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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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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함브라궁의 옛날 옛적 이야기(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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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순례자, 아하메드 알 카멜왕자 (워싱턴 어빙 지음/윤경남 옮김&사진)

 

(지난 호에 이어)

비둘기가 묘사한 말이 아하메드 왕자의 타오르는 가슴에 불꽃을 일으켰어요. 드디어 잠자고 있던 왕자의 사랑스런 기질이 순식간에 그 대상을 찾은 셈이었어요. 공주에 대한 헤아릴 수 없는 열정이 솟구친 거에요.

 

왕자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어요. 가장 정열적인 언어로, 타오르는 뜨거운 한숨 속에, 그러면서 그녀를 찾아 공주의 발아래 자신을 내던질 수 없는 자신의 불행한 처지도 설명했어요.

 

타고난 시인인 젊은 왕자는 사랑의 영감을 받아, 아주 감동적인 호소가 담긴 이행연구 시 마저 덧붙였어요. 그의 편지에 수신자는 ‘미지의 미녀에게, 포로가 된 아하메드 왕자로부터’라고 썼고요. 편지 위에 머스크향과 장미향을 뿌린 다음 비둘기에게 그 편지를 건네주었지요.

 

“가거라, 가장 진실한 나의 전령이여. 날아 가거라, 산과 골짜기와 강물과 들판을 넘어. 나뭇가지에 앉지도 말고 땅 위에 발을 딛지도 마라. 이 편지가 내 사랑의 연인 손에 들어갈 때까지.”

 

비둘기는 공중으로 높이 날아 올라 방향을 정하더니 행로를 잡아 곧바로 날아갔어요. 왕자의 눈은 비둘기를 쫓아 구름 속에 한 점으로 남을 때까지, 산 너머로 아주 사라져 버릴 때까지 눈을 돌리지 않았어요.

 

날이면 날마다 왕자는 사랑의 전령이 돌아오기 바라며 지켜 보았지만, 허송 세월이었어요. 왕자가 비둘기의 건망증을 탓하고 있던 어느 날 노을 진 저녁에, 신실한 그 새가 푸드득거리며 왕자의 거실로 날아들더니 그의 발치에 쓸어져 숨을 거둔 거에요.

 

어떤 잔인한 사냥꾼의 무자비한 화살이 가슴을 꿰뚫었는데도 비둘기는 자신의 임무를 다 하려고 남은 힘을 다 쏟은 거에요. 왕자가 슬픔에 젖어 그 충실한 순교자 위로 몸을 굽히자, 비둘기 목에 진주목걸이가 걸려 있었고, 날개 밑에는 에나멜 칠을 한 작은 그림이 감춰져 있군요.

 

그것은 꽃다운 나이의 사랑스러운 공주의 모습이었어요. 의심할 여지 없이 그 정원에 사는 이름 모르는 공주 일 텐데, 그녀는 도대체 누구이며 어디에 사는 것일까? 내 편지를 받고 마음이 어떠했을까? 이 그림은 그의 열정을 받아준다는 표시일까? 불행하게도 신실한 비둘기의 죽음은 모든 것을 수수께끼와 신비 속에 남게 했어요.

 

왕자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해서 그 그림을 뚫어지게 드려다 보았어요. 그림을 자기 입술에, 그리고 자기 가슴에 대고 꼭 눌러보았어요. 공주의 다정한 얼굴을 드려다 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깊은 생각에 잠겼어요.

 

“아름다운 모습이여! 슬프구나, 당신은 한낱 그림일 뿐! 그러나 당신의 이슬 머금은 눈망울은 나를 향해 정다운 눈빛을 보내주누나. 장미 빛 입술은 나를 격려해주는 듯. 하지만 헛된 망상이야. 공주는 이 눈빛으로 다른 행복한 경쟁자들을 바라보겠지? 이 넓은 세상에 어디 가서 공주를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떤 불리한 인연이 우리를 방해할지 누가 알겠나? 아마 지금쯤 내가 이 탑에 갇혀 공주의 헛된 그림자나 연모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이 순간에도 연인들이 공주를 에워싸고 모여들는지?”

 

아하메드 왕자는 드디어 결단을 내렸어요. “나는 점점 끔찍스러워지는 이 감옥에서 도망칠 테야. 그런 다음, 사랑의 순례자가 되어 세상 끝까지 그 미지의 공주를 찾아내고 말 테다.”

 

낮엔 사람들이 모두 깨어있어 탈출하기 어렵겠지만, 밤이면 성문 경비도 느슨해지고, 어느 누구도 항상 탑에 갇혀 지낸 유순한 왕자가 이런 탈출을 시도하리라곤 생각도 못할 터. 하지만 길도 모르는 왕자가 어떻게 길을 찾아 야밤 탈출을 할 것인가.

 

왕자는 밤 비행과 샛길 비밀통로를 잘 알고 있는 올빼미 생각이 났어요. 올빼미의 굴을 찾아 왕자가 그 나라의 지리를 물었어요.. 올빼미는 거만한 얼굴을 하고 히스파냐의 폐허가 된 성과 궁전에 조상 대대로 살아왔기 때문에 모르는 곳이 없다고 뻐기는 군요.

 

왕자는 너무 기쁜 나머지 이 지형학자에게 현재 사랑에 빠진 자기 심정을 얘기하면서, 그를 상담 해주는 동무 역할을 부탁했어요.

 

“당장 나가요! 내가 사랑이나 중개하는 인물로 보이십니까? 나로 말하면 달밤 내내 명상에 몸 바쳐야 할 학자인걸요!” 하면서 기분 나빠 했어요.

 

“잘 생각해 보아라, 가장 현명한 올빼미야. 땅굴에 갇혀서 달만 바라보고 명상만 하기엔 네 재주가 아깝다. 내가 언젠가 왕위에 오르면, 너에게 명예와 권위 있는 직분을 주겠다.”

 

그러자 철학자이며 평범한 야심밖에 없다던 올빼미도 명예심은 큰지라 왕자와 동행하여 왕자의 사랑의 순례에 길잡이가 되기로 마음먹게 되었어요.

 

사랑하고 있는 이의 계획은 진행이 빠른 법. 왕자는 노잣돈으로 쓰려고 자신의 모든 귀금속을 챙겨 몸 안쪽에 숨겼어요. 바로 그날 밤, 왕자는 그의 목도리를 이어 만든 밧줄을 타고 탑에서 내려와 헤네랄리페궁의 담벽을 넘어갔어요. 올빼미의 인도로 먼동이 트기 전에 산으로 올라가 숨었답니다.

 

왕자는 앞으로의 여정을 올빼미와 의논하자 올빼미가 말했어요. “제가 충고를 드려도 괜찮다면, 세빌레로 가서 갈가마귀를 찾으시라고 하겠습니다. 그 갈가마귀는 점쟁이며 이짚트에 알려진 흑마술사입니다.” 길잡이며 상담사인 올빼미의 말대로 그들은 어느 이른 아침에 드디어 세빌레성에 이르렀어요.

 

환한 불빛과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는 올빼미는 성밖에 있는 빈 나무등걸에 본부를 차렸어요. 왕자는 성문 안으로 들어가 도심에 우뚝 서있는 마법의 성을 찾아냈어요. 그 탑은 지금도 세빌레에 기랄다로 알려진 유명한 무어인의 탑이지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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