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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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함브라궁의 옛날 옛적 이야기(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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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순례자, 아하메드 알 카멜왕자

(워싱턴 어빙 지음/윤경남 옮김&사진)

 

(지난 호에 이어)

올빼미는 밤의 어둠침침한 도시를 날아다니며 동정을 살폈어요. “궁전의 가장 높은 탑 중 한 군데를 엿보고 있는데, 창문 너머에 아름다운 공주님이 보이더군요. 의사들과 시종들에게 둘러싸여 긴 의자에 누어 있으나 치료를 거부하셨어요. 그들이 물러가자 공주님은 가슴에서 편지 한 장을 꺼내어 읽고 그 편지에 입을 맞추며 큰소리로 한탄을 하시더군요.”

 

이 소식을 듣고 아하메드의 여린 마음은 슬픔에 빠지기에 족했어요. 톨레도에서 날아온 그 밖의 소식들이 올빼미의 이야기를 뒷받침해주네요. 온 도시가 불안과 놀라움에 빠져버렸어요. 공주는 궁전에서 가장 높은 탑으로 옮겨갔고, 골목마다 경비가 삼엄했어요.

 

한편 공주는 지독한 우울증에 걸렸는데 아무도 그 원인을 알아내지 못하고 있는 거에요. 공주는 음식도 마다하고 귀를 막고 아무의 위로도 받지 않으려고 했어요. 의사의 치료도 소용이 없고, 공주가 마법에 걸린 거라 생각한 왕은 누구든 공주를 치료하는 사람에게 왕실의 보물 중 가장 값진 보물을 주겠다는 성명서를 성문 밖에 붙였어요.

 

구석에 앉아 졸고 있던 올빼미가 그 성명서 이야기를 듣더니 큰 눈을 굴리며 더 수수께끼 같은 표정을 지었어요. “알라 악바르! 위대한 신이여! 그 치료를 담당할 수 있는 사람은 참 행복하겠지만, 왕실의 보물 중에 무엇을 고를지는 알고 있어야 할걸?”

 

“무슨 소리냐, 존경하는 올빼미야?” 왕자가 다그쳐 물었어요.

“오 왕자님, 제 말을 잘 들어보세요. 지난밤 제가 톨레도의 지붕 돔과 작은 탑 주위를 뱅뱅 돌고 있는데, 골동품 애호가 올빼미들이 모임을 열고 있는 것을 보았어요. 그 모임은 큰 둥근 천장이 달린 탑에서 열렸는데 바로 그 탑이 왕실의 보물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었어요…그 보물 중엔 백단 향나무로 만든 상자가 있는데, 그건 동방의 세공품인 무쇠 걸쇠가 걸려 있고 몇몇 학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신비한 문자가 새겨져 있답니다. 제가 갔을 때, 얼마 전 이집트에서 온 아주 늙은 올빼미가 그 상자 뚜껑에 앉아 그 문자에 관해 강의하고 있더군요. 그는 그 상자 안에 지혜의왕 솔로몬의 왕좌에 깔았던 비단 양탄자가 들어있음을 밝혀낸 거에요. 틀림없이 예루살렘이 멸망한 뒤 톨레도로 피난 온 유대인들이 가져온 것이랍니다.”

 

“나도 보나벤에게서 예루살렘이 무너졌을 때 사라진, 그 후 인류가 다시는 찾을 수 없다고 여겨지던 그 신물의 놀라운 힘에 관해 들은 적이 있어. 그건 톨레도의 기독교인들에게 풀 수 없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을 테지. 아, 내가 만약 그 양탄자를 가질 수만 있다면 내 운명도 달라질 텐데.” 하고 왕자가 탄식했어요.

 

다음날 왕자는 그의 귀중한 옷을 벗어놓고 사막의 아랍인이 입는 수수한 옷차림으로 갈아 입었어요. 살갗마저 황토색으로 칠하여 아무도 그를 마상시합장에서 찬탄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던 전사로 생각할 수 없었지요. 손에 지팡이를 들고 짐 보따리를 옆에 끼고 목동이 부는 피리를 들고 톨레도로 들어가, 성문 앞에 서서 공주를 치료하려 찾아온 사람이라고 말했어요.

 

“너 같은 떠돌이 아랍인이 무얼 하겠다고? 온 나라안에 학식 높은 양반들도 하지 못하신 일인데.”

그런데 이때 마침 왕이 그 소동을 듣고 그 아랍인을 데려오게 했어요.

 

“가장 권세가 높으신 왕이시여. 폐하가 굽어보고 계신 저는 아랍의 베두인족으로 인생의 대부분을 사막의 쓸쓸한 황무지에서 보낸 사람입니다. 그 쓸쓸한 황무지엔 마귀와 악령들이 출몰하기로 유명합지요. 그것들이 가축을 지키는 우리 불쌍한 양치기들을 따라다니며 괴롭히고, 가축들 몸 속으로 들어가 때로는 인내심 많은 낙타까지 화나게 합니다. 이런 짓을 막으려고 양치기들은 음악으로 주술을 겁니다. 대대로 내려오는 전설의 음악을 피리로 불어 그 사악한 혼령들을 쫓아버리지요. 저는 특히 재능 있는 집안의 후손으로 그 기술을 완벽하게 전수 했지요. 만일 그런 종류의 사악한 것이 폐하의 따님을 사로잡고 있다면, 맹세컨대 제 목숨을 걸고 공주님을 그 마력에서 풀어드리겠습니다.”

 

식견이 높고 놀라운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아랍인을 알고 있던 왕은 왕자의 자신만만한 이야기에 희망이 솟는 듯 했어요. 왕은 즉시 아하메드를 여러 개의 문으로 안전하게 만든 공주의 방이 있는 높은 탑 꼭대기로 데리고 갔어요. 난간이 있는 테라스 쪽의 창문이 열려있고 거기서 톨레도와 주변 도시가 한 눈에 보였어요. 비탄에 빠진 가련한 공주가 그 안에 누워있어서 다른 창문은 어둡게 가려져 있고요.

 

왕자는 테라스에 앉아 그라나다의 헤네랄리페궁에 있을 때 신하에게서 배운 아랍의 노래들을 목동의 피리로 불었어요. 공주는 여전히 의식이 없고, 곁에 있는 의사들은 고개를 저으며 불신과 경멸의 웃음을 짓고 있었어요. 드디어 왕자는 피리를 내려놓고, 자신의 열정을 편지에 고백한 그 사랑의 시구 들을 단순한 곡조로 노래 불렀어요.

 

공주는 그 운율을 알아들었어요. 두근거리는 가슴의 기쁨이 심장에 스며들어 고개를 들어 귀를 기울였으며 눈물이 솟구쳐 뺨을 타고 흘러내렸고, 가슴은 누를 수 없는 격정으로 부풀었다 가라 앉았다 했어요. 공주는 그 음유시인을 공주 앞으로 불러오게 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처녀다운 수줍음이 침묵을 지키게 했어요. 왕은 딸이 원하는 것을 알아채고 아하메드를 방안으로 불렀어요.

 

연인들은 신중했어요. 다만 시선을 주고 받으면서,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음악의 승리가 이렇게 완벽한 적은 없을 거에요. 공주의 부드러운 볼에 장밋빛 홍조가 어리고 입술엔 핏기가, 힘 없던 눈매엔 이슬을 머금은 생기가 돌아왔어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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