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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大關嶺)
leed2017

 

 

(35)이동렬 수필

 

대관령(大關嶺)

 

 대관령은 대한민국 지도를 토끼 모양으로 놓고 볼 때 태백산맥의 서쪽, 즉 서울에서 동해 바닷가에 있는 도시 강릉을 거의 다가서 있는 큰 고개를 말합니다. 여느 고개처럼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그런 고개가 아니라 월정-횡계리까지는 밋밋한 경사로 오르다가 대관령 산마루에 이르러서는 갑자기 아래로 수십 구비를 돌고 돌아 강릉에 이릅니다. 사람들 말이 모두 아흔아홉 고개라지요.

 

 

 내 나이 꽃같던 20대 중반. 강원도로 무전여행을 간답시고 대관령을 혼자 걸어 내려가서 경포대까지 간 적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50년은 지났을 어느해 봄이었지요. 주머니에 지금 시세로 10만 원가량의 돈을 꼬깃꼬깃 꾸겨서 포켓의 가장 깊숙하고 비밀스러운 자리에 감추고 무전여행이라는 이름으로 거지꼴을 하고 강원도 땅을 이리저리 뚫고 싸다녔습니다.

 

 걸어서 월정사 유허지(遺虛址)에 들렀다가 저녁때가 되어 개울물 소리가 들려오는 어느 농가에서 하룻밤을 빌어 묵게 되었습니다. 밤이 되어 물소리를 더 가까이 듣고 싶어서 숫제 담요를 들고 개울가로 나와서 개울 바로 옆에서 물소리를 들으며 하룻밤을 보내던 생각이 납니다. 그야말로 풍찬노숙(風餐露宿)이었지요. 이튿날 월정사를 버리고 횡계로, 횡계에서 대관령 산마루로 가서 그 전설의 아흔아홉 고개를 내려가서 강릉까지 갔습니다.

 

 2014년 봄, 한국 여행을 계획할 때 다음 세 곳을 방문하리라 마음먹고 떠났습니다. 첫째는 나의 목표라기보다는 아내의 간절한 요청, 즉 고산(孤山) 윤선도의 해남 녹우당을 가 보는 것이었고, 둘째는 경기도 마재(馬峴)에 있는 다산(茶山) 정약용의 생가, 셋째는 내가 옛날 넘었던 대관령을 가 보는 것이었습니다. 50년 전 이 길을 내려갈 때는 냅색(knapsack) 하나 달랑 걸멘, 남루하기 짝이 없는 '거지'였으나, 이번에는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여관비와 용돈까지 두둑하게 준비해 갔으니 그때에 비하면 분명 대갑부의 여행이지요.

 

 횡계리까지 가서 택시로 대관령 분수령을 지나 조금 더 가니 어마어마하게 큰 돌에 '대관령 옛길'이라고 새긴 표지석이 나오고, 그 표지석 뒤로는 편안하게 앉아서 쉴 자리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갔던 날은 구름이 온 산을 덮고 표지석 뒤에 앉으니 구름이 우리 저쪽으로 휙 지나가는 게 보였습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장엄하고 신비스러운 풍광이었지요.

 

 내가 알기로는 대관령을 통해서 강릉 가는 길은 여러 개가 있습니다. 최신 길로는 대관령 밑으로 뚫린 터널. 이 터널을 빠져나오면 바로 강릉이니 편리하긴 하나 여행하는 맛은 나지 않는 재미없는 길이지요. 두 번째 길은 터널이 뚫리기 전에 만든 고속도로, 세 번째 길은 내 청춘시절에 걸어서 내려갔던 그 비포장 길(아스팔트길이었던가?)-. 우리 부부가 앉아 있던 곳은 대관령 옛길입니다. 강릉에서 태어나 <홍길동전>을 쓴 허균과 그의 형 허봉도 이 고개를 넘었을 게고 율곡(栗谷)의 어머니 신사임당도 어린 율곡의 손을 잡고 이 고개를 넘었을 것입니다. 그는 서울로 가며 대관령 마루에서 강릉 북평에 두고 온 친정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효심을 시 한 수로 남겼습니다.

 

늙으신 어머님을 두고

 

홀로 가는 이 마음

 

대관령 굽이굽이 돌아가는 강릉 땅

 

흰 구름은 저무는 산 푸름에 날아 내리네

 

(慈親鶴髮在臨瀛/白雲飛下暮山靑)

 

 

 바람이 없는 날씨인데도 무슨 볼일이 그렇게 급한가. 산 구름은 우리 옆을 쏜살같이 지나갑니다. 구름에 휩싸여 본 적은 있어도 구름이 내 옆을 지나가는 것을 보기는 처음입니다. 저 구름같이 휙 지나가 버린 세월. 풋풋했던 엣 시절을 회상하니 어딘지 쓸쓸하고 애처로운 생각마저 스며들었습니다. 남들은 지나간 일을 회상하면 지금이 더 즐겁게 보인다는데 나는 남들보다 더 비관적인 인생관을 가지고 태어났는가. 지난 일을 생각하면 적막하고 쓸쓸한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대관령 옛길이 시작되는 입구에서 우리는 정신 나간 사람들처럼 멍하니 주위 경치에 취하여 있다가 횡계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여느때 같으면 걸어서 강릉 시내까지 가 볼 생각을 했겠지요. 아닌 게 아니라 '이게 마지막 기회일 거다.' 하는 생각이 드니 강릉까지 걸어가고 싶은 충동이 간절하였습니다.

 

 그러나 지지지지(知止止止 : 그침을 알아서 그칠 때 그친다.)라는 말에다 내 나이 일흔넷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옆에서 내 손을 잡고 있는 아내와 함께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보배같이 행복한 순간에 만족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돌아서고 말았습니다. 여관에 돌아오니 내 대학동창 하나가 자기 아내 H여사가 지은 것이라며 내게 보내온 시가 내 심사를 더욱 고즈넉하게 만들었습니다.

 

 

 

역광의 노을 속에서

 

누가 나를 부르는가

 

 

 

아득한 수평선 너머

 

파도 소리 외로울 때

 

 

내 기억 멀고 먼 저편

 

엉겅퀴 꽃 손 흔든다.   (201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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