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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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러시아에 가다(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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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반니노 과레스끼 지음

유니스 윤경남 옮김

 

 

 

<삽화: 조반니노 과레스키>

 

 

(지난 호에 이어)


페트로프나 동무가 끓여준 커피


“동무, 난 지금 아주 곤란한 처지에 빠졌어요.”


“사람은 자기가 저지른 일은 자기가 책임져야 합니다.” 돈 까밀로가 대답했다.


“이건 내 문제가 아닙니다.” 스카못지아가 설명했다.


“다른 사람의 문제입니다. 다만 그 문제가 내게 전달되었고, 나는 그것을 내 상관에게 전달하면 되는 것입니다, 동무는 바로 윗사람에게 보고하고, 그는 또 그의 윗사람에게 보고하고, 그는 또 그의 윗사람에게 보고하고 그런 절차를 거치는 게 옳은 방법이 아닐까요?”


돈 까밀로는 로비에서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떠들어대던 소리에 지쳐서, 위층에 올라가 그의 침대에 몸을 던지고 누워있던 참이었다.


“물론 공식적인 절차라면 그래야겠지요.” 그는 몸을 똑바로 쭉 펴면서 말했다. “앉아서 자세히 얘기 좀 해보시오.” 스카못지아는 어깨를 풀썩거렸다. 


“내용을 말씀드리지요.” 그가 말했다.


“그리고 나서 그 일이 얼마나 공식적인가는 동무가 결정하십시오. 지뱃티 동무를 아시지요?”


“물론 알지요.” 돈 까밀로가 말했다.


사실상 그가 아는 것은 빼뽀네의 서류에서 몰래 읽은 것뿐이었다. 지뱃티는 투스칸 출신으로 42세, 전기공, 능동적인 당원, 당의 이념으로 잘 무장되어 있음. 그는 애당초 그를 평가해 볼 기회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시실리에서 온 프리디나, 사르디니아에서 온 꾸룰루와 마찬가지로 입을 굳게 다물고,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겉으로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난 그 사람을 좋아합니다.” 스카못지아가 말했다.


“그 사람도 나처럼 끈질기고요, 빨치산으로 겁 없이 목숨을 거는 사람이지요.”


“나도 그걸 알고 있소.” 돈 까밀로가 말했다.


“전쟁 중에 그 사람이 이 러시아의 스탈리노 근처 어디선가 싸웠다는 것도 아십니까?”


“그의 빨치산 기록 때문에 그가 불리하게 되어선 안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동무, 그런 것이 문제되어선 안되지요. 그러나 그의 경우는 그렇질 않습니다,”


“왜 그렇지요?”


“전쟁 중에 그는 겨우 23살이었습니다. 지시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적과 사귀고 싶은 충동을 가졌답니다. 그 적이 어처구니 없게도 17살의 소녀라고 한다면, 동무는 그 교제가 너무 지나치다는 걸 알 수 있겠죠? 사실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얼마 후에 후퇴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모든 게 끝난 겁니다.”


돈 까밀로는 그의 팔을 내밀면서 말했다.


“아름다운 얘긴 아니로군. 그러나 전쟁 중엔 그런 일들이 꼭 일어나지요. 어느 나라에서든지 외국 군인과 스캔들을 일으키는 여자들이 있게 마련이거든요.”


“그렇습니다.” 스카못지아는 그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지 17년이 넘도록 아직도 적진의 여자를 생각하고 있는 군인은 보기 드문 일이지요. 그것이 바로 지뱃티의 얘깁니다.” 그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면서 말을 계속했다.


“그는 내게 모든 이야기를 털어 놨어요. 원래 그는 그 소녀를 고향 집으로 데려가려고 했어요. 그는 그 소녀에게 군복을 입히고 동료들의 도움을 얻어 계획을 완수해가기 시작했지요. 그때 그의 부대가 러시아 군대에 포위되었고, 소녀가 총살당할 것을 겁낸 그는 소녀를 부대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그는 친구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한 많이 군대 식량을 모아 가지고 소녀에게 주면서, 폐허가 된 이스바에 숨어있으라고 했답니다. 그는 약속하기를 만일 그가 러시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되면 그곳으로 소녀를 데리러 간다고요. 그는 소녀에게 ‘만일 우리가 죽거나 잡히거든 전쟁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집으로 돌아가시오. 당신은, 이태리인들이 당신을 끌고 갔었다고 말하면 되오’ 이렇게 말했지요.


전쟁이 사흘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막판에 러시아는 거꾸로 그들이 포위될까 봐 후퇴해야만 했습니다. 지뱃티는 이스바에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소녀는 그곳에 없었습니다. 그는 머릿속에 계속 그녀를 간직한 채 이태리로 돌아왔습니다.  


휴전이 되고 그는 빨치산이 되어 산을 탔지만 소녀를 잊을 수가 없었죠. 전쟁이 끝나고 그는 당에 들어갔어요. 그렇다고 그것이 그 소녀를 회상하는데 도움이 되진 않았어요.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러시아에 가는 당의 동지 편에 그 소녀에게 편지를 보내는 게 고작이었지요.


편지는 우편으로 부칠 수가 없었지요. 최종 목적지까지 도착하진 못하니까요. 어떤 경우건 그는 답장을 받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17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다음에, 그가 제 발로 러시아에 올 기회가 생긴 것입니다. 특히 우리 두 나라 사이의 긴장이 완화되어 가고 있는 때라서요.


 우리 일행의 원래 계획은 스탈리노를 방문하게 되어 있었지요. 그 소녀는 그 근처에 살고 있으리라 생각했고요. 한데 그 계획이 변경되어 버렸어요. 그는 어찌 할 바를 모르게 된 거예요. 그래서 그 사람이 내게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은 것입니다.


 그 사람이 내게 이렇게 말했어요. ‘동무는 페트로프나 동무와 사이가 좋지요. 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혹시 있는지 알아봐 주십시오. 필요하다면 여기 남겠습니다. 나는 그 여자를 찾기 위해선 무슨 짓이라도 할 테니까요.’


나는 그에게 그 문제는 내게 맡기고 내가 머리를 써서 할 테니 믿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다음 나는 나디아에게 갔지요. 그 여성은 빈틈없는 두뇌를 가진 여자여서, 첫 마디에 하는 얘기가 그 소녀의 현재 상항을 알아봐야 한다고 말했답니다. 


나는 그녀에게 주소와 이름을 가르쳐 주었고, 그녀는 스탈리노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친구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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