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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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러시아에 가다(51)?
knyoon

 

죠반니노 과레스키 지음 / 윤경남 옮김

 

(지난 호에 이어)


“알겠소.”


돈 까밀로는 전혀 아는 게 없었는데도 그렇게 말했다. 


“나를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가요?”


스카못지아는 아직도 그전처럼 무사태평한 친구였다. 그것은 그가 담배에 불을 붙인 다음, 소파 위에 몸을 길게 던지듯이 누워버리는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태평해 보이는 몸짓도 돈 까밀로의 눈을 속이진 못했다. 그는 나디아 페트로프나 동무의 눈에서 흐르던 눈물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동무, 아니 신부님, 제게 문제가 생겼어요. 그 여자말인데요…” 


“아니, 그 여자가 어찌 되었소?”


“두 달 전에 그 여성이 로마에 왔는데 러시아 여성 대표와 함께였지요. 그들이 떠날 때 그 여자는 떨어져서 뒤에 남아버렸단 말입니다.”


 그래 동무는 어떻게 했소?”


 저희 당의 입장을 생각하면, 소련 연방국의 배신자와 관계를 가질 수 없지요.”


 그래서 그 다음엔 어떻게 했소?”


 그 여성과 결혼하기 위해서 저는 당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스카못지아는 피우던 담배를 난로에 던져 넣으면서 말했다. 


“그것이 문제란 말이오?”


“아닙니다. 문제는 다른데 있지요. 우리는 결혼한지 한 달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매일같이 아내는 민간 의식으로 한 결혼식을 마땅치 않다고 야단입니다. 교회에서 예식을 올리고 싶다는 거예요.”


“별로 걱정할 건 없어 보이는데요.”


돈 까밀로는 조용히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에겐 그렇지 않지만요, 저는 신부의 모습만 보이면 뱃속이 뒤틀린답니다.” 스카못지아가 말했다.


“알겠소, 동무. 자기 의견이 옳다고 주장할 권리는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경우라면 왜 내게 왔소?”


“왜 그러냐 하면 우리 일이 어차피 신부가 관여해야 할 일이라면, 차라리 그 신부가 제대로 된 사람이었으면 해서지요. 게다가 당신은 나하고는 전에 동지였고 실제로 내 과거의 세포 지도자가 아닙니까?”


“괜찮은 생각인 걸?” 돈 까밀로가 말했다.


스카못지아는 문 가까이 가더니 열고 소리쳤다. “나디아!”


잠시후 페트로프나 동무가 방에 들어섰다. 그녀는 돈 까밀로를 보자마자 달려와서 그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


“이런, 반동 같으니라고!” 스카못지아가 중얼거렸다.


“이 나라에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관습은 모두 알고 있었구먼!”


모든 서류 절차가 잘 진행되었고, 결혼식도 빨리 끝났다. 빼뽀네가 신부의 후견인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그는 미소를 지으며 잘 해내었다. 부부가 식을 마치고 떠나기 전에, 돈 까밀로는 스카못지아의 신부를 옆으로 끌어내어, 오리고프 동무에 관해서 사실대로 얘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주 몹쓸 사건이었어요.” 그녀가 설명을 했다.


“우리 일행이 갑판 밑으로 내려갔을 때, 오리고프가 선장에게 명령하더군요. 우리 모두를 가둬버리고, 신부님과 뽀따지는 수갑을 채우라고요. 그는 배반자라고 소리치면서, 바티칸의 스파이들이고, 스파이 임무를 띠고 온 자들이라는 둥 막 소리질렀어요. 마침내 그는 아주 미쳐버리더군요. 오리고프와 선장은 서로 주먹 싸움을 하다가 선장이 그를 난간에 밀어 부딪치게 했어요. 바로 그때 파도가 그를 쓸어가 버린 거예요. 이게 사실 전부입니다만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선장과 나와 그리고 신부님뿐입니다. 너무나 슬픈 일이었어요…”


신부와 신랑이 떠나간 다음, 돈 까밀로와 빼뽀네는 서재에 있는 난롯가에 앉아 불을 쬐고 있었다. 얼마 동안 그들은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돈 까밀로가 소리쳤다.


“잊어버리기 전에 적어 둬야지”


그는 주머니에서 그 유명한 공책, ‘레닌의 어록’을 꺼내어 다음과 같이 큰 소리 로 읽으며 적어 나갔다.


“두 사람이 더 개종했고, 결혼이 한 건 더 있었고…”


“적고 싶은 게 있거든 다 적어 두시오.” 빼뽀네가 고함을 쳤다.


“대 봉기가 일어나는 날, 그건 몽땅 당신 계산서에 적힐 테니까 말이오.”


“조금만 좀 깎아주지 않겠수?” 돈 까밀로가 물었다.


