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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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러시아에 가다(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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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반니노 과레스키 지음 / 유니스 윤경남 옮김

 

 

 

(지난 호에 이어)
지뱃티가 누워있던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 소녀에 관한 건 잊어버리는 게 좋겠소.” 돈 까밀로가 말했다.


“그 여자는 결혼해서 다섯 자녀를 두었소.” 


“그럴 리가 없어요!” 지뱃티가 말했다.


“동무, 러시아 말을 알고 있소?” 돈 까밀로가 물었다.


“아니오.”


“그럼 어떻게 그 여성과 그렇게 가깝게 사귈 수 있었지요?” 


“우린 말 없이도 서로를 이해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그녀에게 편지를 썼지요?”


“제가 그 여자의 이름과 그녀가 사는 마을 이름은 쓸 줄 알았지요. 이런 말도 배워 두었지요. ‘나는 지금도 당신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는 돌아갈 것입니다. 내게 편지를 써 보내주십시오.’ 그 여자는 내 주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돈 까밀로는 그의 주머니에서 러시아어로 타자 친 종이를 꺼냈다.


“여기에 그 여성의 고향에서 보내온 보고서가 있소. 누구에겐가 부탁해서 번역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 안에서 내가 말한 걸 모두 읽게 될 것이오.”


지뱃티는 무엇인가 찾아낼 듯이 그 편지를 들여다 보았다. 


“그 여자의 이름과 마을 이름이 여기 있군요. 맞습니다.” 그가 시인했다.


“내가 말한 나머지 말도 거기 있을 거요.” 돈 까밀로가 말했다.


“이번엔 날 믿지 않는군요. 집에 돌아가면 얼마든지 쉽게 조사해 볼 수 있을 테니까.”


지뱃티는 서류를 접어서 그의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저는 그런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그가 대답했다.


“전 당신을 전적으로 신임하니까요. 다음 번에 내가 어떤 여성 때문에 정신을 잃게 된다면 이 서류를 꺼내보고 빠른 치료법을 알아내게 될 겁니다.”


그는 서글픈 미소를 띠고 계속해서 말했다.


“동무, 나의 당 기록을 보셨지요? 내가 한 일도 많지만 해선 안될 일도 많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러시아에 와서 그 여자를 찾는 일은 하지 말았어야 했죠. 이제부터 저는 어떻게 행동해야 될지요?”


“이념을 위해서 계속 싸워야지요.”


“하지만 나의 이념과 이상은 소니아였어요. 이제는 누군가 딴 사람이 그것을 떠맡았겠지요.”


돈 까밀로는 어깨를 풀썩거리며 말했다.


“동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잘 생각해 보라는 걸세. 나는 당의 동지로서 말해 주는 게 아니고 친구로서 말하는 거요. 당의 내막에 대해서 난 전혀 아는 게 없다오.”


“슬픈 일이지만 저는 알고 있답니다.”


지뱃티는 침대 위로 다시 몸을 던지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일행은 만찬 식탁에 모두 모여 앉았다. 지뱃티만 속이 좋지 않다면서 빠졌다. 오리고프 동무는 오후의 일정이 아주 잘 진행되었기 때문에 기분이 좋았다. 바치까 동무가 돈 까밀로 옆에 앉아서 그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동무, 오늘 거래가 잘 되었어요. 돈을 바꿔서 밍크 목도리를 샀거든요.”


“세관은 어떻게 통과하려고 그러지요?” 돈 까밀로가 물었다.


“밍크 목도리는 개인 옷에 해당이 안 될 텐데요.”


“제가 그 목도리를 외투 깃에 꿰매 붙일 겁니다. 남자들의 외투엔 거의 다 털을 댔더군요. 그건 그렇고, 우리의 반동적인 신문이 늘 그렇지만 또 잘못을 저질렀어요.”


“난 그 신문을 믿는데.” 돈 까밀로가 말했다.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


“동무는 내게 그 반동적인 신문에 난 환율 대로, 1불에 20루불을 받을 거라고 하셨죠? 그러나 나는 26루불을 받았답니다.”


보드카 병이 한 차례 돌아가고 대화가 점점 신나게 무르익어 갔다.


“타롯치 동무,” 스카못지아가 말했다.


“동무가 우리하고 함께 가셨어야 했는데. 레닌의 묘역을 방문한 일은 뭔가 잊을 수 없는 일이 되었거든요.”


“맞아요.”


옆자리에 앉아 있던 꾸룰루 동무가 말했다. “스탈린의 묘지는 무시무시한 인상을 주고 있어요.”


스탈린에 대한 말은 결코 재치 있는 얘기가 못된 듯싶어, 돈 까밀로는 어색해진 침묵을 깨기 위해서 서둘러 말을 이어 주었다.


“물론입니다.”


그는 사교적으로 말했다.


“나도 파리에 있는 나폴레옹의 묘지가 얼마나 인상 깊었는지 생각납니다. 그런데 나폴레옹은 레닌에 비한다면 피라미지요 뭐.” 그러나 꾸룰루는 보드카에 힘입어 말머리를 돌릴 생각을 않고 있었다.


“스탈린, 그 사람이야말로 위대한 사람이지요.” 그는 우울한 듯이 말했다.


“말 잘했네, 동무.”


프리디 동무가 덩달아 끼어 들었다.


“스탈린은 소비에트 러시아에 있어서 뛰어난 영웅이지요. 스탈린도 전쟁에서 이겼으니까요.”


꾸룰루 동무는 보드카 한 잔을 더 따랐다.


“오늘 스탈린의 무덤을 구경하려고 줄 서있는 노동자 대열 속에 미국 관광객들이 몇 명 있더군요. 그 처녀들은 마릴린 몬로가 나오는 영화 시사회에 나가는 듯한 옷차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젊은 천치 바보들이더라고요!”


“동무 말이 맞소.” 프리디가 맞장구 쳤다.


“나도 동무처럼 벨이 꼬였어요. 모스크바가 카프리나 몬테칼로는 아니잖습니까?”


“스탈린이 아직도 살아있다면, 저 어린 천치들은 이 나라에 들어오지도 못했겠죠. 스탈린은 자본주의자들에게 되게 겁을 주었으니까요.”


빼뽀네는 페트로프나 동무의 협조를 얻으며 오리고프 동무의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려고 애써 보았다. 그러나 어떤 때는 오리고프 동무 자신이 귀를 곤두세우고, 식탁 끝자리에서 하는 이야기를 통역해 달라고 하기도 했다. 빼뽀네가 돈 까밀로에게 말없이 SOS 신호를 보냈다.


 “동무들,” 돈 까밀로는 두 반항아들에게 엄숙하게 말했다.


“스탈린의 장점을 부인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얘기를 할 때도 아니고 장소도 못 됩니다.”


“진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꾸룰루가 주장하고 나섰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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