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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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러시아에 가다(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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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조반니노 과레스키>

 

 


(지난 호에 이어)
이것은 분명히 아픈 데를 찌르는 얘기였다. 그래서 그가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그 이야기를 모두 쓸어내자, 기분이 한결 더 좋아졌다. 저녁 10시. 차가운 바람이 황량한 거리를 휩쓸고 있었다. 모스크바는 소비에트 연방의 우울한 수도임에 틀림없었다. 

 

파도는 운명을 넘고


러시아 여행단 일행은 아침 일찍 공항버스를 타고 모스크바를 떠났다. 거리엔 청소부 외에는 아무도 눈에 띄지 않았다. 젊은 여자들과 중년 여자 청소부들이 길거리에 물을 뿌리고, 기계청소기를 다루며 마지막엔 빗자루로 쓸어내고 있었다.  


돈 까밀로는 빼뽀네에게, 저 여성들의 동작 하나하나가 마치 남성의 일을 하고 있다는 특권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고 꼬집어 말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모습이지요.” 그가 결론짓듯이 말했다


 “그리고 소비에트 연방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고요. 우리나라에서 성직자들이 이런 일을 하기 위해 징집되는 날, 그 때에 내 마음은 더 편해질 거요.” 빼뽀네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시베리아의 동토 지대에서 불어오는 듯한 살을 에는 바람이, 텅 빈 거리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불어왔다. 광활한 ‘붉은 광장’을 휩쓸며 불어오는 바람은 사람만 보면 과녁으로 보이는 양 아프게 때리며 지나가곤 했다. 


여기저기에 청소부가 와서 집어가기를 기다리는 듯한 넝마 보따리 같은 것들이 늘어 놓인 게 보였는데, 그것은 자세히 보니 영웅 묘지에 의례적으로 참배하려고 줄 서있는 순례자들이었다. 


우즈베키스탄, 죠지아, 이루카슈크와 그 밖의 러시아의 먼 지방에서 올라온 농민들이 한밤 중에 기차에서 내려, 묘지로 들어가는 문이 열릴 때까지 양떼처럼 옹기종기 그들의 짐짝 위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모습들이었다.


“동무,” 돈 까밀로가 말했다.


“이 광경은 제정 러시아 시대하고는 아주 딴판이구려. 가난한 농부들이 짐마차를 타고 성 페테스부르그까지 여행하며, 짜르황제 와 그의 신부가 될 독일 공주를 보려고 공원에서 며칠씩 노숙하며 기다리던 때 말이오.”


“폭군에게 복종하는 노예가 되는 것과 그들의 해방자에게 경의를 표하는 자유인이 되느냐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빼뽀네가 대꾸했다.


“저 사람들이 모두 레닌과 스탈린이 정말 죽었는가 확인하러 오는 것만은 아니잖소?” 돈 까밀로가 말했다.


빼뽀네가 온화한 얼굴을 지으며 말했다. “내일 밤에 밀라노의 기차 역에서 동무를 내려드릴 일을 생각하면, 지금부터, 이게 꿈은 아닐까 하고 내 살을 꼬집어 보곤 한답니다.

아무튼 실컷 놀아 보십시오. 시간은 마구 지나갑니다요.”


모험은 거의 다 끝나갔다. 비행기는 9시에 그들을 S시에 내려 놓았다. 그곳에서 조선소를 방문한 다음엔 세 시간 동안 배를 타고 O시를 여행하고 나서야 베를린행 비행기를 탄다. 


배를 타고 가는 여행은 오리고프 동무의 생각이었다. 비행기, 버스, 전차, 지하철이 수송의 능률에 대한 소비에트의 전시 효과를 만족시켰지만, 바다 항해라는 끝마무리가 더 필요했다. 오리고프 동무는 이런 최종 계획안이 상부에서 통과되어 매우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비행기는 9시 정각에 S시에 착륙했다. 공항은 자그마한 것이 도시의 크기와 어울렸다. 이 도시는 조선소로 중요한 기지였다. 넓은 곳에 방비가 잘된 이 항구는 장비 수리시설을 모두 갖추고 있었고, 가지각색의 배가 떠 있었다.


