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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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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 '캔터베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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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이야기의 도시, 캔터베리가 우리 여행 일정 속에 들어있었다. 캔터베리는 스코틀랜드가 아닌 영국 남부의 내륙지방에 있다. 에든버러의 웨이벌리 역에서 기차를 타고 런던 세인트판크라스 역에서 갈아타야 했다.
 


 

대학 시절 영국문학사 시간은 언제나 진력이 났다. 그러나 14세기 초에 제프리 초서(1343~1400)가 쓴 ‘캔터베리 이야기’가 나오면 결석하는 학생이 줄어들었다. 14세기경까지도 영국 상류사회의 설화들은 프랑스어나 라틴어로만 쓰였다.
  그 관행을 깨뜨린 사람이 초서다. 서사시체의 설화문학을 영어로 처음 쓰기 시작한 그의 ‘캔터베리 이야기’는 16세기경 우리나라 광해군 시대에 허균이 ‘홍길동전’을 한글(언문)로 처음 쓴 것처럼 문학사적인 의미가 크다. 
‘캔터베리 이야기’는 런던 템스 강변의 타바드 여관에서 출발한 순례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성지인 캔터베리성의 대성당을 향해 가는 이야기다. 31명의 순례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갈 때 1편, 올 때 1편씩 들려준다. 초서 자신도 시인으로 해설자로 또 여관주인으로 등장한다. 
기사와 그의 종자, 수녀원장과 사제, 법률가, 탁발수도사, 의사, 옥스퍼드대학생, 바스의 여자 직조공, 선원, 요리사, 방앗간 주인, 목수며 농장주인 등이 성스러운 세계와 속물근성의 성격묘사를 통해 당시 사회풍습과 교회를 풍자했다. 초서는 여관주인 호스트로 많은 무리를 캔터베리라는 천국으로 인도하는 홀리호스트이기도 하다.

 

 
 

