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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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러시아에 가다(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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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반니노 과레스키 지음 / 윤경남 옮김

 

 

(지난 호에 이어)
페트로프나 동무와 빼뽀네가 일행의 여권을 들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경찰관은 그들을 훑어보고는 명단을 통역관에게 넘겨 주었다. 페트로프나가 한 사람씩 이름을 불렀다.


“피에트로 바치까”


바치까가 들어갔다. 빼뽀네와 페트로프나 동무는 그의 신원을 확인했다. 그의 이름을 확인한 다음 카피체, 지뱃티, 프라디, 페닷토가 뒤를 이었다.


“월터 론델라…”


빼뽀네는 론델라 동무가 불명예스럽게도 배에 실려 고향에 돌아갔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들자, 티피즈의 콜호즈에서 만났던 나폴리의 이발사가 뻔뻔스런 얼굴로 그의 코앞에 서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이미 그 친구는 론델라라는 이름으로 인정을 받도록 페트로프나의 동의까지 얻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타롯치 동무 차례가 되어 그의 이름이 불려 들어갈 때, 빼뽀네는 그의 정체를 폭로해 버리고 싶은 유혹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런 복수심에 타오르는 충동이 마음 속에 뿌리내릴 여유가 없었다.


“열 명 입국했고, 열 명이 출국합니다.”


통역관이 곧 서류를 빼뽀네에게 넘겨주면서 말했다. 일행이 비행기를 향해서 걸어가고 있을 때, 돈 까밀로는 페트로프나 동무에게 일행이 배에서 내릴 때 선장이 러시아말로 뭐라고 말했는지 정확한 의미를 가르쳐 달라고 말했다.


“그는 폭풍이 부는 동안에 일어난 일을 간추려 말했어요.” 그녀가 대답했다.


“절박한 상태에서 사람은 그의 하느님을 기억하게 됩니다. 이런 것이었어요.”


“러시아의 옛날 격언이로군.” 돈 까밀로가 중얼거렸다.


여행자들이 비행기에 오를 때 페트로프나는 그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나폴리의 이발사 -이 사람 역시 루마니아에서 피난을 왔다- 차례가 되었을 때, 페트로프나는 웃음을 참느라고 악수도 제대로 못했다. 그러다가 스카못지아 동무의 모습이 눈에 띄자 그녀의 미소는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돈 까밀로가 제일 마지막에 비행기에 올라탔다.
“안녕히 계시오.” 그가 말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동무.” 페트로프나가 속삭이듯이 말했다.


그녀의 뺨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한참이 지나도록 돈 까밀로는 페트로프나의 눈동자에 비친 슬픈 표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는 끝없이 펼쳐져 있는 안개 낀 평원을 내려다 보며, 그의 공책에 잘 적어 둔 러시아의 문구를 생각해 냈다.


‘Spastijel mira, spasi Rossiu ! (세계의 구원자여, 러시아를 구하소서!)


일행이 비행기를 향해서 걸어가고 있을 때 돈 까밀로는 페트로프나 동무에게, 일행이 배에서 내릴 때 선장이 러시아말로 뭐라고 말했는지 정확한 의미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는 폭풍이 부는 동안에 일어난 일을 간추려 말했어요.” 그녀가 대답했다.


“절박한 상태에서 사람은 그의 하느님을 기억하게 됩니다. 이런 것이었어요.”

 

 

 

 

끝이 안 나는 이야기

 


“주님!”


돈 까밀로는 제단 위의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께 말씀을 올렸다.


“제가 이 정든 마을에 돌아온 지 꼭 두 주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행하면서 겪은 고통스러움을 아직도 이겨내지 못하고 있답니다. 주님, 정말이지 그건 공포라기보다 고통 그것이었어요. 제가 두려움을 느낄 이유는 없었으니까요. 그럼에도 저는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노병과 같았으니까요. 십자가는 만년필 속에 숨겨져 있었고, 기도서는 <레닌의 어록>으로 위장되어 있었으며, 비밀 미사는 침대 탁자 앞에서 이루어졌으니 말씀이에요….”


“괴로워할 것 없다. 돈 까밀로.” 예수님이 점잖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 이웃을 뒤에서 칼로 찌르는 비겁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를 도와주려고 했던 게다. 너는 죽어가는 사람에게 물 한 모금을 먹여야 할 때, 네 몸을 그 사람에게 낮추어야 하는 것을 거절하겠느냐? 그리스도 군사의 위대한 점은 겸손이며, 그의 적은 오직 교만이니라. 온유한 자가 복이 있느니라.”


