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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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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비밀일기(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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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반니노 과레스끼 지음 / 유니스 윤경남 옮김
 



(지난 호에 이어)

하루 종일 밤늦도록 망치소리가 요란했다. 그 망치가 못을 몇 개나 박았을까? 이만 개쯤 될 것이다. 이탈리안은 못에 대해선 본능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다. 끝없는 사막에 단 한 그루 서있는 야자수 그늘로 이탈리안을 쫓아버린다면, 다음 날 그 사람의 웃옷이 외로운 야자수 줄기에 박아놓은 못 위에 걸려있음을 보게 되리라.

이탈리안은 언제나 자신의 손을 못 위에다 걸어놓을 준비가 되어있다. 3개월 밖에 안된 내 아들이 아기 침대에서 나와 본 적도 없었는데, 어느 날 카페트에 박혀있는 못을 빨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1912년 롬메리나의 공문서에는, 어떤 아기가 손에 붓을 쥐고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노벨로 대위의 망치소리!”

118번 막사는 얼마나 여러 번 그 지겨운 망치소리에 떨었는지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망치가 두 쪽이 났다. 가운데 나사가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말할 것도 없이 나는 기쁘기만 했다.

그 도구는 수리하는데 필요한 모든 연장을 다 갖추고 있었지만, 주머니칼이 달린 연필이 자기자신을 뾰족하게 깎을 수는 없는 것처럼, 그 도구는 스스로 작동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키가 육 척이 넘는 스키 선수가 그것을 고치는 방법을 알아내고 말았다.

“노벨로 대위의 망치!”

나는 그 망치를 내 베갯속 짚 더미 안에 감추어 보았으나 그날 밤 내 꿈에 그 못이 내 목을 찌르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깨어보니 그 망치가 내 베개에서 비상 탈출하여 베개를 두드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다음 날 밤에는 그것을 내 침대 매트의 발치 속에 감추었다. 그날 밤의 악몽은 더 무시무시했다. 냉엄하기로 유명한 초기신형 펜치로 내 큰 발가락을 끌어가고 있는 꿈을 꾸었다. 나는 아파서 비명을 지르며 깨어보니 내 발가락이 실제로 그 망치 부속 펜치에 물려있는 게 아닌가!

“노벨로 대위의 망치!”

어느 날, 그 망치가 사라졌다. 사람들은 그 망치가 새로 건립한 이탈리아 공화국의 투표권을 행사하러 갔다고 말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 망치가 벽에 난 구멍에 빠져서 사랑을 위해 죽었노라고 암시하기도 했다.

3주가 지나자 그 망치는 한바탕 기분전환을 하고 돌아왔는데 우리는 방탕한 아들이 돌아온 듯 그를 쓰다듬어 주고 깨끗이 닦아주고 살찐 송아지까지 잡아 먹이며 받아주었다.

그러자 망치는 곧 전보다 더 거만하게 망치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우리는 그의 폭정에 굴복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이 캠프에서 저 캠프로 옮겨 다녔는데, 1944년 5월5일 저녁, 우리 새 막사에서 독일 병사 한 사람이 망치를 현행범으로 잡았다.

그 망치는 67번 막사에서 온 중위와 함께 가련하고 순진한 독일인 손톱에 생명의 위협을 주고 있다가 잡힌 것이다. 이것이 그 망치의 마지막 운명이었다. 그러나 이따금 지루한 오후나 한밤중에 벽을 두드리는 듯한 이상한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노벨로 대위의 망치 유령이 복수를 하려고 부르짖는 듯한 소리였다.

 

시뇨라 게르마나아(Signora Germania)

게르만이여, 당신은 나를 철조망 안에 가두고 내가 빠져나갈 것을 막기 위해 보초를 세워놓고 있소. 허지만 모두 소용없는 일이오. 내가 빠져나갈 수 없는 건 사실이오만 들어오는  일은 쉽다오. 철조망이 나의 추억과 나의 사랑을 방해하진 않기 때문이오. 그뿐만 아니라오. 하느님도 그 울타리를 넘어 들어와서 내게 당신네 규칙과 반대되는 규칙을 가르쳐주신다오.

게르만 족속이여, 당신은 내 배낭을 뒤지고 볏짚 매트리스를 조사하지만 모두 헛일이라오. 그 속에 당신이 손 댈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오. 나는 다만 중요한 비밀문서를 간직하고 있소. 하나는 내 집 청사진이고, 또 하나는 과거와 미래의 수많은 영상과 상상이라오.

