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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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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비밀일기(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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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반니노 과레스끼 지음 / 유니스 윤경남 옮김

 

 

 

 

(지난 호에 이어)
다시 말해서, 독일군 포대의 소나기 같은 포탄과 수류탄이 우리 머리 위로 날아가고 있는데도 영국군은 라게르 수용소 안에 있는 프랑스군 장교 4천명 때문에 목표물에 조준도 못할 뿐 아니라 반격도 뭇하고 있었다. 


프랑스군은 국제 적십자사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독일군은 절망적인 순간에도 더 이상 곤란에 빠지기를 원치 않았으므로 수용소를 포기하고 포로들을 영국진지에 이양하기로 결정했다. 


우리 이탈리아군은 적십자사의 보호를 받지 않고 있어서 우리가 자유로워져야 할 아무 특별한 이유는 없었지만, 우리는 프랑스군의 뒤를 따랐다. 영국군은 우리가 오는 것을 보고 우리를 다시 되돌려 보내지는 않았다. (국제 적십자사가 우리 편에 손짓하지 않았더라도 다른 구호 기구가 우리를 위해서 무엇인가 했으리라는 것만은 안정해야 한다. 우리가 폴란드에 있는 베니아미노보 (Beniaminovo) 수용소에서 추위와 배고픔, 벼룩들에게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아주 쓸만한 축음기 바늘이 가득 들어있는 봉투를 받았었다.)


영국군은 어떤 법석도 부리지 않았다. 한 가지 사실은, 그곳에 미군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우리 짐을 그들이 몰고 온 트럭에 실어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독일 포로에서 영국 포로로 이양된 것이다. 그러나 베르첸에서 일어난 믿을 수 없는 행동에 대한 이야기 이후까지는 아니었다. 


나는    앞에서    베르켄    마을의 이야기를 했지만 도대체 그런 이변이 없었다. 독자들께서는 19개월 동안 오물과 배고픔과 울적함을 참아온 사람들이 은빛쟁반에 그들을 대접해 주는 풍요로운 마을에서 자유를 찾았을 때 그 사람들의 마음 속 동요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먼지 한 점 없는 집안에서 그리고 말쑥하게 손질한 정원에 감춰져 있는 보물들-밀가루, 버터, 베이컨, 고기 통조림 등이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그곳에서 그들은 어떻게 행동을 했겠는가. 


게다가 혼란을 더 빚은 것은, 자유의 몸이 된 러시아군 포로들의 무리였다. 그들은 그 지역을 휘젓고 다니며 그들이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모두 훔쳐가고 훔칠 수 없는 것은 부숴버렸다.


알베르띠노와 내가 베르겐을 향해 천천히 차를 몰고 있을 때, 알베르띠노는 내 이야기에 분개해 하며 듣고 있다. “불쌍한 독일 사람들이네요!” 하며 그가 외친다.


“우린 어떠했겠나 잘 생각해 보세요. 아버지가 포로수용소에 계신 동안 만약에 탈출자의 무리가 우리 집에 들이닥쳐서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샬롯데와 나까지 우리집에서 내쫓아버렸다면    말씀이에요!”


알베르띠노의 말을 따른다면, 나는 베르첸에 있는 영국군 사령관을 찾아가서 이렇게 말해야 했으리라. “괜찮습니다, 각하. 저는 필요하다면 나무 벤치에서 자겠습니다. 안락한 침대와 1, 200파운드의 설탕은 내 동료와 내가 숙소로 할당된 식품점에서 발견했지만 손대지 않고 놔두어야지요. 그 식품점 주인과 식구들은 나를 더러운 라게르 포로수용소에 처넣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독일 사람들을 정말 비난해선 안 됩니다. 그것은 전쟁의 운명일 뿐이에요.”


이 말은 내가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얄베르띠노식 사고방식이다.    이론상으로는 나도 동의한다. 그래서 베르젠에 다시 들어설 때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뭇하고 들어갔다. 


나는 “하로퉁 호텔”을 기억한다. 그러나 그 호텔을 다시 짓고 변화하는 과정을 우리는 보게 되었다. “저 집을 수리하는데 12년이 걸렸다면, 아버지가 저 집을 아주 난장판으로 만들어 둔 게 틀림없어요.” 알베로띠노의 말씀이다.


우리는 다른 곳에 방 두 개를 잡고, 짐을 풀어놓자마자 마을을 둘러보러 나간다. 제일 먼저 찾은 집은, 집과 상점이 붙어있는 식품점이다. 그곳을 찾기는 아주 쉽다. 상점의 창문은 현대화 했지만 그 상점 건물은 예전과 꼭 같다. 


나는 브랜디 한 병을 산다는 핑계로 그 상점에 들어간다. 문에서 향료 냄새를 맡는다. 나는 내가 눈에 띄는    것이 싫어서 알베르띠노에게 말해준다.        


“난 호텔에 먼저 가 있겠다. 좋은 그림을 살 수 있는가 찾아봐라. 내가 갔던 방은 맨 아래층에 있다.”고 알베르띠노에게 말한다.


나는 오후 내내 호텔방에서 지내며 창문으로 이미 구면이 된 독일을 내다보았다.


우리가 저녁을 먹고 관습적으로 엽서의 번호를 적은 다음, 함께 산책 나갈 것을 제안한다. 


