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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캐나다의 칼럼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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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변경선 동과 서(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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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마나스 드라이브(MANAS DRIVE), ‘프레드 바움가드너’ 목사 댁에 아주 귀한 코리언가족이 손님으로 왔다. 닥터 ‘쏭’, 미시스 ‘쏭 수지’와 ‘톰’ ‘헨리’ 두 작은 보이들이다.” 
“어. 진짜? 그런 거 신문에 났어요?” ‘영’이 놀라서 눈이 휘둥그래졌다. 


“ ‘마나스 가제트’(MANAS GAZETTE)에 났지.” ‘릴리안’과 ‘페이스’가 폭소를 터뜨렸다. 


언 클 ‘프레드’의 “오늘의 개그 1호”라고 하였다. 웃음을 깔고 기도로 시작한 아침식사는 그대로 기쁨이고 축복이었다.


“ ‘수지’ 여기 ‘톰’과 ‘헨리’의 옷은 빨아서 드라이어에 말렸어요. 별장에도 세탁기가 있으니까 나머지는 그곳에 가서 하기로 해요.” 어느새 아침에 벗어놓은 옷들을 곱게 개켜주었다. 


11시경에 수박색 ‘릴리안’의 새 차에 전부 타고 레이크로 출발하였다. 오대호를 끼고 있는 북미주의 도시엔 산이 없었다. 가도 가도 훤히 트인 시야에 가끔 낮은 구릉이 보이긴 했지만 산이라고 붙여 줄만한 곳은 하나도 눈에 뜨이지 않았다. 끝없이 펼쳐진 공간을 울창한 수림들이 가로 막기도 하고 바다처럼 넓은 호수를 옆으로 끼고 길이 꼬부라지기도 했다. 요트와 모터보트가 시원스레 흰 물거품을 내뿜으며 호수를 가르는 게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미국을 아름답게’라는 팻말이 가끔 눈에 뜨이기도 했지만 미국의 스위스라고 불리는 이 오대호 연안의 국도주위는 카메라의 앵글을 아무렇게나 갖다 대어도 멋진 풍경화가 될 만큼 산수가 아름답고 청정한 자연경관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스케넥타디’에서 북으로 두 시간 정도 캐나다국경 쪽으로 달리면 ‘몽트레알’ 못 미쳐 호수의 한 줄기가 미국 쪽으로 흘러내린 중간쯤에 작은 도시 ‘윌스보 로(Willsboro)’가 있다. '부케'강(Boqet River)이 ‘챔프레인’ 호수로 흘러 들어 아름다운 휴양지를 형성하고 있었다. 거기서도 한 20여분, 숲 속 길을 달려야 ‘릴리안’네 별장에 도달 할 수 있었다. 오는 길에 식료품점에 들려 빵과 고기 야채 등 한 주일간의 식료품을 잔뜩 사서 실었다. 


 목조 카티지가 여러 채 있는 둔덕을 지나 더 깊숙이 들어가니 바로 호숫가에 세 채의 별장이 멀찍멀찍 떨어져 서있었다. 그 중 가운데 집이 ‘릴리안’네 별장이었다.


잠긴 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서니 오래 동안 비워두었던 집 안에서 축축한 더운 기운이 확 끼쳐왔다. 곰팡이냄새 같은 건 전혀 없이 밝고 깨끗하게 정리 되어있었다.


 높은 천장과 대들보는 굵은 통나무로 삼각지붕인데 바닥은 부엌, 식당, 그리고 아주 넓은 홀,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 구조였다. 접시세척기(Dishwasher)까지 갖추어진 부엌을 지나면 넓은 식당이 있고, 식당 양 옆으로 하나씩 두 개의 방, 그리고 넓은 홀의 양 옆으로 큰 방이 두 개씩 4개의 방이 있어 도합 6개의 방이 있었다. 부엌 옆문을 열면 양 옆으로 세탁장, 화장실과 욕실 샤워장이 있었다. 


홀에는 장작을 때는 화이어 플레이스가 있고 그 앞에 아주 커다란 흔들의자, 풍금 라디오, 전축 그리고 티 테이블 등 가구가 적당히 배치되어 있었다. 단순한 디자인의 응접세트엔 두터운 마직 시트가 덮여 있어 방안 분위기는 투박하면서도 차분해 보였다. 마디가 그대로 들어난 마루엔 군데군데 터키산 알파카 울 양탄자가 깔려 있어 휴양지 운치를 더해 주었다. 


왼쪽 두 방을 정해 주었다. ‘영’과 아빠, ‘현’과 엄마가 한 방을 쓰기로 하고 짐을 풀었다. 방엔 높은 침대와 거울 달린 서랍장, 책상이 있고 옷장엔 두터운 이불이 여러 채 쌓여 있었다. 물가이고 숲 속이라 새벽녘엔 무척 춥다고 하였다. 


