 좋질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요구에도 이맛살 한번 찌푸리지 않고 시종 웃음으로 대해주는 스튜어디스가 무척 놀라왔습니다. 물론 고도의 훈련을 받은, 호두과자 기계로 찍어 낸듯한 그런 웃음이긴 하지만.


 스튜어디스가 이렇게 인내성 있고 상냥할 줄 알았다면 나도 그 옛날 스튜어디스에게 눈이라도 한번 껌뻑 우정의 시그널을 보내 볼 것을. 이제는 그 따위 수작을 할 나이도 지났습니다. 이제는 그들이 손녀같이 귀엽기만 한 '어르신'이지요. 


 어느덧 비행기는 북극 상공을 날고 있나 봅니다. 그 젊은이들은 창밖 한번 내다보질 않고 잠이 들었습니다. 배만 부르면 됐지, 바깥은 내다봐서 뭘 하겠느냐는 심사겠지요.


 그들뿐 아니라 그 비행기 창가에 앉은 손님이 어느 누구도 비행기가 인천 상공에 올 때까지 창밖 구경을 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이것도 낭만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창밖으로 구름바다를 내려다보는 낭만 같은 것은 이제 없어진 모양입니다. 


 라면을 끓여 나르기에 바쁘던 그 스튜어디스도 잠시 눈을 붙이러 갔는지 보이질 않습니다. 비행기는 지칠 줄 모르고 그리움이 짙어만 가는 밤하늘로 자꾸자꾸 날아갑니다. (2014, 04)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