또 있지요. 나는 백 마일을 1인치로 축소한 지도를 어딘가에 숨겨두고 있다오. 거기엔 하느님의 정의를 믿는 내 신념을 다시 발견할 장소가 명확하게 표시되어 있지요.

게르만이여, 당신은 나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지만 모두 헛일이라오. 당신이 화를 내며 나를 땅바닥에 엎디게 할 강력한 새 무기를 쓰는 날엔 오히려 당신이 놀라 자빠질 일들이 생길 것이오. 그가 일어나 철조망을 넘어 눈 옆에서 사라지기 전에 그에게 꼬리표를 달아줄 시간도 없을 것이오.

게르만이여,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요. 겉으로 사람을 못살 게 굴기는 쉽겠지만, 그 사람의 마음 속엔 또 다른 자아(自我)가 있어서 그 자아는 오직 하느님께만 순종한다오. 그려니 게르만이여, 이것이 바로 당신이 승리하지 못하는 이유라오.

 

게르만 사람들 / 2월 3일

저들은 냄비에 물을 가득 붓고 고기와 분말요리를 적당히 섞어서 저은 후에, 밀폐한 뚜껑을 덮고 가스에 불을     붙인다. 그런 다음 밸브에서 쉬익 하는 휘파람소리가 나면 국이 다 된다.

전쟁할 때에도 저들은 그와 똑같은 방법을 쓴다. 냄비 속에 인간의 살덩어리와 폭발물과 군사과학에서 뽑아낸 요리를 넣고, 비타협적인 기율이라는 뚜껑을 덮은 다음 요리가 다 되었다고 휘파람 소리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휘파람 소리만 나는 건 아니다. 냄비가 산산조각으로 폭발해버리기도 한다.

 

2월 1 2 일

 잊을 수 없는 음성이 있다. R중위의 음성이 그러하다. 그의 음성은 전형적인 베네치아의 부드러운  억양으로 처음부터 틀이 잡혀있고 설탕에 저린 듯하다. 그래서 그가 하는 말은 무슨 말이든지 달콤하고 끈끈한 파리잡이 끈에 글을 쓰듯이 말하는 것 같다.

막사  안에서는 수십 명이 모여 얘기를 나눈다. 어떤 사람은 튕기는 듯한 단음으로, 또 어떤 사람은 노래하듯이 말한다. 대부분은 높은 소리에서 낮게 속삭이는 소리로, 떠들썩한 소리에서 아주 조용한 소리로 다양하게 말한다.

그런데 R중위의 음성은 수도꼭지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소리이다. 다른 음성이 낮아지면 의례히 그의 음성이 들려온다. 마치 자수를 놓는 듯이   바늘이 보였다 가려졌다 하면서 수를 놓지만, 바탕은 그대로 있는 것처럼 R중위의 음성을 나는 오랫동안 기억하게 되리라.

정확하게 강조하며 달콤하게 말하곤 하는 그의 음성을, 그의 이야기 내용이란 비프스테이크와 장조림에 대한 것, 쌀에 붙은 엽조과자와 쵸콜렛 등 고향에서 부쳐주는 음식들에 대한 평범한 내용이다.

지금도 내게 고통스럽게 들려오는 음성은 그날 그날의 선전문 작성 안을 읽어 내려가던 금속성의 목소리가 그 때처럼 고통스럽다.

“첫째, 미국은 전쟁에 개입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둘째, 영국 함대는 마비되었다. 왜냐하면…“
 

군중

개인은 군중 속에 있을 때 최악의 상태에 빠진다. 그래선지 밀집한 군중 속에 재빠르게 밀어 넣는 강철같은 기율에 자기의 개성을 기꺼이 내맡기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민족적인 증오심이나 전쟁에 더 말려드는 것 같다.

이탈리안들은 그러한 추세에 따라가지 않는다. 그런 추세를 활성화 하기보다는 오히려 희생하는 편이라고 하겠다.
 

빛 줄기

네 개의 흑색 진주가 붉은 가슴 속에서 반짝이고 있다. 네 개의 작고 검은 태양 덩어리가 우울한 회색빛 하늘에 빛나고 있다. 그의 아이들 눈동자가 사방에서 그를 내려다 보고 있다.
 

의문과 해답

장래 문제에 대해서 정열적인 관심들을 가지고 있다. 어떤 포로들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항상 분석하다가 이탈리아는 스위스처럼 되는 것이 상책이라는 결론을 내리곤 한다.

 그 외의 더 많은 사람들은 더 미쳐 있다. 그들은 이탈리아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말하면서 고대 로마를 한 예로 들먹거린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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