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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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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비밀일기’(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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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반니노 과레스끼 지음 / 유니스 윤경남 옮김

 

 

 

(지난 호에 이어)
개인의 병이 천체로 퍼진다. 그것은 슬픔이나 근심이 아니고 절망이다. 대위는 14살 된 그의 외딸이 40일 전에 플로렌스(Florence)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지금 막 받았다. 절망! 그의 친구들은 대위의 어깨와 팔을 잡고, 그가 철조망을 향해 달려가다가 보초의 총에 맞지 않게 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들은 아직도 대위를 붙들고 서있지만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 이제 그의 반항하는 몸짓은 신경이 날카로워져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있기 때문이다. 몸을 떨고 있는 건 아니지만 마치 유리로 만든 것처럼 눈동자를 크게 떠서 공간을 응시하며 온 몸을 진동하는 것 같다. 


그는 당장이라도 깨여지거나 부숴질 것만 같다. 절망! 다시 말해서 숨막히고 참을 수 없게 되는 완벽한 불가능의 느낌이다. 포로들은 매일의 단조로움에 익숙해진 나머지, 밖의 생활도 우리처럼 정지되었다고 믿는다. 


운명조차 규칙을 보류하고 그들이 집에 돌아가기 전엔 아무 일도 생기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그 환상이 박살이 난 것이다. 바깥 세계는 삶과 죽음의 규칙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포로들은 마치 그들이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바깥 세계의 다른 사람들이 멀리가 버리고 있을 때 그들은 길가에 버림받고 있었다는 느낌이 온 것이다.

 


우리의 삶이란, 5월 28일


이 땅에서 흘러나오는 건 다 유별나듯이, 갑작스럽게 여러 달 동안이나 바람이 불더니 해가 났다. 햇빛은 또 너무 덥게 비쳐서 막사 지붕 위의 타르가 녹아 내리고 막사 안은 찜통이 됐다.


사람들은 나무 껍질처럼 자신들의 몸을 가려주었던 다 헤진 옷을 벗어 던지고, 겨우내 배어든 몸의 습기를 말리기 위해서 모래 위에 눕는다. 햇빛에 드러난 앙상한 뼈, 움푹 들어간 배와 툭 튀어나온 갈비뼈, 앙상한 손마디와 목뼈, 마치 그 뼈들 위에 가죽만 덮어놓은 듯이 보인다. 


이런 모습들은 의학 고서적에 나오는 그림 같기도 하고, 프랑스 잡지 “L’Illustration ”에 나오는 사진 밑에 붙은 표제를 생각나게 한다. “Kuantung 의 전염병에 희생된 사람들---인도 기근의 양상.”

 

실망, 5월 29일 


햇빛과 바람 때문에 웅덩이가 바싹 말랐다. 검정 물이지만 그 물위에 반사되는 것을 들여다 보는 재미는, 뭔가 신비스럽고 우리 세계에서 다른 세계를 향해 열려있는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듯, 어딘지 신비스럽다. 


물 속의 생명체에 대한 환상마저 주었다. 여기에 실망이 왔다. 우리의 생각을 모두 이 상상의 깊은 못에 던짐으로써 우리의 도피처로 삼았던 것이 이젠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지금은 다른 모래와 똑같은 모래 바닥이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다시는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닫힌 문 앞에 서있는 것처럼 메마른 연못 둑 위에 어 있다. 

 

빡빡 미는 면도, 5월30일 


겨우내 그들은 콧수염과 턱수염 및 귀밑 수염까지 아주 길게 기르다가 지금은 질렛(Gillette) 면도날로 면도하느라 모두 바쁘다. 빡빡 미는 이 면도는 청결하게 하고 싶어서만이 아니다. 단순히 고대 이탈리아 사람들의 광적인 자기형벌 증 세인 것이다.

 

그 ‘병아리’ 가 


지난밤에 나는 옛날에 알던 사람을 만났다. 그는 알베르띠노인데, 내가 독신생활을 포기하고 결혼선서를 한 후 정확히3년5개월13일 전에 내 생활에 침범해 들어온 사람이다. 나는 오랫동안 그를 보지 못했다. 우리의 관계를 설명하기 전에 꿈의 내용부터 설명해야겠다.


전보다 살도 쪘고 아직도 좀 감상적인데가 있는 나, 죠반니노는 여러분과 똑같은 꿈을 꾼다. 나는 반듯한 자세로 눈을 감고 잠이 든다. 자는 동안 사람이나 사물이나 거기 따르는 장소도 알아볼 수 있다. 


