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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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함브라궁의 옛날옛적이야기-알함브라궁의 장미와 은빛 류트 이야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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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어빙 지음 / 윤경남 옮김&사진

 

(지난 호에 이어)

루이스 데 알라콘은 더 이상 늑장을 부려선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는 모든 풍경을 한 눈에 접어두었어요. 그리고는 고맙다는 말을 우물우물 하면서 곧장 매를 찾으러 나선형 층계를 가볍게 올라갔어요.

잠시 후 주먹 위에 도망 간 새를 얹고 돌아왔어요. 소녀는 분수 옆에 앉아 명주실을 감고 있다가, 당황하며 실타래를 바닥에 떨어뜨렸어요. 루이스는 재빨리 실타래를 집어 들고 우아한 몸짓으로 무릎을 꿇고 소녀에게 내밀었어요. 그것을 받으려고 내민 소녀의 손을 잡고 왕비의 아름다운 손에 했던 것 보다 더 열렬하게 입을 맞추었음은 말할 것도 없고요.

“어머니나, 기사님!” 그런 인사를 받아 본 적이 없는 소녀는 놀라움에 더욱 얼굴을 붉히며 소리 질렀어요.

가장 겸손한 듯이 그 기사는 천 번도 더 사과를 하면서, 그것은 궁중에서 가장 깊은 존경과 경의를 표시하는 인사법이라고 설명하는군요.

그녀의 분노는 -그녀가 분노를 느꼈다면 말이지요- 쉬이 가라 앉았지만, 흥분과 당혹감은 가시지를 않았어요. 소녀는 바느질 감 위에 시선을 묻고 실타래를 계속 헝클어뜨리며 얼굴만 점점 더 붉히고 있네요.

능청스런 시종무관은 그녀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알아채고 그 기회를 이용하려고 아름다운 말들을 다 내뱉었으나 웬일인지 그 말들은 모두 그의 입 속에서 사라져버리는 거에요. 신사답게 보이려고 애쓸수록 어설프기만 하군요.

궁중에서 경험 많고 똑똑한 숙녀들 앞에서 그렇게 우아하고 뻔뻔할 정도로 능수능란 하던 자기가 겨우 열다섯 살 된 순진한 소녀 앞에서 긴장하여 당황하다니, 자신도 놀랄 지경 이었어요.

사실이지 그 꾸밈없는 소녀의 순진함과 정숙함이 바로 감시에 혈안이 된 그녀의 숙모가 주는 예비지식 보다 더 효과적인 보호자인 셈이었어요. 하지만, 첫사랑의 속삭임에 넘어가지 않을 여자가 어디 있겠어요? 순진한 어린 소녀는 기사가 더듬거리며 말을 잘 못하는 것도 본능적으로 다 이해했을 뿐 아니라, 자기 발치에 무릎을 꿇은 연인의 모습을, 그것도 그렇게 매력 있는 연인의 모습을 처음 본 그녀의 가슴은 한껏 부풀어 오를 수밖에 없었지요.

루이스의 순진한 수줍음은 오래가지 않았고 곧 자신의 유연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로 돌아갔어요. 멀리서 째지는 목소리가 들려 왔거든요.

“숙모님이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시는 거에요!” 소녀는 겁에 질려 소리쳤어요. “기사님, 제발 떠나주세요.”

“그대의 머리에 꽂은 장미꽃을 기념으로 주기 전엔 떠나지 않겠소.”

소녀는 새까만 머리칼 사이에서 급히 붉은 장미를 떼어내며 말했어요. “자, 받으세요. 이제 어서 가세요.”

루이스는 장미꽃을 받아드는 동시에 그것을 내민 아름다운 소녀의 손에 입맞춤 세례를 퍼부었어요. 그리고는 그 장미꽃을 자기 모자에 꽂고 흰매를 주먹 위에 앉히고 다정한 하신타의 마음마저 품은 채 정원을 가로질러 달려나갔어요.

탑에 돌아 온 숙모는 빈틈없는 성격상 조카딸이 안절부절 못하는 것과 방안의 혼란스러운 공기로 눈치를 채긴 했지만, 한 마디 설명으로 충분히 파악했지요.

“큰 매가 먹이를 찾아 홀 안으로 들어 왔댔어요.”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흰매가 탑 안으로 날아 들어오다니! 그렇게 뻔뻔한 매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이 있을까요? 새장 안에 있는 새도 안전하지 않다니!”

빈틈 없는 감시꾼인 프레데곤다는 노쳐녀들 중에서도 가장 경계심이 많은 여자였어요. ‘반대의 성’인 남성에 대해 공포와 불신감이 있으며, 독신생활이 길어질수록 점점 더 짙어져 갔어요. 그 훌륭한 여성이 남성들의 계략 때문에 고통을 받은 건 아니었고, 오히려 그 여성의 얼굴 위에 호위병을 세워두는 바람에 아무도 그녀의 영역을 침범하지 못한 것이랍니다. 두려워할 이유가 아주 적은 숙녀들일수록 매력 넘치는 이웃에 대한 감시를 적극적으로 펼치거든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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