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slim

부동산캐나다의 칼럼기고
www.budongsancanada.com
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3 전체: 36,530 )
맨발의 여자 ‘제인 에어’(Barefoot Jane in Ayre)(6)
kslim

 

(지난 호에 이어)
그녀의 표정은 너무나 절박하고 진지했다. 그리고 무릎에 난 상처, 또 배에 칼자국은 또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오늘 밤에 정말로 트럭으로 찾아올까? 만약에 온다면 진짜 태워줘야 하나? 고민했다.


처음엔 커피숍이 외삼촌 가게라고 했다. 그런데 정작 부를 때는 그냥 ‘주인아저씨’라고 했다. 또 ‘이 동네에서 이거예요!’하며 엄지를 보여 주었다. 그 뜻은 이 마을 한국 사람들 중 가장 힘이 세거나 엄청난 권력이 있음을 의미한다. 과연 그게 뭘 뜻하는 걸까? 조직폭력배일까?


화물 상차를 마치고 공장 주차장 한쪽에 트럭을 세웠다. 잘 준비를 하였지만 잠들 수가 없었다. 그 아가씨가 과연 올까? 커피숍에서 여기 공장까지 차로 5분도 안 걸리지만 걸어서 온다면 30분은 족히 걸릴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 못 자며 뒤척거리다가 12시가 훌쩍 넘었다. 새벽 1시가 넘어도 그녀는 오지 않았다.


문득 에어AYRE라는 타운 이름이 친근하게 느껴진 이유가 생각났다. 영국의 여류소설가 샬럿 브론테가 1847년 쓴 소설, ‘제인 에어’(Jane Eyre)의 이름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추억 속에 되살아나는 그 줄거리가 아련하다.


제인 에어는 고아가 된 후, 숙모인 리드부인에게 맡겨지고 정신적인 학대를 당한다. 어느 날 잘못한 대가로 제인은 '붉은 방'에 갇히게 되고… 커피숍 아가씨가 외삼촌에게 붙잡혀 있으니 제인 에어와 비슷한 처지가 된다.


제인 에어는 학교에 보내지고 우여곡절을 거쳐 가정교사가 되고 그 주인남자 로체스터에게 청혼을 받고 결혼하게 되지만, 로체스터에게는 이미 정략적으로 결혼한 여자가 있었다. 충격 속에 집을 떠난 제인 에어는 세인트 존을 만나 안정을 되찾고 사랑을 하지만 세인트 존은 어이없게도 그녀의 사촌임이 밝혀진다. 


숙모가 죽고 많은 유산을 물려받은 제인 에어는 다시 로체스터에게 돌아온다. 하지만 불에 타서 폐허가 된 집과 한쪽 눈과 한쪽 팔을 잃어버린 로체스터만이 그녀를 맞이한다. 그리고 제인 에어는 로체스터와 함께 진정한 삶을 꾸려나간다. 세월이 흐른 후, 제인 에어는 과거를 회상하면서 이 소설은 끝을 맺는다.


이거 정말 우연처럼 기가 막힌 운명이지 않은가? 제인 에어의 주인공을 매사추세츠 주의 에어에서 만나다니? 그 다방, 커피숍 아가씨를 제인 에어라고 불러야겠다.


똑똑똑, 눈을 떴을 때는 아직 어두운 밤이었고 트럭 안이었다. 제인 에어의 줄거리를 따라 운명과 사랑을 생각하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깜박 잠들었나 보다.


똑똑똑, 다시 트럭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벌떡 몸을 일으켜 문을 열었다. 어둠 속에 제인 에어가 서 있었다. 붉은 드레스를 입고 로체스터를 다시 찾아 온 제인 에어의 실루엣이 아른거렸다. 아니 빨간 티셔츠에 검은 색의 쫄 바지를 입은 커피숍의 그 아가씨가 정말로 찾아왔다. 


깜깜한 밤길을 혼자 걸어서 왔다. 간신히 트럭에 올라서는 그녀는 놀랍게도 맨발이었다. 그녀가 비틀거리며 나에게 기대며 고꾸라졌다. 그녀의 목덜미에서 나는 살 냄새보다 먼저 강하게 풍겨 온 것은 지독한 술 냄새였다. 그녀는 만취해 있었다.


이 밤중에 여기까지 걸어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더구나 맨발이었다. 슬리퍼는 어디에 내동댕이쳤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은색 고리가 달린 검은 가죽 숄더백이 그녀의 어깨에 간신히 매달린 채 흔들거렸다. 한 손으로 꼭 잡고 놓지 않았다.


“그 놈이 이걸 꼭 숨겨 놓고 있어서 찾느라고 시간이 오래…” 


혀가 꼬부라지는 말로 검은 색의 가죽가방을 들어 보였다. 아마도 그녀의 여권을 말하는 것 같았다. 인신매매하는 범죄단들이 하는 일이 바로 여권부터 뺏어서 감춘다고 들었다. 


주절거리는 그녀의 말과 행동은 오늘밤 여기에 오기 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하게 했다. 흐트러진 옷 매무새, 잔뜩 술에 취한 그녀, 아마 주인아저씨와 거창하게 술판을 벌였겠지. 외삼촌 아니 에어에서 캡틴이라는 주인아저씨를 재우기 위해 술을 잔뜩 먹이고 본인도 취했을 것이다. 그리고 방을 뒤져 여권을 찾아서 비틀거리며 여기까지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하여 달려 왔을 것이다. 신발조차 챙길 시간이 없었던지 아니면 정신 없이 달려오다 신데렐라처럼 잃어버렸든지….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