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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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함브라궁의 옛날옛적이야기(37)-아름다운 세 공주 이야기(12.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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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어빙 지음 / 윤경남 옮김&사진

 

 (지난 호에 이어)

그들이 멀리 가기도 전에 알함브라 성채로부터 북소리, 나팔소리가 들려 오는군요.

“우리 도주 계획이 탄로났어요!”하고 바바가 소리치자, “하지만 우린 날쌘 준마가 있고, 어둔 밤이 우릴 도와 추격자들을 모두 따돌릴 수 있을 겁니다.” 하고 기사님들이 응수했어요.

일행은 말에 박차를 가해 평야를 가로질러 빠른 속도로 달려갔어요. 평야 위에 벼랑처럼 튀어나온 엘비라 산밑에 이르자 바바가 멈춰 서며 귀를 기울였어요.

“아직은 아무도 우릴 따라오는 이가 없으니, 산 속으로 도주하기엔 안성맞춤 이네요.”

그 말에 응수하듯 알함브라 성의 감시탑 꼭대기에 한줄기 불빛이 튀어 올랐어요.

“큰일 났네! 저 불빛은 산 고개마다 감시병들에게 경계태세를 알리는 건데. 어서! 빨리! 미친 듯이 달립시다. 지체할 시간 없어요.”

 그들은 박차를 가해 달렸어요. 재빨리 달리는 말편자 부딪는 소리가 바위에서 바위로 메아리 치자, 알함브라 성의 희미한 불빛이 이에 답하는 듯 사방 산 위의 감시탑에 봉화가 차례로 오르는 것이 보였어요.

“앞으로! 앞으로! 다리 쪽으로, 다리 쪽으로! 경계 봉화가 거기까지 오기 전에 달려요!” 바바가 험한 욕지거리까지 해가며 소리쳤어요.

일행은 산 벼랑을 돌아, 기독교인과 무슬림이 자주 피로 얼룩지던 험한 물살이 가로 질러가는 그 유명한 피노스 다리까지 왔어요. 놀라운 것은 그 교각의 탑에도 불이 켜있고 무장한 병사들이 대기하고 있는 거에요. 바바는 그의 준마를 끌어당겨 등자 위에 몸을 세워 사방을 둘러 보더니, 기사들에게 손짓해 재빨리 그 길을 벗어나 강을 돌아서자 강물 속으로 돌진하는 거였어요.

기사들도 공주들에게 자신들을 꼭 붙잡게 하고는 바바와 똑같이 뛰어들었어요. 일행은 급한 물살에 한참 떠내려 갔고, 파도가 그들을 에워싸고 아우성이었지만, 아름다운 공주님들은 기사님 등에 꼭 붙어서 불평 한마디 안 했어요.

기사들이 안전하게 반대편 강둑에 이르러 바바의 인도에 따라 사람들이 잘 다니는 길목을 피하기 위해 거칠고 외진 계곡을 따라 산 한가운데로 헤쳐 나갔어요.

 바야흐로 옛 성 코르도바에 도착하는 데 성공한 거에요. 그 기사들은 귀한 가문의 자제들이어서 온 나라와 친구들이 그들의 귀향을 환호하며 최고로 즐거운 축제를 열었어요. 아름다운 공주님들은 곧 교회의 품으로 돌아갔고, 기독교인이 되는 모든 절차를 거친 뒤에 행복한 아내들이 되었어요.

 공주님들이 기사님들과 산 넘고 강 건너는 멋진 도주를 급히 이야기하느라 똑 소리 나는 카디가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깜박 했네요. 카디가는 평야를 가로지르고 말을 달릴 때 바바의 등에 고양이처럼 매달려 뛸 때마다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구레나룻의 바바가 계속 욕지거리를 하게 만들었어요. 바바가 강물 속에 뛰어들 채비를 하자 카디가의 공포는 한계를 넘었어요.

“나를 그렇게 세게 끌어당기지 말아요. 겁내지 말고 내 허리띠를 잡으라고요.” 바바가 소리치므로 그녀는 바바의 가죽 허리띠를 등뒤에서 두 손으로 꽉 잡았어요. 그런데 산꼭대기에서 기사들과 숨을 돌리려고 멈추었을 때 노부인 카디가가 보이질 않는군요.

 “우리 카디가는 어떻게 된 거에요?” 공주님들이 놀라 비명을 지르는군요.

“알라만이 아시겠죠! 강 한가운데서 내 허리띠가 느슨해지더니 카디가가 내 벨트와 함께 강물에 휩쓸린 거에요. 알라의 뜻이지요, 뭐. 그 허리띠는 수를 놓은 비싼 거였는데.”

어리석게 후회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지만, 공주님들은 그들의 똑 소리 나는 상담자인 카디가를 잃은 슬픔을 감추지 못했어요. 하지만 똑 소리 나는 노부인 카디가는 그 강물에서 십중팔구 목숨을 잃진 않았거든요. 강 하구에서 그물질을 하던 한 어부가 그녀를 뭍으로 건져 올렸는데, 카디가가 그 어부의 기적의 그물 속에 걸려들어 어부를 놀라게 했다 나요.

똑 소리 나는 카디가에 대한 전설은 더 이상 전해지지 않는다는 군요. 하지만 그녀 특유의 분별력이 왼손잡이 모하메드의 손에 다시 들어가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답니다.

 빈틈 없이 영민한 왕이 딸들의 탈출과 가장 신뢰한 신하에게 속아 넘어간 사실에 어떻게 대처했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진 이야기가 없다는 군요. 단 한번 다른 사람의 조언을 구한 그 일 이후로 그런 허점을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는 일만 빼고요.

그러면서도 달아날 마음이 없어 남아있던 공주를 지키는 일엔 무척 마음을 썼다는 군요. 사실 막내공주는 뒤에 남은 일로 회한에 잠겼으리라 생각되는군요. 공주가 그 탑의 발코니에 기대어 코르도바 쪽으로 펼쳐 있는 산줄기를 서글프게 바라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고, 이따금 류트를 연주하며 언니들과 연인을 생각하는 구슬픈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는 걸 보면 알 수 있지요.

공주는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는데, 떠도는 소문에는 그녀의 시신이 그 탑의 지하 납골당에 묻혀있다고 합니다. 공주의 애달픈 요절이 여러 가지 전설을 낳는 모양이에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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