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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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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아 윤치호의 해학(諧謔)과 <우순소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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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조선조 시대의 어떤 어진 임금님이 정치를 하던 때의 일입니다. 그 임금님은 마음이 착해서 자나깨나 백성들의 살림살이를 걱정하여 틈만 있으면 벼락 거동을 잘 다녔는데, 하루는 거동 행차가 동대문 밖을 나서서 어떤 시골 고을에 당도하니, 화광이 충천하고 군중이 아우성을 치는 것이 공기가 매우 수상하였습니다. 거동행차를 멈추게 하고 사정을 알아보게 하니, 그 고을의 군수가 너무 노략질을 하므로 백성들이 민란을 일으킨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임금님이 크게 노하여 신하를 보고 당장에 그 놈을 잡아오라고 하니, 미구에 광 속에 숨어 있던 군수가 왕의 앞으로 끌려왔습니다.


 ‘여봐라, 군수란 백성의 부모와 같은 것인데, 얼마나 백성을 들볶았기에 이지경이 되었느냐?’ 임금이 꾸짖으니 땅에 엎드려 대죄하고 있던 군수는, ‘예, 죽을 죄를 지었사오나 소인에게는 한 가지 사정이 있사옵니다.’ 


 ‘대체 너의 소위 사정이란 무엇이란 말이냐?’ ‘다름이 아니오라 소인에게는 딸이 다섯이 있사온데, 그 딸 들을 시집 보내려면 돈이 이만저만 들지를 않고 전하가 주시는 국록으로는 태부족이므로 백성의 재물을 조금 긁었더니 그만 이 지경을 당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임금의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그것은 그때 그 임금에게도 딸이 셋이나 있어서 그 딸들을 시집 보낼 생각을 하면 한 나라의 임금인 자기로서도 걱정이 되는데, 하물며 한 작은 고을의 수령쯤으로 딸이 다섯이나 된다니 오죽이나 걱정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왕은 노여움을 푸시고, ‘네 죄는 처벌받아 마땅하나 정상이 딱하니 특히 용서하겠다. 차후에나 조심하여라’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좌옹은 잠깐 말을 멈추었다가 소리를 높여서, “그런데 우리 이화학당에는 딸이 수백 명이나 됩니다. 그 애들을 잘 공부시켜서 시집을 보내자면, 돈을 이만저만 긁지 않고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어렵더라도 스와인하트 씨는 다시 한 번 미국에 다녀오셔야 되겠습니다.”


 박수 갈채가 우레같이 일어났다. 얼마나 적절한 비유이고 재미있는 이야기냐? 어떤 선교사 부인은 ‘딸 가진 부모의 걱정은 동서양이 같군요’라고, 연방 그 이야기를 수첩에다 적는 것이었다.


어쨌든 그날 좌옹의 재치 있는 이야기가 주효했던지, 드디어 스와인하트 씨는 미국으로 다시 가서 많은 기부금을 얻어왔으며, 그 결과로 지금의 이화대학 건물이 그 내부 장식까지 완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두운 세상에서도 기지를 발휘하여 학교의 발전을 도운 멋진 해학의 사례이다. 이 외에 윤치호의 해학적인 역술서 가운데 <우순 소리>가 있다.

 

 

 


 “‘우순소리’는 윤치호가 이솝 우화와 프랑스 작가 라퐁텐의 우화 등을 번역하거나 재창작하여 소개한 책인데, 우화를 통해 일본 제국주의와 무능하고 부패한 조선 정부를 비판한다. 보통 우화집과 달리 일부 우화의 끝에 엮은이의 촌평을 달아 교육적 효과를 높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어미 개구리가 새끼 개구리에게 황소보다 큰 체하려고 자신의 배를 부풀리다가 결국 배가 터져 죽는다는 우화 ‘개구리와 황소’에 대해서는, “강한 나라 칭호와 예식만 흉내 내다가 망한 나라도 있다지”라고 촌평했다. 


 젊은 독수리가 병들어 죽게 되자 어미 독수리에게 명산대찰에 기도하여 병이 낫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어미 독수리가 ‘명산대찰에서는 도둑질만 했는데 그 누가 기도를 들어주겠느냐’고 나무랐다는 우화. 


‘수리의 지각(知覺)’에 대해선, “임금을 속이고 백성을 학대하여 나라를 망하게 해놓고 불공과 산천 기도로 나라 잘 되기를 비는 사람들은 이 독수리 지각만 못하도다”고 비꼬았다. 


 매일 황금 알을 낳는 거위를 죽여서 배를 가르고 보니 아무것도 없었다는 우화 ‘금알 낳는 거위’에 대한 촌평에선, “백성을 죽여가며 재산을 한 번에 빼앗다가 필경 재물과 백성과 나라를 다 잃어버린 사람들도 적지 않아”라고 일갈했다. 


‘우순소리’는 당시 언론에 “애국 사상을 일으키며 독립정신을 배양하는 비유 소설”로 여러 차례 광고했고 1910년에도 재간되었다. 하지만, 일제의 ‘교과서 검정법’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고 말았다. 

 

 

 


애국가 가사를 지은 윤치호는, 민족운동을 탄압하고자 일제가 조작한 ‘105인 사건’(1911년)의 주모자로 검거되어 3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교육에도 힘을 쏟아 실업교육을 강조한 한영서원 초대 원장(1906년10월), 안창호가 설립한 대성학원 교장(1908년), 연희전문학교 교장 등을 맡았다. 윤치호의 ‘우순소리’는 그 당시 일정을 비판하는 청소년 교육 교재로 나온 것이다. 


  윤치호는 한국인 최초로 개신교 찬송가인 <찬미가, 1907>를 펴냈고, <英語文法捷徑>1910, <幼學字聚>1906년 저술, <의회통화규칙>과 <걸리버여행기> 등을 번역했다. 
특히 1883년부터 1943년까지 60년에 걸쳐 쓴 <윤치호 일기>는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의 한국 역사를 증언하는 중요한 자료로 많은 역사학자들이 활용하고 있다.

 


윤치호의 <우순소리>는1908년 7월 30일에 대한서림(大韓書林)에서 초판을 발행하고, 1910년5월 10일에 윤치호가 미국 하와이에 정부순찰차 방문했을 때, 하와이 신학국보사(新韓國報社)에서 재발행했다. 


<우순소리>초간과 재간본은 2013년에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미국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UCLA)의 The Charles E. Young Research Library(일명 Research Library)에 소장된 “함호용 일가 자료(980여점)"에서 발견한 자료이다. 


그 자료의 하나인, 세계명작가곡집 <무궁화> (한석원 편, 로스앤젤레스 영원사, 1931년)에는 <애국가>, <국기가>, <혁명가>, <독립선언가>, <대한반도 내 사랑>, 동요 <반달>, <달밤의 고향>, <고향이 그리워서>, <낙화암>, <천하에 제일 좋은 곳>, <님의 창밖에>, <흰나비>, <죽음의 찬미(윤상덕 작사)>, <너와 나> 등 170곡이 수록되어 있다. 특별한 것은, 애국가에 <애국가 작사자 윤치호> 로 확연하게 명시한 점이다.


 <우순소리>에는 71편의 우화가 들어있으며, 재판본에는 3편이 더 들어있다. 이솦우화의 성격을 띠고 재창작한 글의 말미엔 그 당시의 외세와 부패한 집권층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곁들였다. 작품마다 그의 폭넓고 날카로운 풍자와 해학이 넘쳐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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