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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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비밀일기(2)
knyoon

 

작가 서문(序文)


 이 “비밀일기”는 너무나 은밀한 것이어서 일기라고 할 수 없을 정도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책의 제목을 부분적으로 고쳐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책에 적대감을 갖게 될지도 모를 어떤 사람의 불안을 덜어주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책은 내가 매일같이 생각하고 행동한 것을 기록한 일기가 아니라, 내 자신을 우주의 중심이며 주축으로 여기면서 쓴 보통 문집의 하나다. 나는 실제로 이런 종류의 일기를 만들어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2년 동안에 내가 보고 행동했거나 하지 못한 것, 생각은 안 했지만 꼭 생각해 두었어야 할 모든 일들을 적어 놓았다. 


그 결과 많은 자료가 담긴, 이 천 페이지가 넘는 세 권이나 되는 노트를 집에 가지고 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곧 타자기에 새 먹지를 갈아 끼우고 내가 적어놓은 주석(註釋)을 판독하고 설명 붙이는 일을 시작했다. 2년 동안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했다.


지루하고 진땀 나는 작업이었지만 마침내 나의 일기는 완성 되었다. 주의 깊게 내용들을 다시 읽고, 다듬고, 알맞은 속도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그것을 다시 타자로 옮겨 완성한 다음 다시는 꺼내보지 않으려고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작가로서의 내 생애에 가장 현명한 일이 되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처럼 나도 가장 최근의 큰 혼란 속에 불행하게 말려들었다. 전쟁이 어떻게 되어 갔는지 정확하게 기억할 수도 없다. 전쟁에 끼어든 사람들은 자기에게 배당된 작전지구 안에서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으므로 전반적인 상항을 알 길이 없다. 


우리가 전쟁에 이기고 있는 것인지, 져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며 나중엔 이겼는지 졌는지 조차도 모르게 된다.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맹자가 되기도 했으므로 외란에 내란이 겹쳤다. 이런 혼란은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남과 북, 동과 서를 서로 갈라놓았다. 


역사가는 다만 정확하고 정직하게 이렇게 쓸 수 있을 뿐이다. “미치광이 세상에선 미치광이가 미치광이를 정복한다.”라고. 왜냐하면 이쪽이 저쪽보다 더 미쳐있다면 저쪽 또한 이쪽보다 더 미쳐있기 때문이다.


전쟁에 휘말려 든 나도 이탈리아 국민으로서 처음엔 독일인의 동맹자였으나 나중엔 그들의 포로가 되었다. 1943년 미국은 내 집을 폭격했고, 1945년엔 나를 감옥에서 풀어내주며 레이션 깡통을 나눠주었다. 이것이 내 이야기의 전부다. 


나는 바다 위에 떠있는 귤 껍질만큼이나 힘이 없었다. 가슴에 훈장을 달고 나타나지도 못했다. 하지만 나는 승리자로 나타났다. 왜냐하면 내 영혼에 어떠한 증오심도 품지 않고 전쟁의 소용돌이를 헤쳐 나왔으며, 값진 친구인 나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내가 지나온 이야기는 정확하게 말하면 이러하다. 1943년 9월 어느 날, 나는 다른 장교들과 한 무리가 되어 폴란드의 어느 포로수용소에 끌려온 것을 알게 되었고, 수용소는 그 후 여러 번 바뀌었다. 그러나 이야기의 줄거리는 달라지지 않았다. 


자세히 말해봐야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이, 이 마지막 전쟁이나 그 이전의 싸움터에서 포로가 되지 않았던 사람도 다음 전쟁에선 포로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도 없다면 이전에 선대(先代)에서 그런 경험을 했거나 후대(後代)에서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니면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형제나 천구에게서라도 듣게 된다.


지금 와서 생각해봐도 재미있었던 일은, 내가 수용소 안에서도 뽀 강이 흐르는 낮은 계곡의 에밀리야 읍 토박이 촌사람 노릇을 해왔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를 갈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저들이 나를 죽인대도 난 결단코 죽지 않아!” 그래서 나는 죽지 않았다. 


아마 저들이 나를 죽이지 않았기 때문이겠지만 어찌되었던 나는 죽지 않았다. 육체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살아남아 계속해서 일했다. 내 일기를 남기기 위해 많은 주석(註釋)을 적어두었을 뿐 아니라 부대 기록을 위해서도 매일 적어나갔다.


앞서 말했지만 이것은 너무나 은밀한 책이어서 일기라고 보긴 힘들다. 그러나 이 일기 책은 그 당시의 모습을 여러 각도로 생생하게 그려주고 있으며 원래의 내 수집내용보다 그들의 슬픔과 생각을 더 잘 표현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권위있는’ 자료인 것이다. 나는 이 자료들을 라게르(Lager) 수용소 안에서 생각해 냈고 거기서 쓴 것이다. 거기서 열두 번도 더 읽으며 사람들의 동의를 얻었다. 이 책 속에서 포로수용소 동지들의 인정을 받지 못한 부분은 에필로그뿐이다. 에필로그는 고향에 돌아온 다음, 어느 주간지에서 출판해 주었고 나머지는 깨끗이 정리해 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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