나는 이상한 모험을 하면서 그 동안 채워둔 내 두뇌 창고에서 정서적인 경험과 지적인 경험의 세계를 파내기 시작한다. 이런 모험은 하나하나가 모두 기록영화 같은 것으로써, 우리 기억 속에 늘 보관해 두는 녹음테이프를 가지고 있다. 


꿈 속에선 우리의 잠재의식이 그 기술자 노릇을 한다. 그는 수많은 릴 테이프를 가지고 요술을 부리며 잘라내기도 하고 조각들을 섞어서 아교로 붙여 하나의 예술작품이 되면 그것을 우리 수면의 영상에 투사해 준다. 


아침이 되기 직전에 그는 그의 모든 도구를 제자리에 정돈한다. 왜냐하면 더욱 평범하고 관습에 젖은 친구의 대낮기사 역할을 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친구의 이름은 내 경우엔 죠반니노다.


어른들은 이런 식으로 꿈을 꾼다. 그들이 살아온 세계는 머리 속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그렇지 않다. 아이들의 두뇌 창고는 아직은 비어있거나 있다고 해도 아이들의 어머니, 아버지, 조부모에 대한 것과 기르는 고양이와 노란 꽃, 황금 단추, 흰 말 등 단순한 것이 들어있다. 


얄베르띠노의 잠재의식도 자기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있지 않고 투사할만한 기록영화도 없기 때문에 그 세계를 깨뜨리고 나와서 다른 세계에 들어가곤 한다.


부드러운 호롱불빛 아래, 좁은 아기 침대 속에 조용히 잠들어 있는 어린아이를 바라본다. 


그 아이가 조용히 잠든 동안 희고 투명한 것이 그의 몸에서 빠져 나오리라. 그것은 그의 영상 속에 빛과 공기로 빚어진 또 하나의 다른 아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다른 사람들의 세계 속에서 또 다른 실존이 활동하기 시작하는 그의 잠재의식이다.


그래서 잠자는 아기는 그의 유령 상(像)이 다시 돌아와 본래의 그와 하나가 될 새벽까지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서류를 정리해 두는 아기 두뇌 속의 벽장에는 예전엔 흰 말밖에 없었지만, 얄베르띠노에겐 이제 하늘을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하얀 말을 묘사한 필름도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알베르띠노가 눈을 뜨면서 자기는 달나라까지 하얀 말을 타고 갔었다고 식구들에게 말하곤 했으니까. 이렇게 해서 나는 간밤에 알베르띠노를 만나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내 동료 포로들이 옆에서 코를 골며 자는 동안 나는 나의 “성 (城)”이 있는 다락방에 올라 앉아 놀고 있었다. 


그 해 갑자기 찢어진 문풍지 사이로 흘러 드는 불빛 속에, 달빛을 재료 삼아 만든 듯한 조그마한 모습이 긴 잠옷을 입고 서 있었다. 머리는 곱슬머리였으며 해적같이 나타났다.


알베르띠노는 자신의 꿈 속에서 아버지를 찾아나선 것이다. 얄베르띠노가 어리둥절한 듯이 나를 쳐다보기에, “넌 어디로 가려고 하느냐?”고 물어보았다. “우리 아빠를 찾으러 가요.”하고 그 애가 대답하기에 나는 빛 줄기 속에 내 얼굴을 드러내며, “내가 바로 네 아빠야.” 하고 말해주었다. 그 애는 나를 찬찬히 쳐다보더니 손가락으로 내 움푹 패인 뺨을 쓰다듬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른 식구들의 안부를 물었다. 그 애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소식을 전했다. 할아버지는 사자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고, 할머니는 세 마리 새끼돼지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어머니는 언제나 가장 무서운 말로 자기를 위협했다는 것이다.


“엄마가 뭐라고 말했는데?” 내가 물었다.


“엄만 맨날 내가 나쁜 짓 하는 아이가 되면, 독일 사람들이 와서 나를 잡아 먹는대.”


“가만 있거라, 알베르띠노야. 적군이 듣고 있어.”


나는 담요 밑으로 그 애를 잡아당겼다. 한쪽 모퉁이에 빛 줄기가 비치자 모퉁이 벽에 독일제국의 독수리가 곧 날을 듯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병아리야? ”하고 알베르띠노가 물었다.


“여기 있는 건 나는 짐승이란다, 알베르띠노.”


우리는 오랫동안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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