홀의 전면은 전부 유리로 되어 있었다. 문을 열고나서니 호수가 그대로 폐 속으로 흘러들 듯, 상쾌한 물 냄새가 흠씬 밀려들었다. 바다를 쓸고 온 시원한 바람이 으스스한 한기마저 느끼게 하였다. 


홀만큼 넓은 베란다의 오른쪽은 스크린 룸, 왼쪽엔 스토레지(보관실)가 차지하고 있었다. 넓적한 나무계단을 내려가면 뜰이 있고 뜰 끝에 있는 돌층계를 내려가면 모래사장까지 나무판자길이 물가 도크가 이어져 있었다. 작은 보트 하나가 물결이 치는 대로 흔들거리며 매어있었다. 


만처럼 구부러져 돌아간 호수는 양 기슭에 청청한 나무들이 울창해서 잔잔한 호수는 눈 닿는 저 끝 수평선에서 숲 뒤로 숨어 있었다. 고요함, 맑고 깨끗하고 청순한 대기는 날숨을 뿜기조차 두렵도록 장엄하였다. 


광활하고 치밀하게 조화된 자연미는 보면 볼수록 자신을 아주 작은 모래알로 부스러뜨렸다. 지극히 아름다운 것, 한없이 원대한 것들과 마주서면 언제나 슬퍼졌다. 보잘것없는 존재의 무상함이 눈물마저 어리게 하였다. 


 나를 잊은 채 언제까지나 망연히 호수를 바라보았다. 잔잔한 호반위에서 물의 요정 님프들이 손에 손을 잡고 원무를 추며 아른거리고, 더욱 더 멀리, 물위를 거니는 하얀 옷자락이 살랑살랑 나부끼는 환상이 비쳐왔다. 우주 생명의 근원이 된 물, 호수는 만물을 품고 위대한 정적에 싸여 있었다. 


호수 가에는 저녁이 일찍 왔다. 아직 해가 지려면 먼 시간이지만 울창한 나무그늘에 덮인 호수엔 어슴푸레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물굽이가 돌아간 저쪽 호수 끝엔 나무들 사이로 한 줄기 햇살이 들이비친 듯 금빛파도가 고기비늘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추워 엄마. 고만 들어가.”


 안으로 들어오니 ‘현’을 안고 앉은 아빠와 ‘프레드’는 이야기에 열중해 있고 ‘페이스’와 ‘릴리안’은 식탁을 차리느라 바빴다. 깜빡 잊고 호수만 바라보고 서 있었던 것이 미안스러워 얼굴이 붉어졌다. 


“뭐 좀 도와드릴 것 있어요?” 


“아니요. 오늘 저녁은 요리를 하지 않기로 했어요. 오느라고 피곤하기도 하지만 어차피 레이크에선 간단하게 식사를 하기로 정하고 있으니까요”


야채샐러드를 빼고는 거의 전부가 통조림이거나 익혀서 포장한 음식으로 상을 차렸다. 


“그게 좋지요. 아무래도 별장은 쉬러 오는 곳이니까요. 여자들도 좀 쉬어야지 레이크에 와서까지 일만 해서야 그게 무슨 휴식이겠어요.” 


“하. 하. 그렇게 이해를 해주니 참 반갑군요. 역시 여자는 여자끼리 통하나 보지요?”


초대받아 가서 주부가 바쁘게 일하는 것을 볼 때처럼 마음이 무거워지고 식욕이 떨어지는 일이 따로 없었다. 손님 접대나 피크닉이나 여행 때에도 따라다니는 일 더미는 항상 여자들의 몫이었다. 그런 부담 없이 식사하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 저녁은 참으로 마음 가벼운 즐거움을 주었다.


‘페이스’가 ‘영’에게 그림동화책을 읽어주고 있는 동안 그릇을 모두 접시세척기에 집어넣은 ‘릴리안’과 ‘숙’은 남자들의 화제에 조용히 한 몫 끼일 수 가 있었다.


‘페이스’가 읽는 것을 그대로 따라 읽는 ‘영’의 목소리가 제일 크게 방안에 울렸다. 


 
 벽난로에 타오르는 불꽃


 해가 지자 으스스하니 추위가 엄습해 왔다. 숲의 나무들은 새까만 이불을 덮고 쉴 채비를 하는 지 바스락 속삭임만 소곤소곤 떠 다녔다. 호수는 까만 비단 천 밑에서 숨고르기라도 하는 듯 고요하기만 하였다. 


“ ‘수지’ 이거 걸쳐요.” ‘릴리안’이 두터운 털옷을 한 아름 안고 나왔다. ‘프레드’가 커다란 바구니에 장작을 가득 담아가지고 들어오더니 벽난로에 불을 지폈다. 길다란 마분지원통에서 향료가루를 한줌 털어 넣자 확 불꽃이 일어나면서 솔향기가 집안 가득 퍼져나갔다. 한 여름 밤 스웨터를 둘러쓰고 모여 앉은 얼굴들에서 각가지 불꽃 그림자가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었다. 


