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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이야기(48)
leed2017

 

 

 오늘은 작가를 모르는 사설시조 몇 수를 소개한다. 해설이 별 필요가 없겠구나 싶은 것은 해설을 생략했다. 

 

창밖이 어른어른 하거늘 님만 여겨 
펄쩍 뛰어 뚝 나서보니
님은 아니엇고 어스름 달빛에 열 구름이 날 속였구나 
마침 밤일셋 망정이지 행여 낮이라면 남 웃길뻔 했구나

 

※해설: 창밖에 무엇이 어른어른 하길래 혹시 님이 오셨나 펄쩍 뛰어나가 보니 기다리던 님은 아니고 어스름 달빛에 지나가는 구름이 나를 속였구나. 마침 밤이었기에 다행이지 낮이었다면 남 웃길 뻔 (바보짓) 하였네.

 

 사랑에 빠진 청춘남녀들에게는 실감이 가는 기다림이요, 애절한 상사(相思)이다. 이 정도를 안 기다려보고, 이 정도로 애타는 심정을 가져보지 못한 연인이 있겠는가. 그러나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변치 말고 사랑하자고 언약하고 서로 결혼을 했는데 열정이 식으면 산다, 못산다 미움으로 변하는 것은 도대체 왜 그럴까? 아무도 모른다. 

 

바람도 쉬어넘고 구름이라도 쉬어넘는 고개
산진(山陣)이 수진(水陳)이 해동청 보라매도 다 쉬어넘는 고봉 장성령 고개
그 너머 님이 왔다하면 나는 한 번도 아니 쉬어 넘으리라 

 

※해설: (고개가 높아) 바람도 쉬었다 넘고 구름도 쉬었다 넘는 고개. 산에서 자란 매 산진이나 집에서 길들인 수진이도 송골매도 다 쉬었다 넘는 그 높은 고개 장성령 고개. 그 어디에 내 그리던 님이 왔다하면 나는 한 번도 쉬지 않고 단숨에 넘으리라. 

 

 위의 산진이와 수진이 해동청 보라매가 나오는 사설시조는 김연갑 님이 전국에 흩어진 아리랑을 모아 펴낸 책 ≪아리랑≫에서도 여러번 눈에 띈다. 김연갑 님은 7여 년 동안에 걸쳐 50여 종의 아리랑 2천여 수를 수집, 정리하였다. 그 2천여 수에 달하는 아리랑 가사를 읽어보면 사랑과 정(情)에 대한 그리움과 두려움이 절반은 넘는 것 같다. 별다른 해석이 필요없는 ≪아리랑≫에 나오는 사설시조 한 수만 보자. 

 

산진매 수진매 휘휘청청 보라매야
절간 밑에 풍경 달고 방울 달아 앞 남산에 불까투리 한 마리를 툭 차가지고 저 공중에 높이 떠서 빙글빙글 도는데 
우리집 저 멍텅구리는 날 안고 돌줄 왜 몰라

 

≪아리랑≫에서는 이성에 대한 육정(肉情)을 주체하지 못하고 생각나는 그대로 쏟아 논 구절이 많다. 

 

사랑 사랑 골골이 맺힌 사랑
온 바다를 두루 덮는 그물같이 맺힌 사랑
왕십리, 답십리라 참외넝쿨 외 넝쿨 수박 넝쿨
얽혀지고 틀어져서 골골이 뻗어가는 사랑
아마도 이 님의 사랑은 끝간데 몰라 하노라

 

별다른 해석이 필요 없는 사랑타령이다. 

 

대천(大川) 바다 한 가운데 중침세침(中針細針) 풍덩 빠져 여남은 사공놈이 삿대로 귀를 꿰어 끄집어냈다는 말이 있지요
님이여, 나의 님이시여 열 놈이 백 가지 말을 할지라도 짐작해서 들으소서

 

※해설: 대천 앞바다 한가운데 중치 바늘과 가는 바늘이 빠져서 10여명의 뱃사공들이 달려들어 삿대로 바늘 귀를 꿰어 끄집어냈다는 (말도 안되는) 말이 있습니다. 내 사랑하는 님이여, 열 사람이 들어 100가지 허황된 말을 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보내시옵소서.

 

창(窓) 내고자 창 내고자 이내 가슴에 창 내고자 
들장지 열 열 장지 고모 장지, 문살이 가는 장지
맘돌쩌귀 수돌쩌귀 쌍배목(雙排目) 외 걸쇠를 크나큰 망치로 뚝딱 박아 이 내 가슴에 창 내고자 
님 그려 하 답답할 때면 열고 닫어나 볼까 하노라

 

※해설: 창을 내고 싶네, 창을 내고 싶네. 이 내 가슴에 창을 내고 싶네. 드는장지, 여는장지, 고모장지, 문살이 가는 장지, 암돌쩌귀, 수톨쩌귀, 쌍배목의 걸게는 큰 망치로 뚝딱 박아 이 내 가슴에 창을 내고 싶데. 님 그리움으로 가슴이 답답할 때는 열장지 고모장지 모두 열고 닫어 볼까나.

 

 논 밭 갈아 김 매고 배잠방이 대님 치고 신들메를 고쳐신고 낫을 갈아 허리에 차고 도끼 갈아 둘러메고 수풀 우거진 산중에 들어가서 말라죽은 나뭇가지를 배거니 배이거니 지게에 짊어지고 지팡이로 받혀놓고 샘물을 찾아가서 점심 도시락 씻고 곰방대를 툭툭 털어 잎담배 피워 물고 코를 골며 졸다가 석양이 재넘어 갈 때 어깨를 추스르며 긴 창(唱) 짧은 창 하며 어찌 갈고 하더라 

 

 어느 농부의 <청산에 살리라>이다. 원문을 그대로 실으면 너무 딱딱하고 무의미할 것 같아서 현대어로 고쳤더니 별 해설이 필요없게 되었다. 등장한 사설시조 대부분이 님 타령이었는데 이번에는 그야말로 나무꾼의 생활수기이다. 

 

바독 바독 뒤얽은 놈아 제발 비노니 강가에는 서지 말아라 
눈 큰 준치, 허리긴 갈치, 칭칭 감는 기분이 드는 가물치,
두루치, 메기, 넓적한 가자미, 부리 긴 꽁치, 등이 굽은 새우, 겨레 많은 곤장이 그물인 줄 알고 펄쩍 뛰어 달아나는데 
겁 많게 생긴 오징어는 쩔쩔매는구나
아마도 네가 와 섰으면 고기 못 잡아 큰일이다

 

 딴 설명이 필요없는 사실시조다. 시조가 좀 싱겁게 읽히기는 해도 별로 애절한 요구나 깊은 맛은 없는 것 같다.

 

 그리움은 남녀간 애정에서 출발한 그리움이 가장 강렬한 것 같다. 그러나 남남 녀녀 동성 사이에서 생겨난 그리움도 만만치 않다. 이성간의 그리움이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길이라면 동성간 그리움은 화로의 잿불처럼 은근하다고 할까.


고려말에 정당문학을 지낸 정공권이 친구를 그리워하는 한시(漢詩) 한 구절을 보자. 손종섭의 <옛 시정을 더듬어>에서 빌려 온 것이다.

 

피면 오마던 꽃 다 지도록 아니 오고 
그리며 못 보는 사이 달만 거듭 둥글었네
(有約不來花盡謝/ 相思不見重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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