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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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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비밀일기’(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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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반니노 과레스끼 지음 / 유니스 윤경남 옮김

 

 

 

(지난 호에 이어)
그 애는 말할 수 없이 순수한 구세주의 옛날 얼굴 앞에 놓는 유리잔 속에서 매일 아침 새로 피어나는 꽃다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리고는 잠옷 주머니를 뒤져 내 낡은 타자기에서 빼온 열쇠와 황금 단추와 푸른 고무공을 끄집어 냈다.


“총도 있어요.” 얄베르띠노가 내게 말했다. 


“나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내가 덧문 역할을 해주는 종잇장을 말아 올리고 내다보니 하늘엔 새벽의 첫 징조가 나타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거라, 알배르띠노야. 엄마가 기다리셔.” 하고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아빠는? ” 그 애가 물었다.


“나도 곧 가게될 거야. 내일 말야, 내일.”


알베르띠노는 담요 밑에서 기어 나와 머리를 끄덕이더니 투명한 손을 들어 작별인사를 했다. 덧문을 들어 올려보니 밖은 이미 날이 밝았다. 알베르띠노는 공중으로 날아서 남서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는 잠시 교회 위를 맴돌고 있었다. “이 바보야! 무얼하고 있는 거야? ” 나는 걱정스러웠다. 조심스럽게 창문을 열어보았다. 그 때 열 개, 백 개, 천 개가 넘는 다른 알베르띠노가 한 떼의 비둘기처럼 해가 비치는 남쪽나라로 날아가기 전에 수용소 창문을 빠져 나와 종탑 위로 모여드는 것을 보았다. 


갑자기 하늘 위로부터 3개의 모터가 달린 큰 비행기가 그들 위로 내려 앉았다. 나는 괴로운 비명을 겨우 참았다. 비둘기 부대는 다행히도 흩어지지 않고 앉아 있었다.


포로의 꿈을 방해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비둘기떼는 계속해서 날아갔고, 하늘은 짙푸른 색을 띠고 있었으며 내 마음도 한결 즐거워졌다. 아름다운 가을날이 새롭게 펼쳐지고 있었다.

 

모래땅 위의 왕립대학교, 6월 3일


독일의 가을은 춥고 비 내리는 유월부터 시작한다고 보아야 한다. 하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듯했다. 하늘은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억압만 하는 북방 족속들처럼 험악하기만 하다.


어제 시작하려고 한 대학강의가 좋은 날씨가 올 때까지 연기하게 되었다. 대학은 일정이 잘 짜였고 일류 교수진을 확보하고 있으나 그들 머리 위로는 지붕이 없다. 


3호 막사 뒤에 몇몇 사람들이 땅바닥에 앉아 있는 곳이 법과대학이다. 7호 막사 뒤뜰은 인문대학이고, 10호 막사 뒤뜰은 공과대학이고, 그 다음 막사가 농과대학, 회계과 등이 있다.


인문대학 건너편으로 감시탑이 있는데, 경비병이 단테의 싯귀를 무심하게 들으며 서 있다. 한 구절도 이해할 수 없는 싯귀들을.


“어디엔가 그들의 이마 높이까지 파묻힌 곳에 내가 표시해 놓은 것은 힘센 센토르(Centaur)에 관한 것이다. 이들은 피와 약탈을 일삼아온 폭군들의 영혼이다. 여기서 그들은 그들이 저지른 잔인하고 못된 행위를 큰 소리로 외쳐 한탄하리니…”

 


<< 끝맺는 말>>


“저들을 기억해 줄 사람은 이런 사람들이지요. 정신적인    친족 관계자, 혹은 논쟁을 일삼기 위해서나 애국적인 이유로, 혹은 단순히 이기적인 한 인간으로 기억하려는 사람들이지요. 늙은 죠반니노여! 당신도 그 사실을 알고 있소. 왜냐하면 당신 일기 속에 적어놓았기 때문이오.” --본문 중에서—

 


친애하는 독자에게


아마 여러분은 이제부터 읽게 되는 것이 약간 예상 밖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방금 막 넘긴 책장과 이 책장 사이엔 십이 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까요. 올해 들어서 나는 자유의 몸으로 옛날에 포로로 끌려갈 때 걸어가던 같은 길을 거슬러 올라가 보았습니다. 


그리고 과거에 내가 비밀의 일기를 지켜 왔듯이, 지금 나는 길을 걸으며 떠오르는 내 사념들을 적었습니다. 여러분을 라게르수용소의 철조망 경계로부터 훨씬 더 넓은 유럽의 경계로, 그리고 유럽 땅으로 초대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내가 은밀히 기록한 것과 비슷한 추억을 가진 세상에서, 허다한 장벽에도 불구하고 연합한다는 사실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나와 여러분들에게는 끝맺는 말이 되겠습니다만, 이 속에 써넣은 믿음과 희망의 이야기는 여러분의 아들이나 내 아들에겐 서문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마치 내가 노인 현자인양 글을 쓰고 있군요. 사실은 그렇지를 않답니다! 내 콧수염은 옛날이나 마찬가지로 검답니다.

