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19 전체: 155,341 )
나의 비밀일기(5)
knyoon

 
 
죠반니노 과레스끼 지음/유니스 윤경남 옮김

 

검은 마돈나


지금 나는 전염병으로 폐허가 된 어떤 시가지를 걷고 있는 듯하다. 거리엔 마치 누가 쫓아오는 듯 급히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만 뜨문뜨문 보일 뿐이다. 그 사람들은 게슈타포 출신의 대위가 앞장서고 의심 많은 통역관이 뒤따르는 우리들, 열 명의 전쟁 포로들을 힐끗힐끗 쳐다보며 지나가는구나. 그 시선은 우리를 재빠르게 지나쳤지만 통역관도 알아채지 못하는 웅변이 들어있었다.


1939년 이전의 체스토초바(Czestochowa) 시 인구는 18만 명 이었다. 독일군이 들어온 지 이 삼일 후에 그 중의 5만 명이 죽거나 다른 곳으로 이주하거나 했다. 넓고 텅 빈 광장은 마치 사람이나 집이나 모두 그곳에서 추방되어 버린 듯이 허망해 보였다. 


남아 있는 건물들은 유령이 나올 듯 썰렁했고, 겉모습은 지난 몇 해 동안 고통을 받아온 비극을 떠올리고 있었다. 거리는 어수선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고, 사람들은 반쯤 내린 덧문 사이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상점은 모두 문을 닫았고, 아직 잠그지 않은 진열장엔 통조림과 생산품 상자를 진열해 놓았다.


“Patria Bar…”라는 이탈리아 글자가 황폐한 카페 입구에 붙어있는데, 마치 수많은 외국인 가운데서 낯익은 모습을 하나 발견했을 때 떠오르는 아픔으로 가슴에 와 닿았다.


거리는 머리칼 한 오리 없는 내 머리 위로 윙윙거리는 바람결에 쓸려가 버린 듯 깨끗했다. 나는 마치 마지막으로 좋은 옷을 입고 거리를 누비면서, 보석상점을 기웃거리고 카페에 들어가 아는 사람을 찾으며, 이 세상은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거리를 배회하는 자포자기한 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 뒤에 있는 출입문이 곧 닫치리라는 것과 그렇게 되면 내가 한 달 동안 꼬박 굶게 되리라는 사실을 내가 잠깐 잊었을 때뿐이었다.


지성소(至聖所)는 언덕 꼭대기에 있다. 우리가 넓은 입구에 이르자 게슈타포 대위는 걸음을 멈추고 통역관에게 말했다. 통역관은 곧 우리에게 통역해 주었다.


“여러분이 보고 있는 저 언덕은 해발 400피트가 더 된다고 대위가 말한다.” 단지 그것만이 알아두어야 할 말이라고 생각한 듯 말했다. 결국 해발이란, 실질적이고 수학적인 것이며 예술적이라거나 역사적 이해와는 거리가 멀다. 그것이 바로 독일인의 관점인 것이다.


우리가 지성소 입구에 이르자 독일어를 할 줄 아는 얀내인과 마주쳤다. 죄수 중 한 명이 그의 통역관 노릇을 하고 있었다. 지성소는 아주 좋은 종탑으로 둘러싼 건물들이 잔뜩 밀접해 있었다. 원래 그곳은 성 안토니오 원장의 교단에 속해 있는 수도원이었는데 후에 도미닉회 교단과 병합했다. 


1200년 이후에 그 수도원이 유명한 성 루가의 마돈나를 소유하게 되자 수 많은 순례자들의 목표가 되었으며, 작은 예배당이 신성한 바실리카로 변모하게 되었다.


수도원의 부원장과 폴란드의 영주들이 그 본채에다 새 건물을 자주 덧붙여 짓는 바람에 그 수도원은 건축 백과사전이 될 지경이었다. 높이 솟은 검은 대리석 종탑조차 어떤 건축 설계자가 점점 더 뾰족하게 그리다가 나중에는 “몇 개만 더 그리자. 성 베드로의 발치에 닿으려면 아직 멀었어.” 하면서 설계도를 그린 듯이 보였다.


간단히 말해서 직경 50야드 되는 대좌 위엔 세계에서 가장 큰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14개의 조각상에 둘러싸여 큰 혼잡을 빚고 말았다. 내부에는 진짜 대리석과 모조 대리석이 너무나 많아서 방문객들은 전면의 넓은 광장을 걸을 때 보이는 검고 흰 자갈 돌들이 페인트 칠한 나무조각인지 정말 돌멩이인지 알고 싶어 발 뒤꿈치로 그것을 밟고 싶은 유혹을 느낄 정도다.


어떤 곳에서 보면 그 지성소가 성채같이 보였다. 길고 검은 장화가 수도승이 입고 있는 흰 성의(聖衣) 밑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군인으로 위장한 모습을 풍기고 있다. 안내인은 실제로 담 벽에 박혀있는 포탄 자국을 손으로 가리켰다.


곳곳에 야자나무가 서 있고, 광장에도 층계에도 난간 벽과 첨탑 위에도 뒷발을 치켜든 두 마리의 사자와 빵 조각을 입에 문 갈가마귀가 그려져 있다. 이것은 황야에서 일생을 마친 성 안토니오의 전설과 관계가 있다. 그 갈가마귀는 매일같이 그 황야의 성자에게 빵 반 쪽을 날라다 주었는데, 그 후 성자가 일 년에 한 번씩 그곳을 방문할 때도 빵 한 개를 주었다. 성자가 죽자 두 마리의 사자가 그들의 발톱으로 무덤을 팠다고 한다. 


