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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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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함브라궁의 옛날 옛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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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순례자, 아하메드 알 카멜왕자 

(워싱턴 어빙 지음 / 윤경남 옮김&사진)

 

(지난 호에 이어)

“무엇 때문에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는 거냐? 네 마음에 원하는 건 모두 가지고 있지 않니?” 하고 왕자가 물었어요.

 

“아, 그렇질 않아요. 난 내 마음의 짝과 떨어져 있잖아요? 그것도 이 행복한 봄 날씨에, 바로 사랑의 계절에 말이지요.” 비둘기가 대답했어요.

 

“사랑의 계절이라!” 왕자가 새의 말을 되뇌면서 물었어요. “내 예쁜 새야, 부디 사랑이 무엇인지 내게 말해주겠니?”

 

“그럼요, 얼마든지요, 왕자님. 혼자 있으면 고통이고, 둘이 있으면 행복이고, 셋이 있으면 싸움이고 원수랍니다. 그것은 두 존재를 서로 끌어당기는 매력이며, 달콤한 연민을 하나로 묶어주는 마력이랍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있으면 행복하고 떨어져 있으면 슬퍼지지요. 왕자님은 이렇게 부드러운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가 아무도 없으신가요?”

 

“나의 늙은 스승이신 이벤 보나벤을 누구보다 가장 좋아하지. 하지만 때로는 지루하고 때로는 그와 함께 있느니 혼자 있는 것이 더 행복하기도 하단다.”

 

“나는 연민의 정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나는 사랑을 말하고 있어요. 가장 신비스런 인생의 원칙이자 젊음에 도취된 환락이며 성년기의 꾸밈없는 기쁨을 말하는 거에요. 앞을 내다보세요, 왕자님, 축복받은 이 계절에 온 자연이 사랑에 가득 차 있는 걸 바라보세요. 모든 창조물은 다 제 짝이 있는 거랍니다. 아주 하찮은 새 한 마리도 제 짝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있지요. 딱정벌레도 저 흙먼지 속에서 암컷을 유혹하고 있고, 훨훨 날아다니는 저 나비들도 서로 탑 꼭대기에서 사랑을 나누고 있어요. 아, 가여운 왕자님! 그 많은 청춘의 소중한 나날들을 사랑이 무언지 모르고 보내셨단 말인가요? 왕자님의 마음을 사로잡아 기쁨을 주고 부드러움으로 소망을 채워주며 가벼운 흥분도 맛보게 해주는 다정한 여인이나 아름다운 공주님도 안 계신가요?”

 

“이제야 알겠구나.” 왕자는 한숨을 지으며 말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쓸쓸하고 외진 데서 네가 말하는 그런 여인을 어디가 찾을 수 있겠니?” 비둘기와 이야기를 좀 더 나눈 후 왕자의 첫날 사랑의 강좌는 끝났어요.

 

 “아 슬프구나! 사랑이 정말 그렇게 기쁜 것이고, 사랑을 방해하는 일이 그렇게 비참한 일이라면, 알라신께서는 내가 그를 섬기는 미물들의 기쁨을 해치는 일을 금지하시리라.”

 

 왕자는 새장을 열고 비둘기를 꺼내어 다정하게 입을 맞춘 다음 창가로 데리고 갔어요. “행복한 새야, 잘 가거라. 네가 사랑하는 짝과 함께 젊음의 봄날을 즐겨라. 사랑이 결코 들어오지 못하는 이 황막한 탑 속에서 너를 내 감방 동료로 만들어서야 되겠느냐?”

 

비둘기는 환희에 찬 날갯짓을 퍼덕거리더니 단번에 공중으로 날아올라 다로 강의 꽃피는 나무들 사이로 바람을 일으키며 달려갔어요. 왕자는 눈으로 비둘기를 쫓다가 씁쓸한 푸념을 늘어놓았어요. 전에는 그를 기쁘게만 했던 새들의 노래 소리가, 오늘은 그의 마음을 더욱 쓰리게 할 뿐이었어요.

 

사랑! 사랑! 사랑! 아, 슬프도다. 가련한 젊음이여! 이제야 그대는 그 사랑의 기미를 알아차렸구나.

 

다음날 왕자는 보나벤을 보자 눈에 불똥이 튀는 듯 소리쳐 말했어요. “선생은 왜 나를 이렇게 비참하도록 무지하게 버려두셨나요? 하찮은 미물조차 잘 알고 있는 삶의 신비와 위대한 원칙을 왜 저에겐 알려주지 않으신 거죠? 모든 자연이 기쁨에 차 있는 걸 보세요. 모든 창조물은 다 제 짝과 더불어 즐기고 있군요. 이것이 내가 배우려고 찾아 다녔던 바로 그 사랑이란 말씀이에요. 왜 나는 그 사랑의 환희를 알지 못한 채 내 젊음을 그렇게 허송해야 했나요?”

 

현자 보나벤은 더 이상 감추는 것이 소용 없는 일임을 알았어요. 왕자는 이미 위험하다고 금지한 지식을 터득해 버린 것이었어요. 그래서 보나벤은 방향을 바꾸어 왕자에게 점성술사들이 말한 예언과 위협을 주는 불운을 피하기 위해 쏟았던 교육방식에 대해 설명해주었어요.

 

“그런데 왕자님,” 보나벤이 덧붙여 말했어요. “제 목숨은 이제 왕자님 손에 달렸습니다. 부왕께서는 왕자가 저의 보호 아래 있는 동안에 사랑의 열정을 알게 된다면 그 대가로 제 목숨을 내놓으라고 하셨습니다.”

 

유순하면서도 이성적인 데가 있는 왕자는, 그 철학자의 목숨을 위태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그의 말들을 가슴 속에만 묻어두기로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왕자가 탑의 성벽에 기대어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데, 그가 풀어 주었던 비둘기가 어디선가 날아오더니 왕자의 어깨 위에 살그머니 내려 앉는 거에요.

 

왕자는 그 비둘기를 그의 가슴에 가만히 안아주며 말했어요. “행복한 새야, 날개가 있어 나를 수도 있고 세상 끝까지 다닐 수 있는 행복한 새야, 우리가 헤어진 다음엔 어디까지 갔다 온 거니?”

 

 “아주 먼 시골에요. 왕자님, 저를 자유롭게 날아가게 해주신 보답으로 왕자님에게 소식을 가져 왔답니다. 하늘을 빙빙 날아다니며 들판과 산들을 내려다 보았어요. 온갖 과일과 꽃들이 만발하여 기쁨이 넘치는 듯한 정원이 내려다 보였어요. 초록빛 초원이 구불구불한 냇가의 강둑 위로 이어진 한 가운데에 웅장한 궁전이 있더군요. 저는 피곤한 비행을 한 터라 좀 쉬려고 나무 가지에 내려 앉았지요. 그 아래 초록빛 나는 강둑엔 한창 나이의 아리땁고 사랑스러운 공주님이 살고 있었어요. 그 공주님은 자기 또래의 어린 시녀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시녀들은 향기로운 꽃으로 꽃다발을 만들어 공주를 치장해주고 있었어요. 들에 핀 어느 꽃이나 정원도 공주의 사랑스러움에 비교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그 공주님도 높은 벽으로 둘러치고 어떤 남자도 들어오지 못하게 만든 정원 안에서 홀로 젊음을 꽃 피우고 있는 거에요. 그 아리따운 아가씨를 보면서, 저렇게 세상 때묻지 않은 젊고 순결한 공주는 우리 왕자님에게 사랑의 영감을 불어넣어 줄 하늘이 맺어주신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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