성내엔 ‘캔터베리 이야기’라는 극장이 있다. 주인공의 모습을 그려 넣은 깃발이 펄럭이는 골목 안에서 초서의 옛날이야기를 매일 공연한다. 이런 퀴퀴한 옛날 얘기는 관심 밖인 남편의 소매를 잡아당겨 깜깜한 캔터베리 이야기의 굴 속을 순례했다. 
 맨 먼저 등장하는 타바드 여관 입구엔 여관주인인 초서가 수도사 복장으로 우리를 맞아준다. 물론 밀랍인형으로 변신해서. 우리가 발을 옮길 적마다 만나는 주인공들이 스피커로 넋두리 하듯 이야기해주기 때문에 마치 우리도 그들과 한 패거리의 순례자가 된 기분이다. 
 용감한 기사의 이야기에 이어 바스에서 온 펑퍼짐한 중년여인의 이야기는 거룩한 순례의 길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세상사의 로맨틱한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바스에서 온 여인은 자신이 열두 살 때부터 지금까지 다섯 명의 남편을 두었고, 결혼의 온갖 문제를 다 알고 있다고 큰소리친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남편을 몇 명 두어야 한다는 내용이 없을뿐더러, 여러 명의 여자를 거느렸던 솔로몬왕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도 그 같은 경험을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자신이 여러 명의 남편을 둔 것을 여러 학교를 다니며 다양한 학문을 배우는 것에 비유하고, 자신을 숙련공이라고 자랑한다. 동정을 지키며 순결한 인생을 사는 것은 완전무결한 인생을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나 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라고 주장한다.
 바스의 여인과 대조적인 사제의 이야기를 ‘목사님’으로 재미있게 대입해서 쓴 류호준의 ‘옛적말씀에 닻을 내리고’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그는 비가 오나 눈이오나, 천둥과 번개 치는 날에도 스스로 심방에 나섰습니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차별하지 않고 모두를 동일하게 찾아갔습니다. (요즘처럼 목회상담실로 불러낸 것이 아닙니다.) 병들었거나(육신적이든지 영적이든지) 혹은 건강하거나 상관치 않고, 또한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갔습니다. 그것도 걸어서 갔던 것입니다. 헛된 명예나 존경에 대해 목말라 하지 않았습니다. ” 
 사제의 이야기가 끝나고 큰 장닭이 새벽을 알리며 길게 울면, 촛불이 켜 있는 제단이 나타나고 침상 위에 누워있는 베켓의 금빛 모조상이 보인다. 수녀와 여인들과 초서가 성인의 발치에서 기도하는 것이 보이면서 순례가 끝난다.
 실제로 1164년에 캔터베리대주교였던 베켓은 국왕보다 교회법을 소중히 여겨 영국 왕 헨리 2세와 대립한다. 그는 끝내 이 캔터베리대성당에서 기도하는 중에 헨리 2세의 기사에게 암살당한다. 교황은 베켓의 순교를 선언하고 캔터베리는 ‘성 토머스 베켓의 순교지’가 되고, 캔터베리 이야기도 나오게 된 것이다.
 아우구스티노가 6세기 말에 초대 캔터베리대주교가 되어 영국교회를 발전시켰고, 1549년엔 평신도들이 이해하기 쉬운 영문 성공회 기도서가 나왔다. 이러한 단계적인 종교개혁은 세계성공회공동체를 이루고, 그 총본부가 바로 이 남부 잉글랜드의 캔터베리인 것이다. 
 우리는 초서의 꿈속 같은 이야기에서 깨어나 시내 한복판에 우뚝 서있는 ‘하늘의집’, 캔터베리대성당에 들어가 베켓이 순교한 마루 위에 켜있는 촛불을 바라보며 묵상에 잠겼다. 대성당 밖에는 현대의 캔터베리 이야기꾼들이 왁자하게 거리를 메우고 있다. 어린 소녀들이 한 길에 둘러서서 멋진 포즈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햇병아리 같은 소녀들이 벌써부터 담배를 피우다니, 사진을 한 장 찍고 나서 한심한 듯 쳐다보자, 그들은 일제히 'No smoking!' 하면서 피우던 담배를 보여주고 재미있다는 듯 깔깔거리고 웃는다. 연기가 나지 않는 장난감 담배였다. 눈을 흘겨주려다가 같이 웃어버렸다. 
 캔터베리 시내 한복판을 흐르는 개여울에 작은 보트가 떠있고, 그 옆엔 500년 된 위버 올드하우스 식당이 있다. 전형적인 영국식 옛날 집에 들어가 점심 특별메뉴인 영국 불고기를 먹었다. 방금 구워낸 고기에 따끈한 파이가 곁들여 나오는데 맛이 그만이었고 비싸지도 않았다. 
 늦은 점심을 저녁 겸 먹고 나자 해가 기운다. 우리는 피곤한 걸음을 성 밖으로 옮겨 펄스타프 호텔에 돌아왔다. 젊은 호텔 지배인 로베르토가 우리를 반갑게 맞으며 이것저것 챙겨준다. 우리가 들고 다니는 랩탑에 인터넷을 무료로 해준다며 생색을 낸다. 이 호텔의 유래가 궁금했는데 술술 얘기를 풀어간다. 캔터베리 이야기극장의 연장 같았다.
 우선 호텔 이름이 펄스타프라니 설마 셰익스피어의 연극 ‘헨리 4세’에 나오는 뚱뚱보 익살꾼, 그 펄스타프인가 물었더니 맞는단다. 그가 묵었던 방을 기념하는 펄스타프의 방은 바로 우리 옆방이고, 셰익스피어의 방은 2층에 있다는 것.  
셰익스피어 연극 중에 제일 유명한 성격배우인 펄스타프 역을 맡은 존 헤밍스는 영국 르네상스 시대의 배우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초판본 편집인으로도 유명한 왕실극단 재정후원자였던 그는 ‘헨리 4세’의 1막과 2막을 비롯해 네 개 연극에 등장한다. 셰익스피어와 친한 벗이어서 둘이서 캔터베리를 찾아오면 이 호텔에 묵고 갔다는 것.

 

 
 

그제서야 호텔 카운터 벽에 걸린 그림들이 눈에 들어온다. 왼편엔 충실하면서도 모사꾼이고 익살꾼인 뚱보 펄스타프의 초상화가, 바른편엔 깃털 펜을 들고 서있는 셰익스피어의 초상화, 그리고 가운데엔 펄스타프 깃발이 날리는 이 호텔의 옛날 모습이 그려져 있다. 저녁 종이 울리고 성문이 닫히면 성내에 들어가지 못한 나그네들을 성문 밖에 있는 이 호텔에 재워주었다는 미담마저 들려준다.
 셰익스피어의 방은 늘 만원이지만 오늘은 마침 펄스타프의 방이 비어있으므로 구경하고 싶으면 따라오란다. 존 펄스터프 경의 방은 그의 명예에 걸맞게 고풍스런 침구와 가구로 꾸며놓았다. 벽난로 위엔 두 친구가 그 옛날 여관 마당에 사륜마차를 타고 들어서는 모습을 그려놓았고. 
진작 알았으면 셰익스피어의 방에 예약하고 오는 건데 이미 늦었다. 우리도 멋진 검은 사륜마차를 타고 캔터베리 성 밖에 있는 이 펄스터프 호텔에 들어서는 꿈이라도 꾸어야지 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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