안내자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덧붙여 말랬다. “원래 그 새는 독수리였답니다. 러시아인이 와서 독수리를 갈가마귀로 바꿔 놓았지요. 그 다음엔 독일 사람이 들어와 그 빵을 뺏어갔고요…”


 광장에서 내려다 보면 시가지 전체가 보이고, 그 너머로는 한 때 수도원의 소유였던 큰 숲이 멀리 지평선까지 펼쳐있다. 


“검은 마돈나의 축제일을 기념하며 순례여행 하는 동안, 큰 뜰에선 하루에 약 5 만 명의 고해성사와 성찬식을 준비한답니다. 이동식 유리문 뒤로 떼지어 서 있는 수십 만의 신자들을 위해 미사가 진행되지요. 물론 대형 스피커가 장치되어 있지요…”


안내자는 계속해서 단조로운 말투로, 여기 있는 모든 시설물의 가격과 계약자의 이름을 대면서 떠들었다. 언덕 기슭을 내려다보니 수십만 명의 폴란드인들이 판례대로 모여들고 있었다. 오로지 사람답게 보이는 사람은 긴 장화를 신고 허둥대는 여인 한 사람뿐이었다. 그 여인이 나타남으로써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텅 빈 공간이 주는 고독감과 절망감이 모두 흩어져 없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바살리카 회당에서 매일 거행되는 의식에 참여할 시간이 되었다. 체스토효바 (Czestochowa)의 검은 마돈나는 성모 마리아의 초상화로 알려지고 있다. 이 그림은, 그리스도의 수난 중 마리아가 그 위에 올라서서 울었던 널빤지에 성 루카가 실물 그대로 그려 넣은 최초의 마리아 초상화인 것이다. 


이 널빤지는 굉장히 흥미 있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데, 이것은 예루살렘에 320년간 보존 되었다가 콘스탄티노블에서 400년간, 헝가리에서 400년간, 그 후론 체스토효바(Cze­ stochowa)에 간직되고 있다.


1430년엔 보혜미아 출신 후스(Huss- 註: 보헤미아의 종교개혁자. 1369~1415) 신봉자들에게 도난 당하여 잘리고, 포악한 인간의 총에 맞은 구멍자리까지 나있 다. 1717년에 교황 클레벤트 10세가 성화(聖化)시킨 이래로 오늘날까지 한 예배당에 잘 모셔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형상(形象)은 제단 위에 잘 안치되어 있으며 묵직하고 단단한 황금 판으로 덮여 무게는 1600 파운드가 된다. 매일 오후 5시 15분 전이면 짧은 의식이 있고 그 동안 대중들이 그 형상(形象)을 볼 수 있도록 앞에 친 커튼이 위로 올라간다. 이 때 패로시(Perosi)가 1909년 이 수도원에 왔다가 작곡한 찬송가와 반주가 흘러나온다.


 공회당에 들어서자 올간 연주가 들리는 가운데, 반짝이는 마치 동화처럼 제단 앞에 서있는 한 떼의 부녀자들 사이에 우리도 끼게 되었다. 더러운 것과 절망의 분비물이나 내보내고, 그 모든 낱말은 울음뿐이고 모든 명령은 위협뿐인 그런 환경에서 한 달을 보낸 다음, 갑작스럽게 이처럼 조용하고 반짝이는 황금과 짜릿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에 와 있다니!


나는 문 앞에서 잠시 멈추어 섰다가 다시 앞으로 걸어나갔다. 갑자기 누더기로 덮인 내 몸의 육체에서 벗어난 듯 홀가분함을 느꼈다. 제단 앞의 황금판이 서서히 올라가고, 반짝이는 황금의 배경 때문에 더욱 검게 보이는 기적의 형상(形象)은 주위의 대조로 인해 더욱 신비롭고 매혹적이다. 


군중 가운데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마치 폴란드의 온 영혼을 나타내듯이, 여러 세기를 억압에 익숙해온 국민의 슬픔을 소리쳐 부르는 듯한 노래 소리가. 시간이 되어 황금판이 내려지자, 마음을 혼란케 하는 정열적인 트럼펫의 팡파레가 울려 퍼졌다.


“트럼펫 부는 사람 중에 아주 잘 부는 사람이 몇 명 빠져서 아무렇게나 불고 있는 겁니다.” 안내자가 설명했다. 바로 그 점이었다. 절망에 찬 정열의 곡들은 음이 맞지 않게 되어 있다. 그래도 좋다. 


그러나 안내자의 말을 믿을 수 없는 게 한 가지 있다. 폴란드에서는 모든 사람들의 몸짓과 억양이 정열을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체스토효바(Czestochowa)를 둘러싼 어둡고 푸른 녹색의 숲에 황혼이 덮였다. 지성소(至聖所) 앞에 있는 광장에서 우리는 창백한 달빛이 저녁의 아름다운 풍경을 준비하는 게 보였고 웬편엔 철조망 울타리 주위에 감시탑이 서있고 노드 카젠(Nord-Kaserne) 강이 보였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