알베르띠노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결국 나는 그 생각을 버리도록 권한다. 호텔 아래층 외 한 방에서 댄스파티가 있을 것 같고 알베르띠노는 댄스하는 것을 들여다보고 싶어하는 것 같다. 


하는 수 없이 산책하는 대신에 나는 그 아이와 “무도회”가 열리는 방의 식탁에 앉아있다. 내 견해로는, 작은 마을의 춤이나 들여다 보며, 아코디온과 바이올린과 첼로의 3중주 음악에 귀를 기울이면서 저녁 나절을 보내는 게 가장 신나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내 아들은 열 일곱 살이고 내가 그 나이에 지녔던 것과 아주 똑 같은 취미를 그 아이도 가지고 있다. 그는 다리에 깁스를 대고서도 기꺼이 춤을 출 것이다. 


처음엔 곧이 듣지 않더니 나중엔 중얼거린다. “방을 한 바퀴 둘러봐도 괜찮을 텐데.”


“우리가 외국에 와 있다는 것을 잊지 마라. 게다가 여긴 아주 작은 마을이다. 얼마나 좁아 터진 사람들이 이런데 오는지 너도 알 텐데.”


알베르띠노는 이미 슬픈 경험을 해서 알고 있다. 지난여름 어느 날 오후에 알베르띠노는 나에게 옆 마을에 놀러 가도록 해달라고 졸랐다. 멋진 음악과 춤이 있게 되리라고 들은 것이다. 


그런데, 그는 마음이 아주 상해서 돌아왔다. 왜냐하면 어떤 소녀도 그 낯선 소년과 춤을 추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 소년 시절엔 상황이 더욱 나빴다. 만약에 타 동네사람이 어떤 소녀에게 춤추기를 청하면, 거기 누워서 낮잠이나 자거라 하는 말을 듣든가, 그 마을 소년들이 춤이 끝난 다음 기다렸다가 잊어 버릴 수 없을 만큼 두들겨 패기도 했다. 


지금 알베르띠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용기를 내어 몸을 일으킨다. “한 번 힘써 보겠어요. 만약 안 된다는 대답을 듣더라도 그것이 그렇게 놀랄 만큼 중요한 일은 아닐 테니까요.”    


그곳에서 알베르띠노가 그릇된 죽임을 당하다니!    국제 관계는 가끔 이렇게 중요하지 않은 세목으로 결정이 난다. 나는 독일에 올 때 가장 좋은 의도를 지니고 왔고 지금까지 동정적인 눈으로 독일을 지켜본 사람이다. 


그러나 만일에 내 아들이 신청하는 저 바보 같은 소녀가 자기와 춤추는 것을 거절한다면, 독일은 나를 다시 한 번 적으로 만들고 인정머리 없는 사람으로 만들리라! 


나는 독일이 포로수용소에서 나를 19개월 동안이나 억류해 온 것은 용서해 줄 수 있지만, 독일의 딸이 내 아들을 실망시키는 일은 결코 용서할 수 없으리라!


알베르띠노가 정중하게 학생다운 인사를 하는 역사적인 순간이 지나간다. 독일의 운명이 경각에 달려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 소녀는 바보가 아니고 매력적이며 상냥한 젊은 숙녀랍니다.


나의 분노가 모두 사라졌다. 나는 그곳에 독일 신문기자가 한 말을 남겼다. “이탈리아인은 운전 솜씨는 뛰어나지만 싸움 솜씨는 형편없다.” 그리고 하노바에서 실속 없이 뻐기던 사람이 한 말도 인용한다.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스위스, 이 모든 나라들은 어떤 종류의 정책이든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에 정책 이란 게 있다는 말을 들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말은 그가 정치적으로 발전하면서 이탈리아가 정말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문제란 것을 의미하는 것이 틀림없다. 아니, 옛날은 옛날이다. 내가 유럽연합을 위해서 술잔을 높이 들 동안 알베르띠노는 미스 독일과 춤을 추고 있다.


이런 조그만 마을의 호텔에서 조차 내 팔자수염을 알아보는 이가 있다. 내 생각에 악단은 거글리온(Guaglione)을 연주하고 있는 것 같다. 그 말은 독얼어로 뻬삐노(Peppino)라 발음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발코네(balcone)와 운이 맞는 빼뽀네(Peppone)를 말하게 된다. 


주위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은 이탈리아 말을 좀 알고 있다. 그 사람들은 내 식탁에 몰려와서 내 자서전에 관해 묻고 있다. 그들 중엔 알베르띠노 만한 소년도 있었다.


“누가 안담? 내가 12년 전에 본 활짝 웃는 소년의 사진 속에서 저 소년을 보았는지도? 아니면 그 아이 엄마가 농사지은 땅에서 수확을 거둔 소출을 마차에 싣고, 어떤 시골 건초더미 속에 안전하게 보관하려고 폭탄이 쏟아지는 베를린을 떠나기 전에 보았었는지.”하고 나는 혼자 생각에 잠긴다.


왜냐하면 나는 그 길고 긴 침묵의 행렬과 폭격 맞은 피난민과 돌처럼 딱딱한 여인들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의 아들과 춤추고 있는 저 소녀도 그곳에 있었으리라. 어떤 사람이 내게 독일여행이 처음이냐고 묻는다. 나는 대답한다. “예, 처음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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