“나도 옛날엔 당신과 같은 동지였으니 말일세.”


“신부님이 교수형을 받을 장소는 맘대로 선택하게 도와드리리다.” 빼뽀네가 비아냥거렸다.


“그건 지금 당장 말해줄 수가 있네.” 돈 까밀로가 대꾸했다. “바로 자네 옆이라고 말일세!”


추운 겨울강가에 피어 오르는 안개가, 새로 완성된 이 이야기 끝에 덮여 있었다. 그 이야기는 시간으로 보아, 이미 옛날얘기가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끝)

 

[옮긴이의 말]


죠반니노 과레스끼(Giovannino Guareschi : 1908 1968)가 쓴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시리즈에 반했던 내가, 밀라노 여행길에 과레스끼의 고향이자 작품의 무대가 되었던 빠르마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그의 가족들을 만나보고 온 것이 바로 엊그제만 같은데, 어느덧 3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


지금도 내 눈앞에는 짙은 저녁안개 속에 잠긴 뽀 강둑 위로 요란스럽게 질주하는 피아트 자동차의 불빛들이 아른거린다. 마치 죠반니노 과레스끼가 그의 피아트를 몰고 가는 듯.


아들을 위해 손수 설계해서 지어줬다는 ‘과레스끼 레스토랑’의 적송 빛 나무의자에 앉아, 오랜 친구를 만난 듯이 반겨주는 과레스끼 가족들과 함께 호롱불 아래에서 토스카나의 붉은 포도주를 마시던 일…


2층에 있는 과레스끼의 방문을 열고 들여다보다가, 실물 크기로 서 있는 작품 속의 주인공들이 마치 방안을 걸어 다니고 있는 듯한 착각에 놀랐던 일…


포로 수용소 생활을 그린 ‘나의 비밀일기’ 속에 아기요정으로 나왔던 그의 아들 알베르또와 딸 살롯데가 여전히 퍼붓고 있는 겨울 빗줄기 속에 서서 안개 속에 멀어져 가는 우리일행을 배웅해주던 일 등은 지금도 나 자신이 그의 작품 속에 살짝 들어갔다 나온듯한 환상 속에 잠기게 한다.


그의 생활이나 작품이 이렇듯 환상에 차 있고, 해학이 넘치며, 예지로 빛나고 있음을 그의 고향 마을을 둘러본 후에 더욱 느꼈다.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떼돈을 번데다가 상원의원 자리에까지 오른 빼뽀네의 약점을 물고 늘어진 나머지 공산당원증과 여권을 얻어 러시아 여행단에 끼게 된 돈 까밀로 신부가 여행 중에 일행 들을 한 명씩 공산당에서 이탈하게 만들고 있다. 


교묘하기 짝이 없는 그 비결은 의외로 단순한 진리에 있었다. 그가 내세우고 주장하는 진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나 공산주의 사회에서나 똑같이 적용되는 진리였다.


공산당원으로 변장한 돈 까밀로 신부는 공산당의 모국인 러시아의 정치, 종교, 노동자와 농민계급의 사회 문제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당원의 입장에서 대변해주고 또 그들의 공감을 얻어내기도 한다. 


돈 까밀로는 노골적으로 러시아 정부를 비방하거나 공산주의를 나무라지도 않지만 그의 말에 공감하는 당원들은 결국 공산당을 탈당하기에 이른다. 그는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릴 줄 아는 참 자유인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과레스끼는 돈 까밀로를 통해서 시대와 상황을 초월하여 변함없이 존재하는 그리스도의 진리를 독특한 기지와 정열로 묘사하고 있다.


과레스끼가 이미 그의 작품 안에서 예견하고 있는 여러 사실들을 볼 때 오늘날 소련의 개방 정책은 어쩌면 이미 예고된 당연한 귀결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올 여름은 유난히도 뜨겁게 느껴졌다. 이 뜨거운 날씨 속에 이 책을 내느라 이리저리 뛰어 다니신 진선출판사의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특히 과레스끼의 작품에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과레스끼와 함께 갇혀있던 수용소에서 남아 돌아온 오직 23명의 고향 친구가 만들어 그의 향리를 위한 문화 활동을 펼치고 있는 ‘23인클럽’의 명예회원 자격을 주신 Salla Delle Damigiane 회장님께 이 작품으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또한 잊을 수 없는 죠반니노의 아들 Alberto와 딸 Carlotte 여사에게 영원한 우정을 보내고 싶다.


하느님께서 두달 전에 선물로 주신 우리의 첫 손녀인 민상희가 빨리 커서 돈 까밀로 신부의 러시아 여행기를 읽으며 깔깔거리고 웃어주었으면 얼마나 기쁠까 생각해 본다. (1989년 7월 윤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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