 

1. 알베르띠노와 나는 되돌아 간다


가로다(Garoda)에서 엘바(Elba) 입구까지 갈 수 있는 여러 갈래의 길 중에 트리에스테를 지나가는 길이 가장 고르지 않다. 물론 엘바는 남동에서 북서로 독일을 가로질러 드레스덴과 마드게부르그(Madgeburg)와 함부르그(Hamburg)를 통과해서 북해로 흘러 드는 강이다.


개울보다 조금 더 커서 운하라고 부르는 강이다. 운하는 빠르마(Parma)와 크레모냐(Cremona) 사이에 있는 나의 작은 골짜기 마을 론꼴레(Roncole)를 지나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러서 내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의 서쪽에 경계를 이루고 있는 비슷한 운하로 흘러 들어간다.


그렇다. 우리 마을과 엘바 입구로부터 베셰르 입구까지 펼쳐있는 습지대에서 가장 긴 행로를 선택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4년 전에 내가 저쪽 땅으로 호송되었을 때 나는 타르비소(Tarviso) 시에서 그 경계를 넘어섰던 것이다.


1 943년 9월 나는 포로가 메는 군용배낭 속에 알렉산드리아 성채에서 한껏 수집하여 쓴 불우하고 진기한 이야기들을 주워 담았지. 그뿐 아니라 희망과 환상의 짐 보따리도 함께 넣었었지. 그러나 오늘의 나는 셔츠와 속옷, 짧은 바지와 양말, 손수건 등을 챙겨 넣은 손가방을 가지고 다닌다.


재산에 관해서 사람들은 저마다 이야기 한다. 그러나 어깨에 걸머진 비참한 군용 배낭은 최신형 자동차의 짐칸에 넣어둔 호화판 옷 가방보다 작을 것이다. 나의 전 재산을 둘러보며, 나의 정신적인 결핍이 어디서 왔는지 나를 일깨워야 할 때가 왔다.


나는 내 멋진 가방 속에 들어있는 것들을, 14년 전에 배고픔과 신념과 함께 우울한 물건들을 넣어가지고 다니던 배낭대신 던져버릴 수도 있다. 


나는 북부 지방으로 돌아가서 포로들이 신는 나막신발로 밟았던 모래밭을 한 번 더 걸어보고 싶다. 내가 자유인일 때 처음 화물칸에 실려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 보고 싶다. 


나는 화물칸 바닥에서 먼저 독일을 맞았고, 포로 막사에선 그곳의 썰렁한 공기와 성난 하늘을 알게 되었다. 잠깐 동안이지만 나를 체포한 자는 독일인이 아니라 영국인이었으며, 독일이 파멸하는 것도 보았다. 결국 영국 해방군은 나를 이탈리아 해방군으로 바꿔놓았고, 그 때부터 나는 독일이 다시 소생하는 것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나는 라게르 수용소로 돌아가고 싶다. 내 자신이 사라져 가는 고통에 잠겨서 이탈리아인의 신념을 매일같이 잃어가고 있을 때, 유럽인으로서 갖고자 했던 그 신념을 굳세게 지키기 원하는 이탈리아인으로 다시 가보고 싶은 것이다.  


자유롭게 연합되어 있는 유럽이라는 이름으로, 포로로서 죽어간 나의 동료들 옆에, 나의 고통과 추억과 개인적인 분노를 묻어버리고 싶다. 새 차엔 없는 것 없이 다 준비가 되어있다. 큰 옷가방, 침낭, 타자기, 카메라 두 대, 그리고 한 사람 더, 알베르띠노가 있다. 그 아이를 제일 마지막에 부른 것은 무엇보다도 가장 성가신 짐이 될게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보다 부피는 작지만 적어도 6피트나 되는 큰 키 때문이다. 그래도 그 아이와 함께 가는 것은 괜찮은 일이다. 그의 눈은 내 눈이 겪고 본 것과 같은 슬픔을 보지 못한 이유로, 그의 눈은 밝고 평화로우며 나의 감명을 되새길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포로로 있을 때, 알베르띠노가 수 마일을 둘러싼 철조망을 가로지르고 들어와 세 차례나 내 환상과 꿈속에서 용기를 북돋아 주었었지. 한 번은 그가 겨우 세 살이었을 때 그 불쌍한 녀석이 잠옷 바람으로 새로 태어난 자기 여동생을 내게 이끌고 와서 인사 시켜주기도 했지. 그러니까 이번 여행은 혈육인 알베르띠노에게 주는 빚을 청산한 셈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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