제노아 출신의 바치까는 방금 고향에 온 듯 마음이 편안해져서, 전보다 더 수다스러워졌다. 여러 가지 모양의 배 가운데 새로 단장한 듯 번쩍거리는 유조선이 한 척 있었다.

바치까는 그 배의 무게와 내부 시설에 대해서 아주 치밀하고 전문적인 솜씨로 설명했기 때문에, 오리고프 동무의 안내가 전혀 필요 없을 정도였다. 


그는 이태리 방문단을 페트로프나에게 맡기고 조선소 방문에 대한 세부 사항을 마련하려고 조선소로 갔다. 바치까 동무는 기분이 최고조에 이르러 있었다. 그는 어떤 질문이나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었으며, 이따금 탄성까지 질렀다. “조선 기술은 제노아 사람의 전문업이지요. 하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도 전문가라고 하겠습니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돈 까밀로는 잔뜩 긴장하고 있다가 바치까 동무가 자기 의견을 몇 번씩 알린 다음에야 입을 떼었다. “맞아요. 그 사람들은 보기 드문 전문가들이오. 저 스쿠너를 좀 봐요! 아름답지요?”


다른 사람들도 스쿠너가 시야에 완전히 들어오는 데까지 가보려고, 돈 까밀로를 따라갔다. 19세기형의 배 같은데 아직도 칠이 새것 그대로여서 마치 새 상표를 붙인 것 같아 보였다.


“이거 참 놀랍습니다. 러시아인들이 지난날의 영광스러웠던 시대로 되돌아 가고자 하는 일들을 존중하고 있는 게 말입니다.” 


돈 까밀로가 소리쳤다.


“동무들, 이 배는 오랜 세월과 고귀한 전통을 가진 배임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묵묵히 찬탄의 눈빛으로 본 다음, 그는 바치까에게로 몸을 돌렸다.


“부두 노동자 동무, 우리나라는 몇 백 년간 조선기술의 지배자였지요, 헌데 이와 같은 스쿠너를 보려고 멀리 소비에트 연방까지 와야 했습니다.”


페트로프나 동무는 한 노무자로부터 더 자세한 정보를 긁어 모았다. “저 배의 이름은 ‘토바리스크’입니다.” 그녀가 일행에게 배 이름을 알렸다.


“이 배는 실습 훈련에 쓴다고 합니다.” 


“3천톤 급이지요.” 바치까가 갑자기 그녀에게 몸을 돌리고 끼어들며 말했다.


“원래의 배 이름은 ‘크리스토포로 콜롬보’ 구요, 이태리 해군의 훈련 선박이었지요.”


페트로프나 동무의 얼굴이 빨개졌다. “용서하세요, 동무.” 그녀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그때 페트로프나는 오리고프 동무가 조선소 직원과 함께 그들에게로 걸어오는 모습이 보이자, 지시를 받으러 뛰어갔다. 빼뽀네는 돈 까밀로의 소매를 지그시 잡아 당겼다.

일행들과 멀리 떼어놓기 위해서였다.


“그 큰 메기입 좀 그만 다물구계슈.” 빼뽀네가 소곤거리며 말했다.


“이번엔 정말 실수하셨소.” 


“그건 전혀 실수가 아니라네.” 돈 까밀로가 말했다.


“나는 처음 그 배를 볼 때부터 ‘크리스토퍼로 콜롬보’임을 알아 보았소. 난 저들이 저 배와 ‘쥬리오 세자레’를 빼앗아갈 때 얼마나 고약한 기분이었었는지 잊을 수가 없었소.”


바치까 동무가 그들과 가까이 서 있었다. 빼뽀네는 그에게 돌아서며 분노를 터뜨렸다.


“당신은, 입 좀 다물고 있지 못하겠소?”


“지도자 동무, 내가 어떻게 입을 다물고 있겠소?” 바치까가 말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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