“주님, 당신은 위장해야만 하는 굴욕을 맛보지도 않으셨고, 공개된 싸움터에서 승리를 거둔 영광의 면류관을 쓰신 십자가 위에서만 말씀하고 계십니다. 결코 악마의 모습을 하고 인간에게 나타나신 적은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저는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마치 적을 파괴할 음모를 가지고 적진에 침투해서 임무를 다하기 위해, 거짓 깃발 속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한 싸움터에 익숙해진 노병과 같았으니까요. 십자가는 만년필 속에 숨겨져 있었고, 기도서는 <레닌의 어록>으로 위장되어 있었으며, 비밀 미사는 침대 탁자 앞에서 이루어졌으니 말씀이에요…”


“괴로워할 것 없다. 돈 까밀로.” 예수님이 점잖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 이웃을 뒤에서 칼로 찌르는 비겁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를 도와주려고 했던 게다. 너는 죽어가는 사람에게 물 한 모금을 먹여야 할 때, 네 몸을 그 사람에게 낮추어야 하는 것을 거절하겠느냐? 그리스도 군사의 위대한 점은 겸손이며, 그의 적은 오직 교만이니라. 온유한 자가 복이 있느니라.”


“주님, 당신은 위장해야만 하는 굴욕을 맛보지도 않으셨고, 공개된 싸움터에서 승리를 거둔 영광의 면류관을 쓰신 십자가 위에서만 말씀하고 계십니다. 결코 악마의 모습을 하고 인간에게 나타나신 적은 없잖습니까?”


“돈 까밀로, 하느님의 아들인 내가 사람처럼 살다가 죄인처럼 죽기로 마음 먹었을 때 나 자신을 낮추지 않았느냐? 너의 하느님을 보아라. 그 분의 상처 입은 허리를, 그 분의 머리에 얹힌 굴욕의 가시관을 보아라!”


“주님, 제가 당신을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까.” 돈 까밀로가 우겨댔다.


“당신의 고귀한 희생으로 비춰오는 성스러운 빛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돈 까밀로 동무의 비참한 모습을 비춰줄 만한 빛이라고는, 성냥 불빛조차도 보이지 않는답니다.”


예수님은 미소를 지으셨다.


“그레비네크의 노파 눈에서 반짝이던 그 빛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더구나 가족조차 찾아내지 못한 어느 무명 용사의 무덤 위에서 빛나는 촛불은 어떠하냐? 저 폭풍우 치던 그날의 바다를 돌이켜 생각해 보아라. 그리고 마지막 시간이 왔다고 생각했던 너의 불쌍한 동료들의 그 전율을. 네가 십자가를 꺼내 들고, 하느님께 그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빌었을 때 타롯치 동무가 신부로 둔갑했다고 그들이 너를 비웃었더냐? 그렇지 않았다. 너의 동료들은 무릎 꿇고 앉아, 네가 만든 그 십자가에 입을 맞추고자 했다. 무엇이 그들 마음 속에서 일어났는지 알겠느냐?”


“하지만 주님, 어느 신부라도 그렇게 행동했을 겁니다.” 돈 까밀로가 입속말로 우물거렸다.


“빼뽀네 밖엔 네가 누구인가를 아는 사람이 없었음을 기억해라. 다른 동료들에겐 넌 다만 타롯치 동무였을 뿐이었느니라. 너는 그들의 마음의 변화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돈 까밀로는 두 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제야 그 일이 얼마나 믿을 수 없는 이야깃거리였나 깨닫게 되었다.


“너는 알게다. 그 중 어떤 빛은 돈 까밀로 동무가 비춘 빛이었다는 것을”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돈 까밀로는 고향에 돌아온 2주일 내내 주교님에게 바칠 여행 보고서를 정리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그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이, 주교님이 비록 노쇠하여 건망증이 심하긴 해도, 문법만은 정확하게 알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밀라노 기차역에서 작별 인사를 나눈 이후로, 돈 까밀로는 빼뽀네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나폴리의 이발사는 서 베를린에서 일행과 헤어졌다. 타반 동무는 그가 가지고 온 세 가닥의 밀 줄기를 안고 베로나에서 기차를 내렸으며, 돈 까밀로는 바치까와 페닷토 동무와 함께 밀라노에서 내렸었다.


“당신도 우리하고 같이 파르마나 에밀리야까지 함께 가지 않으실 건가요?” 스카못지아가 돈 까밀로에게 물었다. 그는 밀라노에 급한 볼일이 있노라고 얼버무렸다. 그건 사실이었다. 그는 밀라노에 그의 사제복을 두고 왔기 때문에 그 사제복을 빨리 찾아와야만 했기 때문이다. 


빼뽀네는 수효가 줄어든 그의 일행을 헤아려 보더니, 돈 까밀로가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스카못지아에게 명랑하게 소리치는 것이 그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이제부터 우리 일행은 여섯 명뿐입니다. 이 돈을 가지고 가서 포도주 여섯 병을 사오시오. 여러분들을 대접하고 싶소!”


빼뽀네의 웃음소리가 계속해서 그의 귓전을 울렸다. 그래서 그 웃음의 의미가 무엇인가 알려고 머리를 짜보았다. 그가 고향에 돌아온 지 14일째 되는 날 밤, 빼뽀네 자신이 그 해답을 안고 돈 까밀로 앞에 나타났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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