 “ ‘톰’은 영어 많이 배웠습니까.” 


“배우긴 많이 배웠는데…” 머뭇거리자 


“그래도 애들이 말을 더 빨리 배울 겁니다. 아마 지금도 ‘톰’이 ‘수지’보다 더 잘할 걸요.”


고개를 끄덕이는데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릴리안’이 깔깔거리고 큰소리로 웃었다. 


“낫고말고요. 벌써 전화를 받을 정도인데…” 그러자 이번엔 ‘프레드’도 ‘페이스’도 합창이라도 하듯 함께 따라 웃는 것이었다. 영문을 몰라 아빠의 얼굴을 마주 쳐다보았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집에 온 ‘웨슬리’가 온 집안 친척들 앞에서 들려준 이야기라 하였다. 


‘버펄로’에 온지 2개월쯤 지난 어느 날, ‘웨슬리’가 볼일이 있어 ‘쏭’을 찾았다. 학교에서는 찾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집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영’이 받았다고 한다. 


“헬로” 단번에 ‘영’인걸 알아챈 ‘웨슬리’는 그대로 전화를 끊을까 하다가 눈을 말똥이고 수화기를 들고 있을 ‘영’이 생각나서 잠깐 망설이다가 불현듯 한 꾀가 생각났다고 한다.


“헬로. ‘타이용’” 


“아 ‘웨슬리’ (아 찌 구 나.)”


“이즈 유어 (아빠) 앳 홈?”  


“노. (아빠 스쿨 갔어.)”


“오케이 댕 큐. ‘타이용’ 굿바이”  


‘쏭‘이 집에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으니 전화를 건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다. 기분 좋게 끊었다는 것이다. 성탄 파티가 웃음으로 진동하였다한다.


 
  ‘톰’은 아주 똑똑한 아이입니다. 겨우 두 살 지났는데 그처럼 의젓하고 영리하지요. ‘릴리안’이 그렇게 끝말을 달았지만 이번엔 아빠와 ‘숙’이 큰소리로 웃었다. 엉뚱한 ‘영’만 우스운 게 아니라 기발한 착상을 한 ‘웨슬리’도 우습긴 마찬가지였다. 


옛날얘기 ‘복숭아장군’이 스테이션 웨곤에 보물을 실어왔다고 웃기던 ‘영’과 코넬대학수재 ‘웨슬리’의 순발력 겨루기라도 보는 듯해서 웃음소리는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언제부터인지 밖에는 안개 같은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영’과 ‘현’을 눕히고 나오니 사방은 갑자기 깃털처럼 부드러운 평안함에 묻혔다. 몸은 피곤하지만 무언지 모르게 가슴 충만하게 고여 오는 이 밤을 쉽게 잘 수는 없었다. 어른들은 그대로 벽난로 앞에 둘러앉아서 티를 마시며 한담을 하였다. 


 “ ‘수지’ 미국에 온 인상이 어떻습니까.” 의외로 ‘프레드’가 ‘숙’에게 물었다. 예기치 않은 질문을 받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겨우 대답을 하였다. 


“미국에 와서 그간 받은 인상은 ‘신(神)은 미국을 너무 많이 축복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응? ‘릴리안’이 고개를 휙 돌려 ‘숙’을 쳐다보았다. ‘프레드’는 말없이 장작불에 시선을 꽂고 있었다. 확실히 예상 밖의 대답에 놀란 듯하였다. 단순히 ‘아름답다’거나 풍요하다거나, 그런 표현이 아닌 대답을 기대하진 않은 게 틀림없었다.


“어째서 ‘너무 많이’라는 표현이 붙을까요?” ‘릴리안’이 되물었다. 


“미국인들은 신(神)의 축복이 어느 만큼인지 미쳐 깨닫고 있지를 못하니까요.”


‘릴리안’도 무엇을 생각하는지 잠시 시선을 멀리 두고 잠잠하였다. “참 멋진 표현 이었다”며 아빠는 속으로 감탄하였다.


“ ‘수지’ 말이 옳습니다. 그 말은 나로 하여금 슬픈 반성을 하게 만듭니다.”  ‘프레드’가 말문을 열었다. 


“미국은 큰 대륙입니다.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대서양연안에서 태평양연안까지 속속들이 신의 축복을 받은 나라는 미국밖에 없습니다. 어디를 가나 아름답고 풍요한 자연이 있고 먹을 것이 있습니다. 지방마다 특이한 자원들이 풍부하고 모자라는 것이 없으니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하지만.” 차로 목을 축이고 다시 계속하였다.


“당신은 이런 것들을 동시에 보았겠지요. 정신을 좀먹는 근대문명은 인간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또 그것은 인간의 건강자체도 해칩니다. 인종차별이 있고, 반전데모가 있고, 히피가 떼를 지어 다니며 미국을 거부합니다. 아름다운 자연은 더 이상 아름다워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이 당연하게 보이는데 고마운 생각이 들 리가 없지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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