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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아메리칸 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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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미국인의 영어문학소설을 위한 생각 


내가 코리안 아메리칸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는 단순한 흥미와 호기심이었다. 학생 때 한글판으로 읽었던 세계명작들을 원작 영문판으로 다시 읽으면서 새로운 해석과 감동을 얻는 희열감을 만끽했다. 존 스타인벡, 마크 트웨인, 헤밍웨이 등의 고전들이다. 나의 영어실력은 대단하지 못해서 완벽하게 이해하거나 소화하지 못하지만 아는 만큼만 읽고 이해해도 충분한 감동과 재미가 있었다.


내가 어릴 때 읽었던 세계명작의 대부분은 한문이나 일본어로 번역된 책을 다시 한글로 번역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일본식으로 강요된 지식과 주입식 교육, 암기위주의 공부를 가장 싫어했다. 내가 다시 영어원문소설을 읽기 시작한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소설을 영문번역판을 먼저 읽고 한글판을 읽었을 때는 아주 미묘한 차이가 느껴졌다. 언어의 어법과 말투, 순서 그리고 표현과 강조의 형용사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고 문화적 차이나 시대적 상황의 이해부족 또한 진정한 의미나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물론 오역 또한 번역에서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지만 오역은 쉽게 정정할 수 있는 문제이다. 더 큰 문제는 그 오역을 지적하는 평론가나 문학인들의 태도이다. 


최근에도 한국의 유명한 작가의 영역소설이 세계문학계에 알려지자 한인 문학자들이 오역에 대한 지적과 평론을 앞다투어 내더니 뉴욕타임지에까지 실릴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영역 소설은 영어권 문화에 속한 독자들을 위한 것이다. 영어 소설을 한국문화권 입장에서 읽고 해석해서 잘못됐다고 지적할 이유가 없다. 특히 원문과 다르다고 지적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님의 침묵’에서 ‘조국’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내 기억두뇌에 답답함을 금할 길이 없다. 나는 내 생각에 자유를 끊임없이 갈망하고 있다.


나는 내 인생의 반을 한국에서 살았고 나머지 반을 캐나다에서 살았다. 한글과 영어, 한국문화와 북미문화를 접해본 소수 중의 한 사람이다. 한글과 영어를 모두 읽을 수 있으며 또한 두 개의 문화를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나는 소설과 문학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한국문학이 세계에 알려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세계인 모두에게 한글을 배우게 하는 일이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다른 방법은 바로 번역이다. 


세계 최초로 영어로 번역되어 출판된 한국소설은 김만중의 구운몽이며 1922년 ‘The Cloud Dream of the Nine’이라는 제목으로 제임스 게일 James Scarth Gale 선교사에 의해 번역 출간되었다. 우리나라 소설의 최초 번역가는 미국인도, 영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바로 캐나다인이었다. 


나는 James Scarth Gale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면서 그의 업적과 매력에 빠져들었다. 캐나다 온타리오의 알마 태생으로 토론토 대학 출신이라는 것도 반가웠지만 구운몽의 영어번역뿐 아니라 John Bunyan의 소설 ‘Pilgrim Progress’를 ‘천로역정’이라는 제목으로 한글 번역하였으며 이것이 최초의 한글 번역 소설의 효시라고 한다. 대단한 일이다.


그의 수많은 작품과 업적은 한국문학의 귀중한 자료이며 역사적 가치가 있다. 우리는 너무 소홀하게 대하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야 한다. 


토론토 대학 유영식 교수님의 관심과 노력으로 ‘착한 목자: 게일의 삶과 선교’가 출간되었음에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또한 감사드린다. 나아가서 제임스 게일 선교사의 한글과 영어의 번역과 문학적 가치에 대해서도 좀더 깊은 연구와 평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번역은 창작만큼이나 섬세하고 창의적이고 힘든 작업이다. 간단한 오역이나 쓸데없는 오타나 지적하는 번역문화 아래에서는 어림도 없다. 


최근 한국문학 소설을 영역 출판하고 있는 데보라 스미스 Deborah Smith 같은 번역가가 나와 나를 즐겁게 하고 있다. 나는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데보라 스미스의 영역판 ‘The Vegetarian’으로 먼저 읽었다. 당연히 오역이라는 부분이나 어색한 느낌의 표현을 느끼지 못했다. 다만 한국지명이나 이름이 한국소설이라는 티가 났을 뿐이다.

정말 훌륭한 작품이었고 훌륭한 번역이었다. 이런 번역가들의 작품이 한국 문학이 영미문학에 진출하고 세계문학으로 향하는 변환점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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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mbowon
rambowon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